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장이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그만둔 것은 아니라는데 제법 길게 부재중이다.
2 원장은 순천에 있는 나의 주치의이다. 환자를 내팽개치고 대체 어딜 간 것일까.
원래는 광주에 있는 병원을 다니지만 어느 순간 요령이 생겨서 순천에 있는 병원에서 비슷한 주사와 약물을 처방받기 시작했다.
원래 나의 주치의는 1 원장이었는데 내가 급하게 병원에 왔을 때 1 원장이 진료가 없는 날이어서 2 원장이 그때부터 내 주치의가 되었다.
2 원장은 병원에서 인기가 많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 이야기를 가만 들어보고 있으면 2 원장이 족집게처럼 병을 잘 찾고 수술도 잘한다고 한다. 2 원장을 거의 찬양하는 수준까지 칭찬을 한다.
그 때문인지 불편한 것도 있다. 대기가 너무 길다. 응급실을 이용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웬만하면 참고 다른 환자들과 함께 순번을 기다린다.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져 내 몸이 힘들어지면 그냥 구석에 가서 의자에 길게 누워 대기한다.
2 원장은 보아하니 정시에 퇴근도 못 하는 눈치였다. 접수를 나중에는 받지 않아도 자신을 찾는 환자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 병원을 2 원장이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진료를 접수하시는 분이 2 원장님이 안 계셔서 3 원장님께 진료를 받으셔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다. 지금 1 원장님은 바쁘셔서 3 원장님께 가면 바로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진료대기실이 썰렁했다. 환자로 바글대던 곳이었는데 어색한 풍경이었다.
살짜기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2 원장님 어디 가셨어요?"
"아, 그동안 좀 힘이 드셨는지 잠깐 쉬고 오신대요."
날마다 밀려드는 환자에 정작 의사가 몸살이 났었을까.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날 나는 2 원장에게 시집을 한 권 선물하려고 가지고 왔었는데...
내가 입원 중이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2 원장이 병실에 회진을 왔는데 내가 읽고 있던 시집을 보더니 한참을 이야기했었다.
"아니, 요즘 세상에 시집을 읽는 사람이 다 있네요!
제가 살면서 유일하게 읽은 시집은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였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 교양으로 미학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황지우 시인이었어요. 그래서 읽었어요. 그나저나 미학이 뭔 지 아세요? 철학이에요 철학. 에이뿔 맞았어요. 아니, 요즘 세상에 시집을 읽는 사람이 있다니..."
갑자기 내가 기특해 보였는지 내 등을 몇 번이나 쓰다듬고 가셨다. 2 원장은 참고로 여자이다.
그러면서 왠지 나를 부러워하는 듯 바라보는 그 2 원장의 눈빛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나는 병실에 갇혀있고 저 의사는 하루 종일 진료실에 갇혀 있다는 생각,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숭고한 사명 앞에서 환자들의 아픈 소리를 하루 종일 듣느라 힘들겠다는 생각, 저 의사를 잠깐 붙잡아서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를 이렇게도 쓴다고 엠즤세대의 시집 하나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퇴원을 하고 한참만에 병원에 갔는데 2 원장이 그동안 힘들었다는 간호사 말에 참 마음이 그랬다. 밝고 큰 목소리를 지닌 사람도 힘이 드는구나, 늘 웃는 얼굴을 한 사람도 힘이 드는구나, 어디서 힘이 들었을까? 사람들 앞에서 밝게 웃을 때도 힘들었을까, 아니면 사람들 없는 구석에서 혼자 있었을 때 힘들었을까, 언제부터 힘들기 시작했을까, 나라는 환자는 몸이 아픈데 2 원장이라는 의사는 마음이 내 몸처럼 아팠을까, 사람들은 다 어딘가 아프고 사는 건가 보다.. 이런저런 주절거리는 생각이 들었다.
2 원장이 사라졌다. 그런데 2 원장 방이 그대로 있는 걸 보아하니 2 원장은 분명 또 돌아오게 생겼다. 병원 측에서 병원을 먹여 살린다는 2 원장을 그냥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원장이 그만둔다고 했을 때 당황한 병원장이 그럼 푹 쉬다 와라 회유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조건하에 장기휴가를 권했을 것만 같기도 하다. 2 원장이 여행이나 실실 다니며 아무 생각 없이 지냈으면 좋겠다.
2 원장한테 선물하려던 시집을 도로 집에 가져와 눈에 띄는 곳에다 두었다. 저 노란 시집이 날마다 2 원장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