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만. 참."
뜬금없는 진호의 말에 평온하던 아라의 신경 세포들이 일제히 반응을 했다.
"무슨?"
"바사리 통로.. 말입니다."
뾰로통한 진호와는 달리 아라는 좀 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슬며시 미소까지 지으면서 말이다.
"알다시피 폐쇄된 상태.. 그 좋은 소식 형제님께서 전해주셨으면, 까치보다 먼저요."
대답 대신 그는 흐응 하고 콧김을 내어 보냈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존스 박사였어요. 꼭꼭 감춰진 세상 진귀한 보물을 찾아다니는.. 5천 년의 유구한 우리 역사에서도 기록된 바 혹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보물들이 많을 텐데."
말없이 끄덕이는 진호를 보며, 아라는 흥을 돋우기 위한 추임새를 툭- 던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 장영실이었다는,, 들어봤죠?"
"응."
"기록은 물론 당사자 또한 존재하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그럼에도 팩트를 바탕으로 한 설 같다는."
"얼토당토않다고는 생각 안 했어. 그의 업적, 궁에서 쫓겨난 이유와 그 후의 묘연한 종적과 가묘, 두 사람의 여러 작품들 사이 한결같은 유사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절묘한."
힘을 실은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진호는 제 몸마저 아라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의 명성은 조선에 머물지 않고 명나라에까지 자자했어요. 분명 눈엣가시였을 터, 안안팎으로 계속되는 압박에 혹 장영실을 빼돌린 것은 아닐는지!! 만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한글을 창제한 그 어진 임금 세종이? 고작 가마 사건을 핑계 삼아?? 장영실을 내쳤다???"
꽉- 다문 그의 입술이 대신 말을 건넸다. 어불성설이라고..
"명나라 정화 대장의 대항해 기록들은 다수 등장하잖아. 이들의 만남 사이 세종대왕이 있었고 두 사람이 함께 로마로 갔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에 이단으로 몰려 교황청에서 쫓겨나 피렌체로 간 그가 소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 그의 스승이 되었다면?"
마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듯, 그의 목소리엔 흥분과 설렘이 공존하고 있었다.
"다빈치의 비행기 스케치와 조선의 비차(飛車)는 닮은꼴이에요. 1490년 그가 조립한 그리스어로 '새'와 '날개'를 뜻하는 '오니솝터'의 단점은 비행이 아닌 이륙이었기에, 이를 보완하여 그로부터 10년 후 사람 등에 붙이는 글라이더를 만들었어요. 조선의 비차(飛車)는 임진왜란 당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진주성 전투에서 비차(飛車)를 사용하여 외부와 연락을 하는 한편, 영남 고성(菰城)에 갇혀있던 성주를 태우고 30리 밖으로 탈출하게 했다는 것뿐 아니라 임진사(壬辰史)를 기록한 '왜사기'(倭史記)에는 당시 일본군이 작전을 전개하는데 큰 곤욕을 치렀다고 전해지나, 비차(飛車)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왜사기'(倭史記) 역시 많은 부분이 소실된 상태여서 이를 뒷받침하기엔 부족하다는.. 물론 연대만 놓고 보면 다빈치가 앞서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정보력과 운송 수단을 통해 그의 장치를 도입했다는 정황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으니.. 수차례의 실험을 통해 실전에서 사용되었을 터, 그렇다면 임진왜란 이전,, 과연 누구였을까요?
또한 다빈치의 다연발로켓 스케치와 장영실의 신기전은 발사 원리는 물론 화구의 형태까지 놀랍도록 유사해요. 게다가 그의 <산타 마리아 델라 네베의 풍경>은 유럽 최초의 풍경화로 정평이 나 있죠. 르네상스의 시대가 도래했고 당대의 유행하던 성화도 아닌, 이렇다 할 색채감 하나 없는, 흡사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은 정말 그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었을까요? 다빈치의 그림을 다수 모사했던 루벤스였어요. <한복 입은 남자> 뿐 아닌,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이들 역시 우연일까요?"
자그마한 숨을 재빠르게 내어 보내더니 그는 말을 이었다.
"현존하는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는 1402년 제작된 것으로, 중국과 조선, 일본, 유럽과 아랍, 인도와 아프리카의 사하라, 킬리만자로, 나일강까지 기록하고 있어요. 콜럼버스는 이보다 한참 늦은 1450년에 태어나요. 토스카넬리가 장영실과 정화 대장을 만났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더불어 세계지도의 존재에 대해 알았다면? 그가 포르투갈 왕과 콜럼버스를 통해 신항로 개척의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으니까..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영국의 역사학자 역시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탐험은 정화 대장의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하나하나 끼워 맞추면 결국 장영실과 다빈치로 완성되는 퍼즐인데..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 보고 싶다."
입 안에 머금은, 한데 뭉쳐있던 숨을 크게 내쉬는 진호였다.
"만약 그렇다 쳐요. 다빈치는 본디 천재였고, 루벤스의 작품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 노예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것이며, 콜럼버스는 인도와 아프리카 등의 신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며, 정화 대장은 7차 대항해 도중 사망했고, 장영실은 가마사건으로 궁에서 쫓겨났다. 즉,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며, 이들의 상관관계는 어불성설이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해야 하는 거니까. 물론 침을 튀겨가며 갑론을박은 할 테지. 그치만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존재한다면?"
"꽁꽁 숨기거나 없애겠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채 삼키지 못한 그들의 속내는 꾹 다문 입과 거센 각도의 도리질로 여과 없이 표출되었다.
"지구는 둥글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교황과 마주했던 그 옛날의 장영실 역시 그러했을 테지. 보이지 않는 힘에 눌린 듯 그의 어조는 꽤나 지쳐 있었다. 이에 동조하듯 아라 역시 기운 없는 웃음을 흘렸다.
"우피치 홈피에서 바사리 통로 영상을 보고 소름 돋았잖아. 살아생전 이건 꼭 보리라 다짐도 했다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 화제도 목소리도 달리하며 아라는 그의 관심을 돌리려 했고, 그는 순순히 응했다.
"그 좋은 소식 전할 날이 곧 왔으면."
"똑똑똑.. 노크가 먼저입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진호의 눈과 입은 크게 웃음을 쏘아 올렸고, 이에 아라의 입도 시원스레 벌어졌다.
여기, 한 남자의 불안에서 시작된 비밀스러운 업적이 있다.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의 아들이었던 줄리오 데 메디치(Giulio de’Medici)는 젊어서 추기경이 되어 사촌인 교황 레오 10세(재위 기간 1513-1521)의 보좌로서 교회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후 교황 하드리아노 6세(재위 기간 1522-1523)가 사망하자,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기간 1523-1534), 219대 교황에 등극하게 된다. 권좌에 오른 그는 1510년 피렌체에서 출생한 자신의 사생아였던 알렉산드로를 피렌체 공화국의 군주로 임명하여 통치를 맡긴다. 로마 약탈 사건의 중심에 서서 교황청뿐 아니라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던 클레멘스 7세 못지않게 알렉산드로 역시 사악하고 방탕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가 통치했던 5년간은 피렌체 공화국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으며, 메디치 가문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이유였을까? 결국 친척인 로렌치노(Lorenzino de' Medici)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그러나 차기 계승권자인 로렌치노가 통치권을 포기하자, 이에 급히 소집된 시의회 의원 48인은 합법적인 계승권을 갖고 있던 코시모 1세 데 메디치(Cosimo I de’Medici)를 불러들인다. 피렌체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무겔로(Mugello)에서 생활하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
알렉산드로의 폭정에 지친 탓에 당시 피렌체의 정치적 기후는 귀족정보다는 공화정으로 기울고 있었다. 어리고 순박했으며, 겸손함까지 갖춘 그의 태도와, 모든 권한을 시의회에 일임하겠다는 정치적 공약은 시의회 의원들을 마음을 단번에 빼앗았고 이에 그들은 코시모 1세를 공화정의 수장으로 추대한다. 그를 앞에 세우고 자신들이 실권을 행사하려는 꼼수를 감춘 채 말이다. 그러나 권좌에 앉자마자 코시모 1세는 깊숙이 감춰뒀던 발톱을 세운다. 유력한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불리한 법을 폐지하고 시의회 의원들을 해임한 후, 독재자로서의 면모를 내세워 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에 공화정 인사들은 대거 피렌체를 떠나 피렌체 출신의 망명자들과 협력하는 한편, 피렌체를 적대시하던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군대를 모은다. 1537년 이들이 토스카나로 진군해 오자, 스페인 군대의 도움을 받아 맞서 싸운 결과, 코시모 1세는 대승을 거두었고, 이는 그의 절대 권력에 한껏 힘을 실어주었다. 더하여,, '反프랑스, 親황제'라는 정치적 노선을 내세워 대외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의 황제의 신임을 얻었고, 자신의 반대편에 선 인사들을 숙청했으며,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나, 차기 계승권자인 동시에 알렉산드로를 암살한 로렌치노를 제거하며 내부 역시 단단히 다진다. 1547년의 일이다.
그러던 중,, 대대로 메디치 가문이 사용했던 메디치 궁전(Palazzo Medici)과, 산 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을 뒤로하고, 아르노강 북쪽 피티 궁전(Palazzo Pitti)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긴다. 로렌치노 암살 2년 후인 1549년의 일이다. 이는 대내외적으로 불안의 싹을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적 갈등이 계속되었음을 증명하는 일련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거처를 옮기는 건 가능했지만, 피렌체의 정치적 중심지이며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의 이전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그가 최고 권력자일지라도 말이다. 해서, 피티 궁전과 베키오 궁전을 오갈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총길이 대략 1km의 '바사리 통로(Vasari Corridor)'가 만들어진 이유였다. 1565년 약 5개월에 걸쳐 완성된, 설계자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이름을 붙인 이 회랑은, 기존 건물을 철거할 수 없었기에 통로는 구불구불했고, 게다가 마넬리 가문이 통로 건설에 반대하여 베키오 다리 남동쪽에 있는 마넬리 탑(Torre dei Mannelli)에서는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베키오 궁전 2층, 코시모 1세의 아내 엘레오노라와 그의 자녀들이 생활했던 개인 아파트(Quartiere di Eleonora di Toledo)에서 바사리 통로는 시작된다. 아뇰로 브론치노(Agnolo Brinzino)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벽과 천장을 장식한 엘레오노라의 예배실, 일명 'Bronzino 예배당' 옆, 벽의 색을 반영해 이름을 붙인 녹색의 방(La Sala Verde)은 엘레오노라의 침실로 사용되었으며, 방 안에 있는 작은 문이 바로, 바사리 통로의 시작점이다. 베키오 궁전과 우피치 미술관은 7 via della Ninna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고, 좁은 골목에서 시선을 위로 올리면, 창문 네 개가 다인 폭도 길이도 짧은 복도가 두 건물을 연결하고 있다. 이곳을 가로질러, 피렌체의 오래된 교회이며 우피치 갤러리에 속해 있는 San Pier Scheraggio의 지붕을 지나 우피치의 최상층으로 들어간다. 통로는 원래 열린 로지아(loggia)였던 갤러리에서 박물관 내 남쪽으로 연결되며, 서쪽 회랑까지 도달하여 깎아지른듯한 계단을 내려가, 튼튼한 석조 기둥이 지탱하는 아치형 주랑(柱廊) 현관을 지나 Lungarno degli Archibusieri 따라 걷다가 코시모 1세의 Medici의 문장을 새긴 방패가 조각된 모서리를 끼고 pont Vecchio의 상점 위를 따라 걷다 Ponte Santa Trinita 방향으로 난, 1938년 아돌프 히틀러의 피렌체 방문을 위해 만들어진 대형 파노라마 창문을 지나 마넬리 탑(Torre dei Mannelli)을 둘러싸며 아치가 있는 67 Via de' Bardi를 경유하여 산타 펠리시타 광장의 Santa Felicita 성당 정면의 로지아를 통과하여 개폐 가능한 창살이 있는 발코니를 지난다. 이곳은 코시모 1세와 그의 가족이 사람들과 섞이지 않은 채 미사를 드린 공간이었다. 다시 via Guicciardini를 따라 피티 궁전 뒤편을 지나 Guicciardini의 채소밭을 지나면 Boboli 정원의 Grotta del Buontalenti 동굴의 왼쪽, 회색 나무문이 보인다. 이곳은 일반 관광객의 출구이고, 코시모 1세와 바사리가 함께 도모한 비밀 통로의 종착점은 바쿠스의 분수(Fontana del Bacchino)의 원형 교차로에서 Palazzo Pitti궁으로 이어진다.
회랑 벽면의 둥근 창문을 통해 도시의 전망과 베끼오 다리 위의 관광객들을 관람할 수 있음은 물론, 17-18세기의 중요한 회화, 조각들과 우피치 미술관에 자리잡지 못한 다수의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걷는 내내 두 눈을 사로잡는다. 안전상의 이유로 2016년 폐쇄되었고, 재개방의 소식이 있긴 하지만 현재는 미정이다.
난데없는 체온이었다. 낯선 향기였다. 뒤통수에 닿은 생경스런 기운으로 아라는 부러 보폭을 크게 벌렸다. 뭇남성이라면 좋으련만 보나 마나 진호일 테니.
"엘라스틴은 아니지만 감았어요."
애먼 머릿결을 쓰다듬는 행동에도, 아라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킁킁거리며 다시금 냄새를 맡았다.
"아~ 감았데두. 탈모 방지 샴푸라 기능은 up, 향기는 down. 뒤통수에 좌르르 한 건 기름 아닌 윤기라는.."
마치 샴푸 광고 속의 모델처럼 머리카락을 흔들어대자, 서둘러 한 걸음을 뒤로 물리며 그제야 진호는 호기심을 잠재웠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여간 신경이 쓰였나 보다. 벌어진 거리로는 모자랐는지, 아라는 손목에 있던 노란 고무줄로 머리카락을 단단히 옭아맨다.
"예전 여학교에서 있었던 일인데. 포니테일을 금지했데요. 왜냐,, 드러난 목선으로 인해 성적 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
"미쳤나 봐. 선생질을 그만둬야지."
무섭게 그의 말을 채는 아라의 말투는 꽤나 격양되어 있었다.
"내가 그 선생은 아닐 텐데."
"별안간 그 얘기를 하는 이유는?"
훤히 드러난 자신의 목선을 두 손으로 빈틈없이 감싸 쥐는 아라였다. 분명 방어를 위한 동작이었으나 그의 눈엔 다른 몸짓으로 여겨졌다. '자칫 손에 힘이라도 가한다면~'
"말하지만, 난 아니라는."
채 누르지 못한 웃음이 새어 나오자 그것마저 참으려는 듯 진호는 쿨럭- 거렸다.
"얌전하던 내 뚜껑 열었으니 잠재워야죠. 앞장서요."
"갑자기?"
진호를 앞에다 세우고 지척의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는 아라의 몸사위는 꽤나 기세등등했다.
"눈만 돌리면 아이스크림 가게. 이탈리아서 그런가?"
"한때는 우리도 그랬었지. 눈만 돌리면 떡집이 떡하니.."
"우리 동네는 안 그러던데."
우는 아이 입에 물린 공갈 젖꼭지의 효과처럼, 격양되었던 좀 전 공기 따위는 잊었는지 아라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벙어리 신세를 자처했고, 아이스크림이 사라지는 속도에 비례해 상기되었던 얼굴색도 차츰 누그러졌다. 아이스크림을 지탱하는 과자를 베어 물자 바삭- 경쾌한 음의 파동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에 발이라도 맞추듯 어깨에 맨 에코백이 절로 들썩거렸다. 몇 발자국을 가지 못하고 다시금 오른쪽 어깨를 들썩거리자,
흥에 겨운 어깨춤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에 진호는 곧장 반응하여 아라의 에코백을 잽싸게 뺏어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책이랑 물병은 번갈아 메고 들고 하며 힘의 무게를 나눈다 쳐. 근데 이건 무게가 제법이잖아."
당황한 듯 바라보는 아라의 시선에, 어깨를 들썩여 보란 듯이 무게를 알리며 그가 건넨 말이었다.
"아니, 냄새 없는 파스를 붙이던가. 온 동네에 냄새 풍기며. 참.."
"신종 향수인데, 몰랐나 봐."
입을 삐쭉이더니 할 말이 아직이라는 듯, 아라는 입술을 떼었다.
"노인, 여자, 아이는 반드시 지킨다. 충성!!"
그러고는 오른손을 눈썹 언저리로 급히 옮기며 늠름한 자세를 취한다. 날이 선 각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김 빠진 콜라처럼 밍밍하기 그지없는 진호의 반응에 금세 시들해져서는 혼잣말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500ML 보다 2L가 싸니까. 팔뚝 뼈가 부러진 거지 어깨는 암시렁도 안 해요. 꼬마 때 일이고 어쩌다 한 번이라 푹 자고 나면 말짱해진다고."
"팔뚝이나 어깨나. 공연 앞두고는 헛기침도 안 해. 왼손은 장식인가?"
"잔소리할 거면 줘요."
에코백을 되찾으려는 아라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길고 또 힘도 있는 두 팔을 이용해 진호는 아라의 움직임을 철통방어하며 자신의 어깨에 에코백을 더욱 단단히 고정시켰다. 뺏으려는, 뺏기지 않으려는 힘겨루기의 한가운데 놓인 물병만이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의 무게를 이고 힘겹게 그네를 뛰고 있었다.
*정화 - 명나라의 환관 군인이자 탐험가. 1405년 영락제의 명에 따라 대항해의 총지휘관으로 출정하여, 수차례 항해와 탐험을 하였으며 1433년 7차 항해에서 돌아오는 중 배에서 병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로 1.6m 세로 1.5m의 크기로, 1402년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혼일강리역대국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제작자로 추정되고 있다.
*로지아(loggia) - 이탈리아 건축에서, 한쪽 벽이 없이 트인 방이나 홀을 이르는 말.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발달하였으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흔히 광장과 연결하여 지었다.
*주랑(柱廊) - 건축에서, 수평의 들보를 지른 줄기둥이 있는 회랑(回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