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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딸

by 김추억

광양 백운산으로 혼자 산행을 간 날이었다. 오후 7시쯤 하산을 완료하고 운전을 해서 내려가는데 어린 남학생들이 히치하이킹을 했다.

밝고 순수한 얼굴을 보고 차를 세웠다.


총 다섯 명, 광양 읍내까지 혹시 태워줄 수 있냐고 묻길래 타라고 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아이들이 더 있다. 총 다섯 명이다. 거기에 짐도 있었다. 휴대용 가스버너도 있길래 고기도 구워 먹었냐고 물어봤더니 그랬단다.


아이들이 백운산 자락의 계곡에 올 때는 택시를 이용했단다. 운 좋게 택시 기사님께서 다섯 명을 다 태워주셨는데 갈 때는 콜택시 측에 아무리 사정사정해도 다섯 명은 태워줄 수 없다고 했단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호주머니 사정상 택시 두 대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고, 버스 배차시간은 깊은 산골이다 보니 아주 많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단다.


네 명의 아이가 뒷좌석에 타고, 한 아이가 조수석에 탔는데 초반에 얼마나 감사인사들을 하는지... 그리고 자기들끼리 "이게 된다고? 이게 되다니?"라며 흥분상태들이었다.

히치하이킹을 계속 시도했는데 안 되었다고 했다.

가족단위로 놀러 오는 곳이기에 아마 태울 좌석이 없었을 것이고,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태웠다가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파지니 쉽게 태우지도 못했을 것 같다.


광양 읍내로 가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학생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 순천과 광양 이야기 등등... 그중에 등산 이야기도 나눴다.


"순천에도 조계산이 있잖아요. 거기 아빠랑 다녀왔어요. 아빠가 산에 저를 많이 데리고 다니셨거든요."


"어머니는요?"


나는 어린 친구들에게도 존댓말을 한다.


" 엄마는 걸어 다니시는 걸 싫어해서요."


"우리 집에도 걸어 다니기 싫어하는 두 사람이 있어서 저 혼자 이렇게 다녀요."


초면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학생들을 안전하게 광양 읍내에 내려주었다.


잠시 후, 딸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매곡동에 있는 친구집까지 걸어갔다는 것이다. 버스정거장을 다섯 번이나 지나는 거리였다. 그리고 지금 살도 좀 뺄 겸 다시 집에 걸어가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방금 전에 내린 남학생에게 딸아이가 걸어 다니기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을 딸아이가 설마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갑자기 뜬금없이 걷는 딸이었다.

가까운 거리도 태어달라고 부탁하는 딸아이였는데 말이다.


다음 날, 딸아이는 한낮 땡 볕에 검도장을 걸어서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검도장까지의 거리는 약 3km이다. 최대한 건물 그늘로 걸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텀블러에 매실액을 넣고 찬물을 탔다. 거기에 얼음도 넣는다. 검도복을 가방에 넣어 짊어지더니 슬리퍼를 신고 훅 나갔다. 중간에 땡볕지점에서는 덥긴 덥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딸아이는 며칠째 검도장을 걸어 다니고 있다.

요즘 우리 딸은 걸어 다닌다.

광양에서 만났던 그 남학생을 다시 만나서 우리 딸이 걷는 걸 좋아한다고 다시 말해주고 싶은데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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