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12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보통의 유럽 밤풍경과는 달리 각자가 불을 밝힌 채 나보나 광장은 성황리에 영업 중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점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한데 모인 사람들을 이내 삼켜버렸다. 광장 중앙의 분수는 연신 물을 뿜어댔고 이에 질세라 사람들은 사연을 쏟아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가며 주위를 살피는 것은 그들을 보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제스처 일지도,, 상기된 표정은 싫지 않은 아라의 속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나보나 광장까지라. 상상도 못했네."

"한 걸음을 구태여 쪼개 걷길래."

'더 놀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른 척하기 싫었는지 보폭을 맞췄다는?' 생각이 여기에 닿자 발그레한 볼의 농도는 조금 더 짙어졌다.

"그럼 피자는 내가."

"아니. 다른 거."

"그럼 뭐?"

"이를 테면 박카스와 우루사의 연결고리?"

순간,, 아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런 아라를 보았지만 못 본 척하며 마치 전진만이 가능한 불도저처럼, 밟고 있는 액셀에 한차례 힘을 가했다.

"물린 걸까? 아님 데인 걸까? 제약 회사 직원일까? 약사일까?를 두고 밤새 머리를 굴렸는데,, 결국 후자로 결정 내렸다는. 박카스랑 우루사 대신 젤리 잡길래. 그렇잖아요. 처방전도, 파스도, 밴드도 매일은 어렵지만 박카스랑 우루사는 일수 찍을 수 있으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공공연한 핑곗거리 앞세워 겸사겸사.."

기승전 막힘없는 전개였으나 결은 새드 앤딩, 여주가 다름 아닌 아라 아닌가!! 지나친 몰입도는 결국 스스로 물을 엎어버린 꼴,, 다급한 마음에 진호는 테이블 위 맥주잔을 슬며시 본인 앞으로 끌어당겼고, 자신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자 마음이 놓였는지 그제야 아라를 살폈지만 눈은 뜨고 있었으나 초점이 없는, 숨은 쉬고 있었으나 산송장과 매한가지였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헛기침에도 돌부처처럼 꿈쩍도 않자 결국 플랜 b를 꺼내 들었다.

"마시는 거지 뿌리는 거 아니라는, 요새 신여성들은 다 안다지."

슬며시 맥주잔을 원위치시키자 아라의 시선 역시 돌아왔다. 그렇지만 빤히 바라다볼 뿐 달리 말이 없었다. 때지난 사랑이 당최 어떠하였길래 이역만리 외국에서도 되새김을 하는 건지,, 생각은 머물러 머릿속을 꽉 메웠고 내쉬지 못한 숨은 가슴속에 가득했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였다는 그 말에 세상 반이 남자라는 뻔한 말로 위로하려 했는데, 그렇게 딱 정색을 하니.. 궁금해졌어요. 당신이라는 사람이, 지난 그 사랑이."

기싸움이라도 하듯 속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마주한 시선은 한데 엉켜버렸다. 그것은 마치 애당초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 위한 목적 따위가 아닌 그들만의 세상,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팽팽한 긴장감 같기도, 긴긴 싸움을 알리는 시작점 같기도 했다.


별님 대신 해님, 나보나 광장도 아닌, 분명 새날이 왔음에도 어제의 연장선 같은.. 규칙적으로 숨을 내보내며 걷고는 있지만 어색한 침묵은 여전했다. 이미 보인 속내인데 체면은 차려서 무엇하리. 눈곱만큼의 미련도 없이 다 토해내자 진호는 마음먹었다. 아니 그렇게라도 아라의 속마음을 듣고 싶은 거겠지. 대관절 이별이 뭐라고 저리 미련한 건지, 곧 죽어도 떼를 쓰는 자신은 또 무언지,, 아라를 그리고 자신을 곱씹어 보았으나 결론은 하나.. 궁금했다. 그녀는 물론 감춘 속마음과 지난 사랑까지도,, 해서 이왕 맞을 매라면 먼저 맞고 보자는 생각을 앞세워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열었다.

"박카스랑 우루사 남 주지 말고, 혹 그럴 거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먹은 건지 준 건지,, 형은 다 아는 방법이 있다."

순간, 쏘아보는 아라의 시선을 느끼자 이에 움찔한 진호는 발 하나를 뒤로 빼며 조금이나마 거리를 두었다.

"비엔나 민박집에서였어요. 그 애가 보낸 메일을 읽고 돌아갈 곳도, 가야 할 이유 역시 알았어요. 두오모 쿠폴라에 올라 서로의 이름을 적고 기도했는데, 돌고 돌아와 만난 옆자리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더라는.. 네 살 차이, 직장인과 대학생이라는 다른 처지, 박카스랑 우루사가 깜냥이었는지 많이도 얻어먹어서, 물린 것도 데인 것도 맞아요. 예상치 못한 조우에 방향을 잃고 튕겨버렸네요. '우리가 잊지 못하는 건 추억이에요. 서로가 아니라'라는 노래 가사처럼 불쑥 그리고 문득 떠오른 추억이, 그 기억의 파편들이 필름처럼 촤라락 지나가는 바람에,, 나 혼자만 심각해서는, 두 달 모자라는 꼭 삼 년이었어요."

상상은 현실과 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다. 가정법 또한 그 선상이기에 지나침은 화를 부르는 법,, 진호의 안일한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아라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그려봤던 상상의 나래 속의 풍파보다 훨씬 거셌다. 순간,, '묻지 말 것을'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아라의 표정은 한결 안정되어 보였다. 그런 아라가 보기 싫었던 건지 아니면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든 형국에 부아가 난 건지 진호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과는 달리 카피톨리노 언덕은 포로로마노를 향해 서 있었다. 과거에는 말이다. 높고 좁은 지형적인 요인은 로물루스로 하여금 로마를 세울 장소로 카피톨리노 대신 필라티노 언덕을 택하게 했다. 나라를 세우고 난 로물루스는 전쟁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에 부랑자, 도망자, 가난한 이주민에게 피난처로 카피톨리노 언덕을 내어줌으로 인구증가를 꾀하였고, 그로 인한 외부 세력과의 전쟁으로 많은 노예와 전리품을 획득하자 그는 천공의 신인 유피테르에게 헌정하는 신전을 카피톨리노 언덕에 세웠다. 고대 로마 제국에서 이곳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는데, 다름 아닌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재위 기간 BC 616-BC 578)에 의해서였다. 거듭되는 전쟁에서 승전보가 이어지자 그는 유피테르에게 공을 돌리고자 웅장하고 화려한 신전 건축을 명했다. 신전 건축 과정 중, 죽은 남자의 머리가 발견되었는데, 깨진 머리에서 흐르는 따뜻한 피로 인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당대의 주술사들은 카피톨리노가 앞으로 세상의 머리가 될 증표이며, 이는 유피테르의 계시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이에 덧붙여 타르퀴니우스는, 죽은 이는 BC 900년 경에 살았던 에트루리아의 전설적인 영웅 '아울루스 비벤나'라는 소문을 퍼트렸고, '아울루스의 머리'라는 뜻의 '카푸트 올리'(Caput Oli)라 불렀다. 한 발 더 나아가 로마인들은 스스로 '세계의 머리'(Caput Mundi)라 칭하고 유피테르의 아내인 유노, 딸인 미네르바의 신전을 세워 카피톨리움이라 명명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카피톨리오'로 굳혀졌으며, 수도를 뜻하는 'Capital' 역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신전 완공 전에 타르퀴니우스는 사망하였고, 결국 왕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우는데 기여한 집정관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BC 509년에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란 이름으로 봉헌식이 열렸으며, 로마인은 이날을 '로마 공화정이 출범한 공식적인 날'이라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피테르는 로마인에게 국가인 동시에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그의 번개는 절대 능력이며, 그를 상징하는 독수리는 예언을 의미했다. 즉,, 로마인과 유피테르는 한몸이었다.


유피테르 신전은 법과 제도, 정치를 통틀어 로마의 정신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동시에 치외법권의 지역이기도 했다. 일례로,, 마르쿠스 브루투스 일당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후 유피테르 신전으로 도망을 가 목숨을 구했다 전해진다. 번개, 화재 등의 이유로 여러 번 파괴되었으나 그때마다 물질과 시간을 들여 더 웅장하고 더욱 화려하게 치장을 해갔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절대 권력이 땅에 떨어진 건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였다. 313년 밀라노 칙령의 발표와 함께 '이교도의 흔적 없애기'란 종교 재정비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공화정 시대부터 원로원 회의장에 세워져 있던 승리의 여신상을 철거하는가 하면, 공적 & 사적 이교도적 제사를 금지했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참수형에 처할 뿐 아니라, 이교도의 신전을 없애고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유피테르와 그리스도를 두고 끊임없는 논쟁을 벌인 결과, 380년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정식 종교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로물루스에 의해 세워진 로마 그 자체였던 유피테르는 그들의 마음에서 차츰 멀어지게 된다. 이후 신전은 수차례의 약탈로 항폐해져 갔고, 16세기에 이르러 지오바니 피에트로 카파렐리라는 귀족이 '카파렐리 궁전'을 짓기 위해 신전의 각종 석재를 떼어내어, 결국 눈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까맣게 잊혔던 카피톨리노 언덕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뜻밖의 연유에서였다. 1538년 신성로마 제국 카를 5세의 황제 대관식을 앞세워, 교황 바오로 3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를 인선하여 '로마의 조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카피톨리노 언덕 재정비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 그는 방향에 중점을 두어, 고대 로마 시대부터 포로로마노를 향했던 언덕의 방향을 정반대로 돌려 로마 시내와 성 베드로 성당을 향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교황에게 존경을 표하는 한편, 새로운 로마 & 발전하는 로마의 상징을 의미했다고 한다.


목성, 영어로는 주피터, 현재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 카파렐리 궁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콘세르바토리 궁전 지하에 내려가야 고대 신전의 잔해와 성벽 흔적이 남아있는 게 고작인데, 박물관의 지하는 고사하고 대다수의 관광객들은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를 거쳐 잠시 쉬어가는 코스 혹은 미켈란 젤로의 '꼬르도나타(Cordonata)',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는 게 실상이다. 로마인을 보호하고 로마 사회를 성장시킨 로마 자체였던 '신들의 신'이었던 과거의 명성은 오간 데 없지만, 그는 변함없이 그곳에 서서 묵묵히 로마를, 로마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에서 시작된 9m의 램프가 광장에 다다를 때는 12m로 넓혀져 있는데, 이는 원근법에 의한 것으로 점점 넓어지는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바라보게 되는 정면은 더 넓어 보이고 실제보다 더욱 가깝게 보이는 착시효과로, 바로 옆 Basilica di Santa Maria in Ara Coeili 성당의 124 계단과 같은 높이라지만 번갈아 보아도 고개를 젓게 되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걸작품을 사뿐히 지르밟고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카피톨리노 언덕은 꼬르도나타(Cordonata) 계단을 정면으로 광장의 중앙엔 Palazzo Senatorio, 오른쪽으로 Palazzo dei Conservatori, 왼쪽으로 Palazzo Nuovo, 두 건물이 마주하고 있는,, 사다리꼴 모양의 광장이었다. 그 중앙에 아울렐리우스의 기마상을 배치하고 12개의 별을 상징하는 즉, 교황의 권력을 찬양하는 천문학적인 타원형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 이 완벽하지 않은 무늬는 Palazzo Senatorio와 꼬르도나타(Cordonata)를 연결해 바티칸으로 시선을 향하게 하는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광장에 숨겨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엿보러 계단을 되짚어 올라오면 양 측에 있는 Palazzo dei Conservatori, Palazzo Nuovo, 두 건물 사이의 각도는 90도에서 벗어나 살짝 기울어진 닫힌 사다리꼴의 구조로 중앙의 Palazzo Senatorio를 마치 무대의 스테이지처럼 꾸며주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BC 78년에 만들어진 고대 로마 문서보관서 타블라리움(Tabularium)을 여전히 강조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재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방향은 정반대로 과감히 틀었지만, 고대부터 내려오는 정신은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아니 더욱 강조를 한 셈이었다. 로마는,, 여전히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향하고 있었다.


"세나토리오 궁은 12세기 경에 세워졌고, 미켈란젤로의 손에 의해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들어서서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된 것으로 바로크 양식의 카피톨리노 광장의 기하학적인 문양은 하늘에서 보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연꽃모양이라는,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

"진짜 연꽃 모양 같다.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거라니. 2016년도 아니고 16세기에 말이 돼?"

크게 도리질을 하며 진호는 아라가 건넨 노트에 시선을 떨구었다.

"원근법에 의한 계단도 놀랍지만, 사다리꼴 모양인 광장의 구조하며, 또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진호였다.

"피렌체와 단테가 그러하듯, 로마는 미켈란젤로와의 연결고리인가?"

순간, 아라는 양팔을 감싸 안았다. 그 모습을 진호는 놓치지 않았다.

"왜? 왜!!"

"바티칸을 마지막에 배치해 둔 나를 칭찬한다고. 뭐 이 정도에 놀라. 재미없게."

한때 로마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었던 카피톨리노 언덕은 아라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한참을 머문 음의 파동은 곤히 낮잠을 자고 있는 지하의 유피테르를 깨우고도 남을 만큼 경쾌했다.

"가운데 세나토리오 궁은 현재 로마 시장의 집무실과 시의회로 사용되고 있고 양 측면의 콘세르바토리 궁과 누오보 궁은 고대 로마의 유적들을 전시하는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라가 건넨 노트를 차근히 읽어 내려가더니 페이지를 넘기고 곧바로 진호는 말을 이었다.

"과거, 문서보관서였던 세나토리오 궁 중앙에는 로마의 여신인 미네르바, 왼쪽엔 나일강의 신, 오른쪽엔 떼베레 강의 신을 조각했다는데."

"화가 이전에 조각가, 건축가로 명망 있던 분이라, 나머지 감탄사는 시스티나 성당과 피에타에게 양보하시고."

아라의 주위를 돌리려 했던 진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에 질세라 튕기듯 진호는 물었다.

"르네상스의 정확한 의미는 아는지?"

"문학, 예술 등의 전반적인 문화 부흥 운동!! 16세기 즈음, 이탈리아 안에서도 특히 피렌체의 돈 많고 깨어있는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날개 달은 예술가들이 싹을 틔운 예술의 혼마당 즈음?! 대표적 거장으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을 꼽을 수 있다. 뭐 이 정도. 색칠공부가 젬병이라 필기시험에 목을 맨지라."

설핏 꺼낸 말의 본전도 못 찾게 단단히 단도리를 하는 아라였다. 진호는 헛기침을 해대며 목청을 가다듬었고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청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러고는 내내 들고 있던 노트를 필요 없다는 듯 손에서 놓았다. 그것은 마치 소꿉놀이가 시시해진 아이 같기도, 해서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내려오면서 보니 높구나."

꼬르도나타(Cordonata) 계단 중간에 서서 진호는 몸을 돌려 눈으로 되짚었다.

"뒤돌은 김에, 16대 황제이며 철인 황제로 불린 아우렐리우스의 통치 시절이 로마의 전성기였고 그의 사망과 함께 로마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여기서 재밌는 얘기 하나, 중세 시대 기독교 박해가 심했고, 훗날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의 동상을 거의 파괴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아직인 이유는 그의 사상이 기독교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혹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마상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여전히 팽팽해요."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

배시시 웃는 진호를 따라 아라 역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나 더, 저기 보이는 성당은 동전을 만드는 주전소인 주노 모네타(Jono Moneta) 신전이 있던 곳으로 성당까지 이르는 124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가면, 죄를 사면받음은 물론, 소원이 이뤄진다는. 게다가 복권에 당첨된다는 재미난.."

"아니 그 중요한 얘기를 반쯤이나 내려온 이 마당에 하는 건 뭡니까?"

"카피톨리오 광장, 미켈란젤로, 원근법,, 끝인 줄 알았죠."

자신의 말끝을 채갈 뿐 아닌, 톤 하나를 높여 따지듯 묻는 진호의 기세에 아라는 본의 아니게 살짝 눌렸다.

"아니 로마가 세 번째인 분이, 클래식을 즐겨 들으며 엔리코 카루소 님을 아신다는 분께서, lotto를 버리는 말처럼 뱉는 건, 무슨 심뽀이신지."

말끝엔 분명 존칭, 하지만 담고 있는 그 뜻은 명확한 비아냥이었다. 게다가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도 아닌 겨우 lotto에 잡힌 발목이라니!! 생각이 여기에 닿자 아라는 심술궂게 눈을 키웠다. 아는지 모르는지 진호는 목소리를 높였다.

"lottery, 즉 복권을 뜻하는 이 영단어가 '행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lotto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이 금시초문이신지? 15세기 초즈음,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지방 의회 선거를 위해 90명의 이름 중 5명을 제비 뽑는 방식을 도입했다고. 로또의 아버지 격인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이에 착안해서 90개의 숫자 중 5개의 숫자를 추첨하는 로또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는 아라를 향해 진호는 대차게 몰아붙였다.

"로또 몰라요? 투명한 통 안에 굴러다니는 공을 뽑아 나온 5개의 숫자를 차례대로. 안 봤어요? 안 해봤어요?"

마치 복권 위원회 홍보대사인 양 로또의 과거, 현재는 물론 왜 아직인지 따져 묻는 그 모습에 아라는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trippa는 기호식품이니까. 근데 bigne, luce, notte, vincere, svegliera, sempre, spazio, quanto, aspettero, splenderà, amore,, 그 반짝이는 목소리 덕이었을까요? 이탈리어가 이다지도였단 말인가? 해서 발음과 뜻을 부러 찾아보았다는. 그러니 환상은 깨지 말아 줄래요!! 청유형 아닌 명령문입니다."

"로또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이라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편화된 행운의 뽑기인 것을, 누구는 집을 사고, 그 누구는 차를 사고, 또 다른 누구는 부모님 크루즈 여행을 보내드리고,, 투자한 만큼 정당한 대가가 따르는 사행성이라고는 1도 없는, 뭐 때론 박 터지는 경우도 있지만 해서 어제도 오늘도 명당자리 찾아 헤매는 수고쯤은 암시렁도 않지만은.."

"올라가던가. 그럼."

"그렇다는 거지."

시종일관 호기롭던 목소리는 오간 데 없이, 마치 모래주머니라도 매단 듯 진호의 목소리는 한껏 눌려 있었다. 그것도 잠시, 침묵하던 진호는 힘을 한데 모아 마지막 일격이라는 듯 쏘아댔다.

"그리고 bigne, aspettero는 언급한 적 없는 거 같은데. 다른 이였겠지."

한차례 어깨를 들썩여 아라는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막아냈다. 상관없다는 듯 진호의 두 눈은 성당의 계단을 훑었고, 축복받은 성모마리아에게 헌정된 Basilica di Santa Maria in Ara Coeili는 '천국의 제단'이란 의미 그대로, 거방진 위세로 124 계단 아래의 진호를 한껏 내려다보고 있었다.



*램프(ramp) - 입체 교차하는 두 개의 도로를 연결하는 도로의 경사진 부분.


카피톨리노 광장



이전 11화[연재소설] moments_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