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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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3. 2025
"외국인으로서 여기까지 올라온 걸 보니 남편분이 곁에서 많이 도와주었나 봐요."
"아, 네."
대만 사람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 마음속 간직해 둔 한 조력자가 떠오른다.
곁에서 내 표정을 보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고사리손을 내밀던 큰 아들이다.
어릴 적 그러니까 내가 다른 엄마들과 다르다고 느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누가 말하거나, 부탁해 본 적 없을지언데 ...
본능적으로 이 엄마를 돕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이 아이 천성이 그래서 그런 걸까?
아이들은 환경에 맞춰 자라난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태어나 보니 말이 서툰 외국인이 엄마이다.
둘째 아들도 나를 도와주었지만, 큰 아들하고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큰 아들은 내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며 말을 하는 반면, 작은 아들은 속으로는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슬쩍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반 친구 엄마들이랑 주고받는 대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부들과 주고받는 대화를, 큰 아들은 곁에서 묵묵히 듣고는,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방금 내가 말한 중국어를 교정해 주곤 했다. 종종 방금 한 말을 까먹을 때가 있지만 인내심을 갖고 상기시키며 가르쳐준다.
“엄마 하는 말 다 알아듣는데, 그래도 이렇게 말하면 더 좋을 것 같아”라고 서두를 달고는 정정해 준다. 나는 그런 유치원생, 초등의 아들을 많이 칭찬해 주었다.
“넌 내 국어(중국어) 선생님이야, 넌 선생님이 되면 니 학생들은 참 행복하겠다. 넌 참 잘 가르치거든.” 이런 말은 유치원 때부터 건네던 말이었다.
유치원 갈 때는
“유치원에서 동요 잘 배워와서 엄마 가르쳐줘.”
“응, 엄마”
큰 아들은 내게 동요도 잘 가르쳐줬다. 일반 가정과 사뭇 다른 광경이다.
“니 엄마, 어느 나라 사람이야?”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일 게다.
주말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내가 그 친구들에게 몇 마디하고 돌아서면, 그 친구들이 바로 아들에게 묻는 말이 내 귓가에 들린다.
괜히 말을 걸었네 생각하곤 했다.
같이 쇼핑하러 가거나 외출했을 때, 특히 전화할 때 엄마를 대신해 말해 주곤 했다.
전화는 아직도 좀 어려운 면이 있다. 대만 남부 사람들은 중국어(보통화) 외에 대만어를 사용하거나 둘을 섞어 쓰기도 해서 중간중간 소통이 끊기기 일쑤이다.
외국인인 내가 학과장이 되어, 입시 면접을 진행해야 할 때였다.
면접일 하루 전, 집에서 60명 정도의 명단, 그러니까 180자의 한자를 한 자 한 자 성조 포함해서 발음을 가르치며, 발음 연습을 시켜 줄 때는 뭉클했다. 열심히 또박또박 발음하며 써주는 초등 5학년인 아들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은 아들에게 화가 치밀어 큰소리로 야단치는 나를 볼 때도 남 몰라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다가와서 손을 살며시 잡고는,
"엄마, 오늘 많이 피곤하지?"
어떨 때는 화가 잔뜩 나 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로 안아주기도 했다.
그러면 폭발하기 직전인 불덩어리가 금세 녹아드는 듯했다.
언젠가 남편은 큰 아들의 99%가 나를 닮았다고 하며, 나를 닮았기에 큰 아들을 좋아한다는 알지 못하는 묘한 말을 했다. 그는 큰 아들을 많이 아꼈다.
외모는 말을 하지 않으면 한국 사람이라 해도 아무 손색이 없다. 대만 사람과 다른 외모를 지녔기에 중, 고 때 학교에서 인기도 꽤 있었다.
성격은 나와 많이 닮았지만, 기본이 닮은 거지, 그 기본에서 진화된 모습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면에서 나보다 진화되어 있다.
나는 내성적이어서 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데 반해, 큰 아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한다.
닮아서일까? 표정만 보더라도 어떤 기분인지 어떤 감정인지 헤아릴 수 있을 때가 많았다. 아마 서로가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은 내가 힘들어하거나 슬퍼할 때 내게 따뜻한 말을 아낌없이 건네 주었다. 그도 이런 저런 고민을 나와 많이 나누었다.
단 둘이 있을 때, 그 어떤 말이 오가지 않아도 그저 편안하고 평온했다.
큰 아들이 초등 3학년,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처음으로 한국 가족들에게 대만의 삶을 털어놓으며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일주일의 귀향 시간을 마치고, 공향으로 향하는 아침, 오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니 분신 같은 큰 아들을 놔두고 나갈 수 있겠니?"
"아들 하나 더 입양해서 키운다고 생각하며 살면 안 될까?"
그 전날 밤 잘 때까지만 해도, 오빠는 "네 생각을 존중해. 니가 행복해야지."라고 말하더니만, 하룻밤 사이 생각이 바뀌었는지, 남편을 아들 하나 입양한다는 생각으로 좀 더 참아 살라고 하셨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 큰 아들의 존재는 정말 위안이 많이 되었다. 그야 말로 든든한 조력자였고, 곧 허무러질 것 같았던 삶을 지탱해준 버팀목이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아주 가끔 잊지 않을 만큼 내 앞에 나타난다. 가끔 보기에 만날 적마다 한층 어른이 되어있음을 걸 느낀다.
나의 행복을 늘 염원해주는 조력자, 나를 지탱해 준 조력자, 니가 있어 엄마 행복하구나.
[사진: 이미지 일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