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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은 외국인을 배척하지 않는다

by 이경보

2006년에 대만에 와서, 2007년에 대만의 대학 강단에 선 지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뿌듯하다고 느낄 여유는 없었고 그저 낯설고 긴장하기만 했다. 막막하기만 하던 그 자리도, 시간이 약이라고 인젠 적응이 되어 있다.




인연이 닿아 머문 내 생의 세 번째 나라.

세 번째 나라다 보니, 무의식 속에 앞서 경험한 한국, 일본에서의 체험을 잣대로 들이대고, 대만, 대만 사람을 평가하기도 했다.

대만에 막 왔을 때는 이곳 사람들이 투박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대학에서 5년쯤 지날 즈음부터였다. 대만 생활이 차츰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외국인, 외국 문화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외국인을 배척하지 않기에 나처럼 인맥이 전혀 없는 사람도 대학에 들어가 현지인들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외국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다 하기보다 외국인에 대해 호의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근거는 내 일상에서 셀 수 없이 많지만, 몇몇의 경험을 소개할까 한다.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식당에 전화해서 해물탕을 주문했는데, 그런 메뉴 없다고 해. "

"정말로? 이상하네. 내가 지금 전화해 볼까?"

"그래, 해 봐. 당신 그 식당에서 몇 번이나 사 왔잖아."

"그러게."


"여보세요, 해물탕 하나 주문하고 싶은데요."

"아, 네. 20분 후에 가지러 오세요."

가게 주인은 내 주문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바로 ok 했다.


"주문됐어. 지금 가지러 갔다 올게."

"참, 기가 막히네. 내가 주문하면 퉁명스럽게 그런 메뉴 없다고 하고, 당신이 주문하면 알았다 하고. 아, 나 참!"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는 이 가게에서 몇 번이고 해물탕을 사 온 적이 있다. 아이들이며 남편 모두가 좋아해서 냄비 들고 가서 가져오곤 했다.



식당에 도착한 나는 바쁘신 사장님에게 인사하고 바로 메뉴판으로 눈이 갔다.

어머, 이럴 수가! 아무리 눈을 비비며 찾아봐도 메뉴판에는 해물탕이 없었다.

멍하니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다 되었습니다!" 하며 해물탕을 건네주었다.


"사장님, 메뉴에 해물탕이 없네요!"

"없죠."

"아니, 근데 제게 만들어 주셨잖아요!"

"손님에게만 한정 메뉴예요."

"어머, 그래요! 죄송해요, 전 메뉴에 있는 줄 알고 줄곧 시켰거든요."

사장님은 빙그레 웃으시고는 손을 바삐 움직이며 다른 주문들을 만드셨다.


해물탕을 들고 집으로 향하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맨 처음 해물탕을 시킨 게 언제였을까?

생각나지 않는다.

메뉴판을 세심히 보지 않은 채 어느 날 "해물탕 주세요"라고 했더니 그냥 만들어 주신 게 시작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꼼꼼하지 못하고 대충 하는 나로선 그런 주문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내게 맞춰 메뉴에도 없는 요리를 만들어 주시다니...


허스키에다 서툰 중국어를 하는 내 목소리를 단골 가게 주인들은 잘 기억해 준다.

다른 몇몇 가게에도 전화해서 "여보세요, 주문해도 될까요?"라고 한 마디 하면 바로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는 내가 주문하려는 걸 먼저 그쪽에서 말해주는 곳들이 있다.





노부부가 경영하는 동네 단골 우롱차잎을 파는 가게가 있다. 우롱차 사랑에 빠진 나는 단골이 된 지 오래되었다.

그 가게 주인도 외국인인 나를 친구처럼, 딸처럼 대해주신다.

가게 앞을 지나칠 때면 손짓하며 와서 차 한 잔 하라고 하신다.

우롱차잎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비싼 차를 끊어주시며

"이렇게 비싼 차는 사지 말고 가끔 이렇게 마시면 돼요." 라며 성큼 내주신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롱차잎도 좀 싸게 해주기까지 한다.

"맛있는 차도 마셨으니, 찻잎은 원래 가격으로 계산하세요."

"우린 친군데 좀 싸게 줘야지. 친구들한테 주는 가격이에요." 70대의 여사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대만 사람들은 "친구"의 범위가 한국 사람들의 생각과 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친구라고 할 때 그 조건이 나이도 포함되지만, 이곳 대만 사람들은 10살 차이, 20살 차이가 나도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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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주부들도 잘 챙겨주었다. 맛있는 요리를 하면 나눠준다.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말에 주차장 추첨에서 당첨되지 못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몰래 주차 한 자리를 내게 건네주곤 했다. 당첨 안 된 건 나 말고 여러 사람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챙겨주는 거였다.

외부에서 주차할 곳을 찾아야 할 판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준 게 세 번 정도 있었다. 3년간을 그 주부들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외국인인 나를 배척하지 않았다.

대만의 대학에서는 매년 우수 교수, 우수 담임을 선발한다. 교수들의 투표로 인해 결정이 되는데, 그런 자리에서도 외국 교수에게 표를 던져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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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교수 1번, 우수담임 2번 선정되었어요.)


대만을 외국인에게 매우 우호적인 나라라든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라든가, 이주해서 살고 싶은 나라 중 하나로 칭송되곤 하기도 한다.

내 경우는 살면 살수록 좋은 나라, 살기 좋다고 느껴지는 나라이다.


가장 맘에 드는 점은 격식을 너무 중시하지 않고, 남 의식을 지나치게 하지 않으며, 생활 템보가 좀 느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이곳은 패션 감각도 좀 둔하다. 그게 내겐 안성맞춤이다.

내 지인들은 대만 사람들이 선하다, 착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생활 습관의 차이는 익숙해지면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해지자 대만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게 다가왔다. 제도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없다는 것은 오히려 내국인과의 차별이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외국인도 능력이 있고 조건이 갖추어져 있으면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기회가 부여받았다. 그래서 나처럼 인맥이 전혀 없는 사람도 대학의 전임 자리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우수 교수를 선발하는데, 그 과정에서 외국인 교수에게 표를 던져준다. 외국인을 배척하지 않고 외국 문화를 수용하는 대만은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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