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딸, 엄마의 등산을 지지한다.
내가 처음 산에 다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딸아이의 눈치를 보며 산을 탔다.
엄마의 좌표를 수시로 확인하는 딸아이의 전화, 그리고 언제 집에 올 거냐는 물음은 평화로운 산행에 유일한 조급함이 되었다.
등산을 하고 오면 며칠씩 앓아눕기를 반복하였고, 그럴 때면 '왜 그러게 산을 가서 그 고생이냐'는 소리를 딸아이에게 듣곤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이 산 저 산, 끌리는 산은 즉흥으로 몸을 끌고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산행 다음 날에 근육통이 없다. 물론 피곤하여 잠이 쏟아지긴 하지만 더 이상 골골대지 않게 되었다.
몇 번의 죽을 맛(?)을 맛보고 나서 얻은 성과라면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고단 일출을 또 보고 싶어."
나는 혼잣말을 다 들리게 하는 습관이 있다. 노고단 일출을 보고 싶다는 나의 혼잣말을 딸아이가 듣고는...
"가자! 내가 같이 가줄게요. 가면서 힘들다고 절대 짜증 안 낼게요."
그렇게 즉흥으로 딸아이와 야간 산행을 감행했다.
순천에서 노고단 코스가 있는 성삼재 휴게소까지는 한 시간 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딸아이가 좀처럼 방문하지도 않던 나의 블로그에 들어와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딸에게 쓰는 편지 하나를 낭독하는데 타이밍이 지금의 상황과 딱 절묘했다.
성삼재 휴게소에 있는 지리산 탐방로는 입산을 3시부터 할 수 있다. 정확히 3시 1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컴컴한 밤, 사람이 없어 딸아이가 겁을 먹었다.
엄마 손을 잡고 가는 딸아이 손에 긴장의 땀이 났다.
무넹기 쉼터에서 사람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 저 멀리 불빛이 보이자 딸아이는 안심을 했다.
하늘의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딸아이 손을 잡고 가는 산길이 나에게는 꿈결 같았다.
노고단 1507m의 일출을 보았다.
그런데 딸아이는 일출만 본 것이 아니었나 보다.
다른 등산객들 옷차림과 엄마의 옷차림을 비교했나 보다. 엄마만 왜 등산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냐며 뭐라고 한다. 나는 심하게 털털하다. 산에 그냥 간다. 옷도 제일 편한 반바지와 티셔츠 하나 달랑 입고 간다. 날씨도 체크 안 하고 간다. 비 오면 비 좀 맞고 내려오면 된다는 주의이다. 비를 많이 맞아봐서 그렇다.
나는 딸아이에게 한국의 산들이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도 아닌데 뭐 복장이 그리 중요하냐,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딸아이는 그게 그렇게 마음이 쓰였는가 보다.
다음 날, 등산복 매장에서 등산 모자 하나를 사 와서 선물로 준다. 생일날 받은 용돈으로 엄마에게 모자 선물을 할 생각을 다 하다니!
와, 이렇게 가볍고 시원한 모자가 있구나! 싶었다.
인생에서 장비 탓 안 하려고 했는데 이제부터는 장비 탓을 좀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 노고단처럼 길이 좋은 산은 내가 같이 가 줄 생각이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등산하면서 길이 좋은 산들을 연구하세요."
딸아이 말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등산을 질색팔색하던 딸아이가 맞나 싶었다.
노고단 내려오면서 했던 대화도 자꾸만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노고단 일출 본 거 어땠어? 전라남도에서 제일 높은 산을 탄 소감 말이야."
"응, 나쁘지 않았는데 디지게(?)힘들었어요."
자꾸만 눈이 감긴다는 딸아이는 결국 차에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요즘 우리 딸, 엄마의 등산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