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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풍경

by 김추억

지난밤 꿈은 스펙터클했다.
좁은 병상 위에 내가 누워있었는데 병상의 사면으로 벽이 세워지더니 뚜껑이 덮였다. 순간 이게 관인가 싶었는데 두려움은커녕 평온했다. 또 그 순간 나는 알렉산더가 되고 싶었다.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 2만 리의 땅을 정복하고 열병으로 죽어갈 때에 자신의 손 하나를 관 밖으로 빼달라는 유언을 했다 하던데...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관속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부활의 아침이다.
오른쪽 손등에 심겨진 주삿바늘 덕분에 왼손으로 양치질을 하고 왼손으로 세수를 했다. 왼손의 기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왼쪽 손바닥만으로 물을 받아 세수를 하니 고양이 세수처럼 된다. 두 손바닥으로 물을 모아 어푸어푸 세수하는 것은 축복이다. 그리고 한 손바닥으로 물을 모아 세수하는 것도 여전히 축복이다. 그마저도 못하는 알렉산더 같은 손도 있다.

수압이 너무 세서 손바닥에 물이 모아지지 않고 물이 다 튕겨나갔다. 수도꼭지를 살짝 눌러 수압을 줄이니 손바닥에 곱게 모여지는 물을 보며 나는 내가 딸아이에게 하는 잔소리가 생각났다. 수압이 센 수돗물처럼 잔소리를 퍼부었다간 다 튕겨져 나가겠구나, 부드럽게 졸졸졸 스며드는 잔소리를 해야지 싶었다.

창밖을 내다보면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데 소나무 전체 몸매가 보이는 건 아니다. 3층 높이에서만 보이는 소나무의 일부분이 보인다. 차분하신 어르신은 열어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다고 말씀하시고 괄괄하신 어르신은 일주일째 소나기도 한 번 없이 가뭄이 들어 큰일 났다고 말씀하신다.

소나무는 말없이 서있다. 햇볕이 뜨거울 텐데 늘 푸르다. 다행히 매미소리가 폭포수처럼 시원하다. 다행히 깍. 깍. 깍. 깍 까마귀 소리가 썰렁하다.

비스듬히 누워 왼쪽 골반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두 손으로 키보드를 치는 손, 두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는 손은 축복이다. 그러나 한 손으로 움직거려 글을 쓰는 것도 여전히 축복이다. 앞의 할머니는 오늘 손등에 주사를 맞아서 뜨개질을 못하신다.

오늘은 딸아이 생일, 오후에 주삿바늘이 빠지면 잠시 중앙동으로 외출해서 딸아이랑 양손 가득 이것저것 플렉스 할 거다. 다행히 병원 앞이 중앙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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