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18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테베레 강 건너'를 뜻하는 '트라스테베레'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의 거주지였다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로마 공화정 시대에는 인근 테베레 강에서 어업을 하던 시리아인과 유대인 이민자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재위 기간 BC 27-AD 14) 시대에 이르러 로마의 일부로 취급받았으며, 174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구(區)의 범위를 정하였고 현재에 이르렀다. '노동자의 거리'라 일컬어지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중세풍의 건물들, 좁은 골목들과 줄지어선 상점들은 이곳의 볼거리로, 화려한 로마가 아닌 과거부터 이어져 온 가장 로마다운 곳으로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테베레 강에 처음 놓인 다리는 수블리키우스 다리(pons Sublicius)로 로마 시내와 트라스테베레 즉, 로마인과 에트루리아인들의 화평을 기념하기 위해 놓은 목조다리였다. 이는 기원전 600년 안쿠스 마르티우스(Ancus Marcius) 때의 일이었고, 이후 기원전 142년에 다리의 상판과 난간을 돌로 교체하여 자그마치 2000년의 세월을 견뎌냈으나, 1880년에 테베레 강둑 설치 공사 중 다이너마이트 폭발의 충격으로 무너져버려 시내 쪽 교각 일부만 남아, '부서진 다리'라는 뜻의 폰테 로또(Ponto Rotto)라 불리고 있다.


폰테 로또(Ponto Rotto)와 마주한 티베리나 섬은 테베레 강이 이 지점에서 구부러지면서 강폭이 넓어져 흐름이 약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파브리치오(Ponto Fabricio) 다리와 체스티오(Ponte Cestio) 다리는 섬과 테베레 강 연안을 연결하고 있다. 동쪽에 위치한 파브리치오 다리는 기원전 62년에 완성된 것으로 섬과 유대인 게토(Getto) 구역을 연결한다. 길이 62m, 폭 5.5m의 이 다리는 테베레 강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존상태가 좋아 현재도 보행이 가능하며 '유대인의 다리'라 불리기도 한다. 섬과 트라스테베레를 연결하는 반대편의 체스티오 다리는 기원전 46년에 축조되었으며 수차례의 복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테베레 강,, 길이 약 270m, 폭 약 80m의 돛단배와 같은 중지도인 티베리나 섬(Isola TIberina)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미움받는 폭군이자 로마의 마지막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재위 BC 535-509)에 관한 것으로, 폭정에 지쳐 봉기한 로마인들이 그의 시신을 테베레 강에 던졌는데, 시신이 가라앉은 그 자리에 흙과 모래가 쌓여 티베리나 섬이 되었다는 것과, 그의 개인 재산인 캄포 디 마르지오(Campo di Marzio)에서 수확한 밀을 강에 던졌는데, 그 밀이 모여 티베리나 섬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로 기피하는 곳이 되어 범죄자들, 전염병자들이 수용되었다고 한다. 등한시되었던 섬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뜻밖의 이유에서였다.


BC 293년에 로마 전역에 대규모의 전염병이 돌자 이에 로마 원로원은 그리스의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신전을 지으라 지시했고, 조각상을 얻기 위해 에피다우로스(Epidauros)로 사절단을 파견했다. 당시 에피다우로스의 종교 관습에 따라 사절단은 신전에서 뱀 한 마리를 잡은 뒤에 배에 태웠는데 신기하게도 배에 있던 병자들이 씻은 듯이 낫자, 이를 길조로 여겼다. 테베레 강에 닿자 뱀은 헤엄쳐 티베리나 섬으로 몸을 숨겼고, 이것을 아스클레피오스의 계시라 여긴 로마인들은 그의 신전을 세우게 된다. 기원전 289년의 일이다. 1584년에 파테베네플라텔리(Fatebenefratelli) 종합병원이 들어서면서 치유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1656년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환자촌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현재 응급 의료센터(Poliambulatorio)를 갖춘 채로 한때 의술의 신에게 봉헌한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Basilica di San Bartolomeo all'Isola 성당과 함께 여전히 정신과 육체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순풍을 맞아 한껏 돗을 올리고 순항 중인 배의 뱃머리에 진호와 아라는 서 있었다. 뱃머리 주위로 쉬지 않고 흐르는 물살만이 있을 뿐, 새의 지저귐마저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섬과 연결된 다리를 막아버린다면 영락없이 갇힌 형국이었다. 자연의 섭리는, 시간의 흐름은, 공간의 제한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에 우비랑 우산 타령이 웬 말이냐 했더니."

능숙한 동작으로 우비를 펴고 앉는 아라의 동작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우비를 꺼내다 말고 배시시- 진호가 웃었다.

"돗자리가 있으면 좋으련만. 모양새는 좀 빠질지 몰라도 누워봐요. 따땃하니 잠드는 건 시간문제."

오전 내 해님과 대면한 티베리나 섬의 돌바닥은 뜨끈뜨끈했다. 큰 대자로 누워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자세를 잡고 우산으로 상반신까지 차단한 아라는 이내 탄성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진호를 부추기자, 아라를 따라 그 역시 자세를 잡았다.

"아까 생각나는 게 있어서."

"응?"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고, 마네의 그림. 미술 시간에 본 적 있을 텐데."

한 대 칠 기세로 아라는 작정하고 모로 누웠다. 그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이 방향을 잃고 바닥에 뒹굴자 가까스로 우산을 잡아 다시 해를 가렸다. 진호를 향해 모로 누운 자세 때문인지 몰라도 이어 아라가 뱉은 말들은 다분히 삐딱했다.

"건 밤의 용도고, 실망인걸요."

"명화인데."

"유리병에 넣은 편지라면 몰라도. 아무리 낮이밤감이라고 해도."

피식- 진호가 웃었다. 이에 질세라 아라 역시 물들었다.

"또 왜?"

"실은 난 포석정이 떠올랐거든."

"포석정이라면.. 통일 신라시대 그?"

마치 포석정의 그림을 그려보듯 잠깐을 멈춰 있던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기엔 물의 흐름이 제법 거친 걸. 술잔을 띄우자마자 엎어질 기세라고."

"그렇다는 거지. 가끔 엉뚱해요. 내가."

"아니던데. 자주 그러던데."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관광지도, 그렇다고 역사 지구도 아닌데."

"사무치는 고향 생각에 밤 잠 설치는 나날일까 봐."

"설마 밤섬? 표준어를 기가 막히게 구사해서 그렇지 내 고향 서울 아닌데."

"그건, 알아요."

"알면서도 이러는 건?"

"둘러봐도 병원, 성당이 고작인 작은 섬이지만, 오침 명소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기에. 이건 표면상의 이유일 뿐 대화를 이어가려면 이 방법 밖에 없으니."

아라를 향해 몸을 틀고 그제야 그도 크게 웃는다. 우비도, 우산도 애당초 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호사를 다 누리지 못했다. 서로를 향해 모로 누운 탓에 남아도는 우비와, 반 자쯤 내민 얼굴로 인해 방향을 잃은 우산은 마주한 해님 보기가 민망한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체스티오(Ponte Cestio) 다리를 건너 Vicolo di S. Maria in Cappella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Basilica di Santa Cecilia in Trastevere,, 교황 우르바노 1세(재위 기간 222-230)에 의해 건립된 이 성당에 전해지는 성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때는, 로마 제국 후기인 230년 경의 일이다. 당시 로마 제국은 국가차원에서 기독교를 탄압하던 시절이었다. 여기 '체칠리아'라는 귀족 가문의 여성이 있다. 그녀는 남편과 시동생을 개종시킬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느 날 그들은 순교 당한 기독교인들의 장례를 치러주다 체포되어 남편과 시동생은 참수형에 처해졌고, 귀족 신분이었던 체칠리아는 질식사를 선고받는다. 그런데 그녀를 열탕에 가두고 불을 지펴대도 멀쩡하자 결국에는 참수형에 처하기로 했다. 당시 로마 형법에 의하면 참수형을 당한 사형수에게는 세 번까지 칼을 내리칠 수 있었는데 세 번째 집행에서도 목에 난 상처에서 피만 흘러내리자, 이에 겁을 먹은 망나니는 줄행랑을 쳤고,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집을 성당으로 개조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흘 만에 숨을 거둔 그녀는 산칼리스토 카타콤베에 매장되었다.

교황 파스칼 1세(재위 기간 817-824)가 성당을 재건축하고 이곳으로 성녀의 유해를 옮겨온 것은 822년, 1599년 다시금 성당을 재건축하며 유해를 확인하기 위해 관을 열였는데 유해는 썩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 한다. 이에 참수형을 당했던 당시의 기록을 토대로 스테파노 마데르노는 <성녀 체칠리아의 순교>를 제작하였다. 목 위로 선명히 드러난 칼자국,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손동작을 한 채로 얼굴을 가리고 모로 누워 있는 성녀의 조각상은 성당의 제단 아래 고이 모셔져 있다. 수많은 로마의 성당 가운데서도 유독 주목을 받는 이유는 손이라도 살짝 얹으면 피가 배어날 듯한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예술 작품을 넘어, 체칠리아 성녀의 깊은 신앙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은 아닐까?


"체칠리아. 체칠리아라.. 설마 내가 아는 체칠리아와 같은?"

"그 눈썰미 칭찬해. 숨을 거둘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했고 이런 연유로 음악의 수호 성녀로 추앙되어, 순교한 날인 11월 22일은 산타 체칠리아 축일로 음악 관련 행사가 열린다고. 게다가.."

"로마 국립음악원의 이름 역시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과연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라의 말끝을 채며 진호는 도리질을 했다.

"졸업생들은 알 테지."

"대관절 네 놈은 누구더냐?"

"무슨?"

"슬슬 무서워져서. 집착인가?"

"처음엔 오지랖, 지금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거라 해두죠. 잡생각 대신 넣어두라고."

곧추 세운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콕 집어 가리키자 그는 별안간 커진 눈을 앞세웠다.

"'의식의 흐름대로, 발길 닿는 대로 떠나 보자'한 여행이었는데,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기 바빠 잡생각 따위 넣어 둘 공간 없다는."

"붙잡은 건 내가 아닐 텐데."

"해서 좋다고. 머리가 기억하는 여행이 될 테니."

기껏 올린 보람도 없이 금세 꼬리를 내리는 진호의 그 모습에 아라는 깔깔 웃었다. 도망가지 못한 웃음은 이내 진호에게 달라붙었다.


골목을 빠져나와 Porto di Ripa Grande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San Michele a Ripa,, 기록된 최초의 소년 교도소로, 애당초 설립 목적은 교도소가 아니었다 한다. '로마 자선의 사도'인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재위 기간 1676-1689)의 뜻에 따라 그의 사적 재산을 토대로 1686년-1689년 지어진 이 단지는 버려지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받아들였고, 정확히 4년 후 젊은이들에게서 노인, 어린 고아들로 그 대상을 확대해 전문 교육을 제공하게 된다. 이후 예술학교와 태피스트리 작업장이 설립되어 1926년까지 태피스트리의 생산과 더불어 병원과 고아원으로 그 용도를 넓혀갔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11세(재위 기간 1700-1721)에 의해 미성년자를 위한 감옥이 설립되었다. 1704년의 일이다. 비행소년들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수용 대상의 연령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며, 더 나아가 여성들을 수감하는 감옥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총면적 2,5000제곱미터의 테베레 강을 내려다보는 산 미켈레 감화원이 있던 건물은 현재 이탈리아 문화부 소속으로 내부에서는 당시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콩시에르주리가 생각나는 건, 나만인가?"

"오!!"

"공연차 파리 갔던 동료가 외관에 감탄하고 용도에 놀랐다는."

"소개해줘요. 코드가 나랑 딱이네. 유부남이라는 되지도 않는 핑계 대지 말고."

"왜 남자라고 단정 짓지?"

아라의 고개가 돌아간 건 그때였다. 그 시큰둥한 반응에 그는 공격 태세를 스스로 접었다.

"물과 감옥은 같은 선상인가? 알카트라즈, 이프섬, 프리지오니 감옥 등. 다 물과 연관이 있으니."

"보길도는 왜 빼요?"

"거긴, 형벌 아닌 자의에 의한 선택이잖아."

"은둔 생활, 마음의 감옥 역시 감옥의 넓은 선상이기에."

말하고도 멋쩍은지 아라를 코끝을 쓸었다. 산 미켈레 감화원을 천천히 눈으로 훑은 진호는 양팔을 감싸 쥐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용도를 알아서 그런가? 어째 좀 으스스하다."

"난 좀 다른 시각인데, 여기나 콩시에르주리나 결국 빠져 죽을 만큼의 수위는 아니잖아. '저 물살을 손으로 느껴보리라',, 다짐했을 거 같아. 나였더라면 하는 가정법을 대입해 본다면."

"내 생각도 그래. 바퀴벌레도 잡아먹고, 쥐도 잡아먹으면서."

"왜, 벽은 안 뚫었고?"

"그때도 현대식 연장이 있었을까?"

초점이 나간 대화의 끝엔 웃음만이 맴돌았다. 한때 소년 교도소였던 낡고 바랜 과거의 흑사진과는 달리 그들이 쏘아 올린 티 없고 청량한 웃음은 새벽녘의 이슬을 한껏 머금은 잎사귀의 찰나의 순간을 담은 것과 같았다.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이 한데 섞인 커다란 담쟁이덩굴을 힘겹게 이고 있는 아치형 나무문, 그 문을 열면 중세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할 듯한.. 본연의 빛깔을 조금 잃은, 제 멋대로 생긴 건물들로 빼곡한, 미로처럼 난 길을 헤매다가 만나는 성벽은 마치 길의 경계를 알리듯 우뚝 서 있다. 형형색색은커녕 제대로 된 간판 하나 내걸지 않고 영업 중인 상점들, 좁은 골목길에 마주한 야외 테라스로 하여금 일방통행만이 가능해도 불평은커녕, 암묵적 합의라도 한 듯 양보의 미덕을 실천하며 치고 또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모양도 색도 면적도 제각각인 돌바닥을 내리비추는 드문드문 세워진 가로등..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보통의 불빛은 건물을, 도로를, 사람들을, 그로 인한 트라스테베레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었다. '로마는 트라스테베레로 통한다'는 신조어가 생긴 듯, 어딜 가나 북적여 그로 인해 활기찬 저녁의 모습, 산타마리아 테베레 광장 분수의 계단 다수의 무리들 속, 낯익은 모습의 그들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던 광장에 때아닌 경적 소리가 울렸다.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

"12시 아직이라."

급히 엉덩이를 떼는 진호를 완강히 제압하는 아라였다.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며 진호는 양팔을 감싸쥐었다.

"눈매가 기다란 게 한복이 잘 어울릴 상이네. 소름!! 어떻게 알았어요?"

"공평하신 하나님이 주신 능력 일명,, 촉 되시겠다. 마침 성당 근처라 배가 되었다는."

아라의 손가락 끝에 트라스테베레의 산타마리아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Trastevere)이 걸려 있었다. 어이없는 듯 고개를 젓는 진호를 빤히 보다 이내 채근해 대었다.

"해서 누굴 만나고 싶은 건데. 설마 단테?"

서둘러 엉덩이를 떼는 아라를 이번에는 진호가 말렸다.

"트라스테베레 내에 단테의 집이 있다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슬쩍 넘어가려 했건만. 이런."

"슬픈 사랑일랑 관심 없고요."

"그럼 누구?"

"누구가 아니라 그냥 어디로든 좋을 듯해서."

감성이 출근해서일까?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가로등 불빛의 온도만큼 스며들기 적당했다. 그 온도에 취했는지 아라는 상념 속으로 빠져든다. 행여 들썩이기라도 하면 마주한 어깨가 닿을 만큼 작은 차를 타고 골목을 돌고 또 도는,, 인적이 드문 골목을 휘청이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는지 어둠마저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는 그 모습을,, 그의 말이 맞았다. 이 밤 단둘이라면, 어디라도 좋을 듯했다.


"트라스테베레 투어,, 맘에 쏙 드셨나요?"

호스텔을 지척에 두고 선 그들이었다. 자신의 물음에 반응이 없자 아라는 다시금 입술을 떼었다.

"산타마리아 광장 생각 외로 좋았어. 그죠?"

재차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실은 인터넷 서핑하다 발견한 어느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대로 복붙 했지."

자진납세는 애국이기에 아라는 이실직고했다. 굳게 닫힌 진호의 입이 열린 건 그때였다.

"한 바퀴만 더 돌자고 하면 그건.. 실례인가?"

결국, 이 말을 하려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살짝 언짢아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매우 만족만 해준다면야. 오른쪽 아님 왼쪽으로?"

팔을 크게 저어대며 아라가 걸음을 옮기자 진호 역시 이에 응했다.


*에피다우로스(Epidauros) -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아르골리스(Argolis) 북동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현재는 펠로폰네소스 지역에 속하는 기초 자치 단체(디모스) 중 하나이다.


*에트루리아(BC 900년 무렵-BC 264년) - 이탈리아 중앙부 티레니아 해 쪽 테베레 강과 아르노 강 사이에 있는 지방의 옛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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