[연재소설] moments_41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Piazza del Gesù Nuovo - Via Benedetto Croce - Piazza San Domenico Maggiore - Piazzetta Nilo - San Biagio Dei Librai - Via Vicaria Vecchia - Via Forcella.. 결국,, 산마르티노 국립 박물관 아래의 Via Pasquale Scura를 따라 Via Forcella까지 이어지는 약 2km의 직선도로를 끼고 양쪽으로 스카파 나폴리(spacca napoli)는 위치해 있다. 'spacca'는 '자른다'라는 뜻으로 보메로 언덕에서 보면 이 길이 시가를 정확히 둘로 갈라놓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다란 골목으로 이어진 이곳이 나폴리의 관광 명소가 된 이유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정해진 나폴리의 역사지구이며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지역임에 거주민들의 삶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낡고 빛바랜 건물, 그리고 쉬이 눈에 띄는 그래피티 아트, 집집마다 널어놓은 빨랫감들, 것도 모자라 마주 선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고 있는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들,, 공중에서 나부끼는 누군가의 삶의 채취는 정감 있는 풍경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나폴리는 뭐다? 고고학 박물관이다."

진호의 이 한마디에 순간, 아라의 모든 것이 용광로처럼 활활 타올랐다. 나폴리까지,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 스바지오 산중턱에 자리한 아시시는 피렌체와 로마 사이에 위치한 곳,, 해서 로마를 거쳐야만 했다. 2시간 30분 동안 로마로 향하는 intercity에서도, 그리고 1시간 13분에 걸쳐 나폴리로 향하는 Frecciarossa에서도 그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나폴리는 피자다.' 그런데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로마에서 출발했더라면 어이없음에 콧방귀라도 뀌었겠지만, 이른 아침부터 심신을 재촉했던 것도 모자라, 커다란 끌낭을 올리고 내리는 수고까지 한 탓에 나름 지쳤는지 앙칼진 목소리 대신 아라는 뚫어져라 그를 쏘아보았다. 일정뿐 아니라, 동선으로나, 체력적인 면에서도, 피렌체 - 아시시 - 로마행이 맞았다. 그러나 아시시를 마지막에 둔 것은 프란체스코 대성당의 봉헌 축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이유는,, 숱한 로마의 성당을 방문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그로 인한 경건해진 마음으로 아시시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나름의 계획하에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던, 해서 여전히 눈에 밟히는 그 아시시를 벗어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순간,, DEL GIGLIO의 수녀의 얼굴 위로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담임 목사의 설교 말씀이 덧입혀졌다. '원수도 사랑하라!!'.. '교적부에 이름은 왜 올려서는, 반나절만 지났어도.' 불거진 모난 마음이 저도 모르게 불쑥 나올까 싶어 헛기침으로 꾹 누르고서 아라는 담담히 말을 건네었다.

"피자집에서 만나요. 그럼."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박물관 중 하나인데?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의 고대 도시에서 출토된 모자이크, 예술품과 발굴품 등을 소장하고 있어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상>은 물론.."

"피노키오가 '형님!!' 하겠다는.. 피렌체에서 '다비드상' 보며 '거인이구먼' 했던 사람이 아프로디테상은, 퍽이나!! 아~ 신체 구조가 달라서? 사진으로 보니 꽤나 적나라하던데. 혹 그래서?"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처럼, 제 말만 늘어놓는 진호의 태도에 결국, 아라의 불편한 심기가 툭- 터져 나왔다.

"헤르쿨라네움. 부유한 고대 마을이었다고 하나,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폼페이 등과 함께 완전히 매몰된,, 해서 돌무더기의 잔해뿐일 텐데, 본다고 과연."

"저울추도 아니고. 왔다 갔다 하기는."

"색칠공부 젬병인, 그런 내가 이만큼 공부를 했어. 왜?"

"그러니까. 왜!!"

진호의 의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해서, 아라는 성의 없이 받아쳤다.

"당신과 대화를 하려면 이 방법 밖엔 없으니까. 화도 좋고, 애도 좋아. 나를 흠신 두들겨대도 좋아. 잘하고 있다고. 고아라."

아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픽- 헛웃음을 뱉었고, 상관없다는 듯 진호는 한참을 웃었다. 그 바람에 스파카 나폴리, 이름 모를 건물의 발코니에 걸려있는 누군가의 옷자락이 펄럭- 날렸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산타루치아 항구였다. 호기롭게 돌진한 파도는 제방의 돌벽에 부딪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저 멀리 크게 일렁이는 파도가 물살에 휩쓸려 들어왔다 다시 멀어져 갔다. 파란 하늘, 한층 짙푸른 바닷물, 그리고 각각의 생김새 위로 색을 입힌 배들,, 광활한 대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을 항구의 석조 난간에 걸터앉은 채로 그들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No niente cchiù putesse maie vulé

Sott'o cielo azzurro esta città

Siente pè me chesta felicità

E ringrazio Dio che m'ha dato a'tte

Mo' chistu core vola

Cca ll'aria e mare addora

E nun saie pecché

Chesta a passione mia è Napule

Si pienze po' ca nun so' nnato accà

Sott'o sole cascar da' sta città

Ma chesta mamma so figlio comm'a tè

E dint'all'anima io stò sempre accà

Mo' chistu core vola

Cca ll'aria e mare addora

E nun saie pecché chesta a passione mia è Napule

Mo' chistu core sona

Cca tutta n'ata storia

E sacc'io pecché

Dint'o sangue mio c'a Napule

Mo' chistu core sona

Cca tutta n'ata storia

E sacc'io pecché dint'o sangue mio c'a Napule pè mme

*Luciano Pavarotti <Neapolis> 中


"아시시에 대한 나의 답가."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고, 엉킨 채로 잠시 머물렀다.

"로마 - 아시시였어야 하는 이유, 충분해."

"조상님들 말씀이 틀렸네. 머리 검은 짐승,, 거두는 것도 괜찮은데."

껄껄- 호탕한 진호의 웃음소리에 놀랐는지, 크게 일렁이던 파도는 자세를 낮췄다.

"제 발로 왔으면서."

"이유야 어쨌든, 나를 끌어당긴 건 고아라니까."

무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심히 달라질 말이었다. 넘실대는 파도만으로도 어지러운 형국에 진호의 말까지 더해져 머릿속이 울렁거렸다. 해서 아라는 관심을 돌리려 했다.

"산타루치아 항구에서 빤한 곡 대신 파바로티라.."

"나폴리에 대한 찬가이니."

진호의 관심을 돌리는데 일단 성공한 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라의 숨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말이 나와 그렇지. 로마와 아시시 두고 고민 정말 많이 했지. 근데 내가 옳았어."

"그리고 내가 옳았지."

"무슨?"

"나폴리는 피자다."

"어? 어!!"

좀 전의 불편했던 감정이 슬쩍 올라왔으나 아라는 애써 눌렀다.

"Sia가 부른 <Chandelier>란 곡이 있어요. 박정현 씨 버전에 반해 원곡을 들어봤다는. 해서 파바로티 버전을 들어 보려고."

"살짝 긴장되는데."

"그럴 것 까지야. 파바로티인데?"

그를 넘어트릴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적절했다. 진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으니 말이다. 이에 아라는 고소한 듯 잔뜩 웃음을 흘렸다. 정확히 말하면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나폴리 출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핏속에 나폴리가 있다 했고, 나폴리를 어머니와 동일시하며 영혼 역시 이곳에 있다고 했다. 파란 하늘과 공기와 바다를 자신에게 허락하신 신을 찬미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닿기라도 한 걸까? 아님 그 명성 덕일까? 끝없이 넘실대는 물결을,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저 멀리의 수평선을 넋을 잃은 듯이 그들은 바라보고 있었다. 뿌우웅-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는 산타루치아 항구를 들썩이게 했다. 뱃고동 소리가 사라진 그곳에서 'Neapolis'가 울리는 듯했다. 그것은 넘실대는 파도와도 같은 파바로티의 음성 같기도, 높고 청아한 하늘을 닮은 진호의 음성 같기도 했다.


로마, 밀라노에 이은 3대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Stazione di Napoli Centrale은 웅장한 자태로 견고히 서있었다. 역 외부에 설치된 철제 조형물의 의미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은 그들은 재빠르게 역 내부로 들어갔다. 스무 개가 넘는 플랫폼, 기차의 출도착을 알리는 쉬이 눈에 띄는 스크린, 꼬리를 무는 장내 방송,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피자만큼이나 나폴리의 치안 역시 그 명성은 자자했다. 어깨와 손에 배낭과 끌낭을 이고 쥔 사람들뿐이었으나, 그럼에도 불안했다. 해서 아라는 끌낭의 손잡이를 힘껏 잡아 쥐었다. 그저 장승처럼 선 진호가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안도의 숨을 막 내어 쉬는 그 짧은 순간이었다.

"현재 시간 5시 5분, 1분 전에 일반 열차는 떠났네. 이런."

소렌토행 사철 시간표가 적힌 낱장의 종이를 팔랑이며 말하는 진호의 목소리에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22분에 떠나는 익스프레스 탈래요 아니면 40분에 출발할래요?"

3.90유로인 일반 열차 대신 15유로나 하는 익스프레스 열차를 앞에 둔 것은,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자 함이었다. 그런 꼼수를 진호가 덥석 물기를 바라는 다급한 심정인 아라는 연신 눈꺼풀만 깜빡여댔다. 그러나 아라의 바람과는 달리 진호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마치 이 사단이 아라의 잘못이라는 듯.

"고아라가 클린턴만 째려보지 않았어도."

"김진호가 피자 한 판만 먹었어도."

삐딱한 진호의 말에 질 생각이 없는지 아라는 앙칼지게 받아쳤다. 방금 전, 그들의 상황은 이러했다. 소문이 자자한 디 마테오(Di Matteo)에서 진호는 마르게리타 피자 한 판을 게눈 감추듯 먹고 모자랐는지 또 한판을 시켰고, 아라는 피자 가게 벽면에 붙은 수많은 유명 인사 중,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진을 씹어 먹고도 남을 기세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강지처 버려 잘 되는 놈은 없나 봐."

"조강지처 버린 놈이 나는 아닐 텐데."

세상 모든 남자들 싸잡아 매도하는 아라의 태도가 못마땅한지 진호도 맞받아쳤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이럴 때는 맞고?"

조금 전까지는 분명 넷이었던 팔이 지금은 셋이었다. 그것은 진호가 허락을 구하지 않고 아라의 손을 거머쥔 결과였다. 이에 화들짝 놀라며 아라가 피할 줄 알았건만, 이외로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물론 눈은 가자미 모양을 했지만 말이다.

"손잡이가 넓던가 아님 손이라도 작던가. 손목은 안 된다며."

"어?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진호의 변명에 아라 역시 적절치 않은 말로 대꾸를 했다. 그러고는 맘에 안 든다는 듯 어깨를 틀어 틈을 벌렸다. 거친 들숨 날숨만이 반복되는 성난 분위기를 바꾸려 한 건 진호였다.

"효율적으로 하자고. 내가 짐을 지킬 테니 가서 티켓을 끊으면 되잖아. 응!!"

사납게 만든 눈을 앞세워 아라는 대답을 대신했다.

"끌낭에서 손 떼지. 오해할 상황 만들지 말고."

쏘는 듯한 시선은 그대로 두고, 진호는 슬그머니 손은 떼어냈다. 이에 셋이었던 손은 넷이 되었다. 그제야 말이다. 아라의 끌낭을 잡아당기며 진호는 급히 입을 떼었다.

"소렌토로 가자 좀!!"

시간과 기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는지, 내내 뭉그적대던 아라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뛰다시피 달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느 틈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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