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의 토요일 아침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또 한 번의 시도를 했지만 일으킬 수 없어 벌러덩 드러누었다.
어디가 고장 난 것일까?
하지만 난 일어나야 했다.
그날은 이 지역에 한국문화행사가 있는 날이라 그 행사에 한국어말하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가야 하는 날이었다. 온 힘을 다하여 몸을 일으켰다. 벽을 잡고 방을 나와 부엌으로 가려고 하는데,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의 심한 통증이 전신을 공격해 왔다. 비명을 지르며 부엌 옆 방의 침대 위로 쓰러지듯 내 몸을 던졌다.
왜, 어디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저 통증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걸을 수도 똑바로 설 수도 없다. 몸을 바로 일으키려면 통증이 너무 심했다.
남편에게 호소했다.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근데 걸을 수 없다. 통증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고, 구급차를 부를 생각을 나도 남편도 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부축을 받으며 몸을 구부려 차에 타는데, 오열을 했다.
아팠다. 어디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 판단할 수 없었고 그저 아팠다. 몸을 움직이는 그 자체가 통증이었다.
동네 내과에 차를 세우고 남편에게 부축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남편 티셔츠의 한 쪽 어깨가 다 젖어 있었다. 통증 억제 주사를 맞고서야 좀 걸을 수 있게 되고 그제야 팔을 내릴 때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러 병원에서 X-ray를 찍고 검사를 해봤지만 직접적인 통증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일시적으로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과 주사 처방을 했다.
약을 복용한 지 3일째 되던 날, 약의 복용으로 인해 위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약봉지를 여는 순간 구역질이 나는 터라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을 중단하니까 통증이 다시 되살아났다.
발병하고 5일째 되던 날, 5일간 얼굴 씻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엄마, 좀 괜찮아요?" 밤에 귀가한 중3 큰 아들이 물어왔다.
"응"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는 아들에게,
"내가 딸을 낳았어야 하는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내 말에 걸음을 멈추고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5일간 세수 못 했어."
아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수건에 물을 적셔 와서는 내게 내밀었다.
"엄마 팔을 움직일 수 없어."
아들은 젖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아, 너무 아파. 살살 닦아 줘."
세게 닦은 것도 아니었지만 닦는 충격에 몸이 아팠다.
팔을 내릴 수 없어 학교 강의도 3주간 휴강을 했다. 3주 병가 내고 침대에 몸을 던진 채 하루 종일 꼼짝 못 해 있으니까 저절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뭐를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지?
누구를 위해?
육체를 너무 막 써온 나날들이 참으로 후회스러웠다.
운동하는 시간을 아끼던 자신이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발병은 일본 학술회의 출장을 다녀온 2주 후에 터진 거였다.
발병 3주 후, 가까스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강의실에 쿠션을 가지고 가서 팔꿈치 밑에 놓아야 통증을 잠시 견딜 수 있었다.
동네 작은 병원, 가오슝에서 가장 크다는 종합 병원에 가서 검사해도 병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던 와 중, 지인의 소개로 간 병원에서 목디스크로 판명되었고, 주사로 일단락했다.
그렇지만 완치된 건 결코 아니었다.
의사의 경고 대로, 나의 생활 패턴을 180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전처럼 무식하게 고개 숙여 계속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할 수도 없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몇 년간 해오던 명상도 앉아서 할 수 없다.
평범한 일상,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으로 나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목디스크가 발병하기 전조 증상은 여러 번 있었다. 3,4달에 한 번 꼴로 어깨, 팔이 고장이 났다. 어깨,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극심한 통증이 따랐다.
나는 2주에 한 번 꼴로 마사지나 접골원에 가서 치료를 받곤 했다. 치료를 받으면 서서히 좋아지고, 또 무리하면 발병하고, 그러기를 몇 년간 계속 반복했다. 내 몸은 내게 수없이 사인을 보내고 경고도 했지만 그것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과로며 수면 부족, 게다가 계속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던 게 발병의 주요 원인일 게다.
내 육체를 보살피지 않은 대가였다.
그런 생활 속에, 느닷없이 고향 오빠의 당뇨병 소식을 들었다. 고향에 있는 오빠가 당뇨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2,3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짬을 내서 당뇨에 관련된 자료, 유튜브에서 소개되는 내용들을 보고, 듣고 있었다. 당뇨에 괜찮은 식이요법, 치료 방법들을 이해하고, 오빠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멀리 떨어져 사는 동생으로서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 해서 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와 중에, “채식의사의 고백”을 비롯해 , “다이어트의 불변의 법칙”, “나는 질병없이 살기로 했다”, “지방이 범인”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보내온 이 책들은 20여 년의 연구와 몸소 치료 경험을 토대를 바탕으로 쓰여 있었고, 그 책 속의 글귀들이 내 심장을, 내 마음을 파고들어 왔다. 병의 치료가 아닌 병의 예방의 차원에서 내 생활 습관, 특히 식생활 습관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씩 홍역을 치르듯 몸져눕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해 준 책들이었다.
책 대로 채식위주의 식이요법을 했다. 물론 100% 다 따라 할 수 없었지만, 4권의 책에서 얻은 핵심 포인트를 중심으로 실천해 나갔다.
첫째, 동물성 단백질과 동물성,식물성 지방을 섭취하지 않는다.
둘째, 기름에다 불을 가해 하는 조리법을 피했다.
셋째, 아침을 과일(/야채)로만 했다.
넷째, 과일은 공복에만 먹었고, 간식도 되도록 과일로 했다.
다섯째, 흰쌀밥과도 작별하고 현미(현미3:귀리1:흑미1)밥으로 했다.
여섯째, 녹말 음식(과일, 야채 그리고 현미를 제외한 곡물)으로 주 식단을 꾸렸다.
위의 건강식단은 매일 기록해 나갔다. 아침, 점심, 저녁에 내가 섭취한 것을 엑셀 파일에 매일 기록했다. 루틴이 되고 나자 그 성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목디스크 관련 성과로는 컴퓨터 앞에 좀 오래 앉아 있으면 목, 어깨가 뻐근하고 불편했던 증상이 일제히 사라졌다. 그리고 산책할 때 가볍게 살짝 몇 걸음만 뛰어도 전신이 아팠는데 뛸 수 있게 되었다. 뛸 때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을 잃은 아픈 시간들이 없었다라면 나는 책의 가르침 대로 실천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