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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上

by 김추억

"엄마, 옛날 엄마 강화도 어디 마을 살았어요?"

"응, 읍에서 좀 떨어졌는디 송해면 솔정리라고 있어."

"손, 손 뭐라고?"

"송해면 솔정리."

"송해면 솔정리?"

"응."

혜진이는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엄마가 나고 자라던 고향에 대해 물었다. 강화읍에서 조금 떨어진 송해면 솔정리라는 정보를 혜진이는 머릿속에 메모하느라 통화는 약 5초 정도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깨트린 건 혜진이의 엄마였다.

"왜?"

"아니, 그냥 나는 외갓집에 한 번도 못 가봐 가지고."

"인자 거기서는 안 살지. 다 이사해 버렸응게. 다 인천으로 다 이사했응게."

"솔정리 무슨 마을이래?"

"아이 그냥 그 솔정리 마을이여."

"아, 마을 이름이 그냥 솔정리구나. 거기 그래도 집이 아직도 있을 거 아녀?"

"아, 길나 버렸대"

"아하 그래?"

"도로 옆이었거든"

"그럼 엄마도 안 가본 지 오래 됐것네?"

"그믄, 그러지."

혜진이는 엄마와 전화 통화를 마치고 달력을 보았다. 컨디션이 조금 회복된 것 같은 기분에 KTX 열차표를 바로 예매했다. 그리고 환승해서 홍대입구역까지 간 다음, 3000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강화도까지 갈 계획을 세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강화도에 갈 테니 하루만 아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혜진이의 남편은 잠시 말이 없다가 알았다는 말을 했다.

남편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잠시 멍하니 있던 혜진이는 또 갑자기 방금 전 예매한 KTX 열차표를 취소시켰다.

혜진은 대중교통을 기다리며 길 위에서 허비될 그 1분 1초가 갑자기 아까워졌다. 그 시간을 아껴 1분 1초로라도 더 강화도를 눈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원래 혜진이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졸음이 그렇게 쏟아지며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살았가던 혜진이었다. 의사는 혜진이에게 운전 같은 건 위험하니 되도록 하지 말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꼭 가족들과 함께 하라는 주의를 받곤 했다.

혜진이는 얼마 전 독한 마음으로 단약을 했기에 강화도까지 운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혜진이는 요즘 안 하던 행동을 해서 가족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집에 있는 모든 약들을 20리터 쓰레기봉투에 싹 모았다. 합법적인 마약과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약봉지들이었다. 집 바로 옆 약국에 가서 약사님께 의약품 폐기물이다고 전해주니 너무나도 많은 양에 놀라시는 눈치였다.

혜진이는 그 마약이 통증 하나를 잡아주고 나머지 몸의 모든 것들을 빼앗아가는 느낌을 늘 받으면서도 늘 독한 그 약을 먹었다. 괴로운 통증을 싹 없애주는 마약魔藥이었다. 혜진이의 위는 갈수록 망가져갔고 정신은 피폐해지고 무엇보다 쏟아지는 잠에 일상생활 자체가 버거웠다. 산책 중에도 갑작스러운 졸음에 벤치 같은 것을 발견하면 바로 누워 노숙을 했다. 누가 간혹 깨워줘야 일어나기도 했다.

혜진이는 법을 전공한 아이였다. 모든 법을 잊고 산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갑자기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보장해 주고 있는 행복추구권이 생각났다.

'왜 행복권이 아니고 행복추구권일까'

혜진이는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추구해야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피해 다닌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헌법 제10조 제1문 후단은 ‘모든 국민은 ···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행복추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혜진은 늘 행복 추구는커녕 행복을 박탈당하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행복하기 힘든 세상이니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생겨났겠지 싶었다.

행복추구권(幸福追求權),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고통이 없는 상태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그 권리가 혜진이는 자신에게 없었음을 느꼈다. 혜진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다. 행복을 추구하는 걸 어느 순간 포기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혜진은 이제라도, 안되더라도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작은 꿈이 품어졌다.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 법적 성격이 자연권이다는 것을 혜진이는 기억해 냈다. 자연권이었다는 것을...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까.'

혜진은 자신을 행복하지 못하게 했던 과거들이 떠올라졌다.

혜진이를 불행하게 했던 사람들, 혜진이를 죽고 싶게 만든 사건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려는데 혜진이는 구역질이 나와 그만 구토를 했다.

혜진은 구토 후 시뻘게진 눈동자의 눈물을 두 주먹으로 찍어냈다. 혜진이는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분명 좋은 순간도 있었을 거야, 아픈 순간에 가려져 빛을 못 본 행복한 추억들 말이야.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슬픈 기억에 소중했던 추억들이 어디 한쪽 구석에 찌끄러져 있을지도 몰라.'


혜진이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혜진의 머릿속에서는 외할머니의 이미지가 번쩍 소환되었다.

자그마한 체구, 곱게 빗어 비녀를 꽂은 머리, 감정의 기복 없이 늘 거의 한결같은 말투와 표정의 외할머니였다. 혜진이의 뇌 속에 저장된 유년 시절, 제대로 된 어른은 오직 외할머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혜진에게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어른이 필요했었다.

혜진은 전라도 유유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이름이 놀 유遊, 선비 유儒자를 쓴다고 같은 동네 친구 병렬이에게 들었던 걸 기억하는 혜진이었다.

혜진은 선비들이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 동네에 사는 자신의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혜진이네는 봄과 가을에 누에 농사를 지었다. 누에 농사는 한 달 농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고된 농사였다. 혜진의 아빠가 술에 취해 비몽사몽 꿈결에서 선비처럼 놀 때에 혜진의 엄마는 그 누에들을 혼자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의 집 누에보다 못 먹어서 성장이 느린 누에들, 몸집이 크지 않는 누에들을 걱정했다. 뽕밭에서 뽕을 낫으로 베어서 들고 가기 좋게 모아놓으면 혜진이는 언니와 동생들과 그 뽕다발을 나르고 누에 위에 척척 올려주었다.

누에들은 잠을 자는 시기가 두어 번 있는데 그 시기가 마치면 쉬지 않고 먹어대는 것이 특징이었다. 푸른 뽕대로 덮어둔 곳을 금세 하얗게 정복해 버리는 누에들은 혜진이의 눈에는 피로한 공포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누에들에게 밥을 주어야 했기에 뽕다발을 잠실 한쪽 구석에 척척 저장해 놓아야 했다. 비 오는 날에도 뽕밭에서 고생하는 엄마가 늘 측은했다.

혜진은 나중에 알았다. 잠실 야구 경기장의 잠蠶자가 누에 잠이라는 것을 말이다. 거기서 환호하며 웅성거리는 관객들의 소리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와 매우 흡사하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혜진은 더 이상 한국 프로 야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혜진의 엄마는 혜진의 외할머니께 전화를 하지 않았지만 외할머니는 일 년의 두 차례 한창 바쁜 농번기에 맞춰 일을 도우러 강화도에서 유유마을까지 오셨다.

혜진은 외할머니를 좋아했다. 친할머니처럼 혜진을 구박하지도 않았고 조용히 묵묵하게 일을 돕는 모습이 좋았다. 친할머니는 같은 동네에서 건강하게 사시지만 혜진이네의 일손을 거의 돕지 않으셨다. 방바닥을 조용히 쓸고 닦는 외할머니의 모습에서 혜진은 어린 나이임에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혜진이가 2학년, 아홉 살 때였다. 혜진이의 외할머니가 바쁜 농번기에 또 유유마을을 찾아오셨다. 해가 막 질 무렵에 아름다운 노을과 함께 오신 외할머니셨다.

그날의 숨죽이는 분위기를 혜진은 불혹이 된 나이에도 피부로 기억해 내고 있었다.

아빠의 기분 나쁜 인상, 혜진의 아빠는 멀리서 오신 외할머니를 대놓고 문전박대했다.

어린 나이인 혜진은 도대체 아빠는 왜 저러는 걸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것에 갑자기 자격지심이라도 생긴 걸까 싶었다.

버스가 끊긴 시골의 밤을 외할머니는 꼬박 지새우셨고 다음 날 첫 차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려 집 밖을 나섰다. 혜진은 늘 그렇듯 그저 집안에서 벌어지는 풍경들을 멀리 우주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외할머니가 나가시고 조금 있다가 혜진의 엄마는 허름한 창고에 들어가 농약을 마셨다. 혜진은 동생들과 함께 멀리 동구 밖까지 나간 외할머니를 향해 부르짖으며 외할머니를 붙잡아 세웠다. 누가 신고를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았다. 한순간 끊긴 혜진이의 머릿속 필름, 혜진의 엄마는 구급차에 실려갔다.

혜진은 오후 늦게서야 엄마가 죽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날 오후 외할머니도 자신의 딸이 죽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강화도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떠나시기 전 혜진이는 외할머니의 가방에서 정갈하게 잘려 고무줄에 묶인 회수권 몇 장을 꺼냈다. 전라도에서는 써먹지도 못하는 회수권 몇 장을 혜진이는 왜 몰래 훔쳤는지 혜진이도 자신의 엉뚱한 행동을 가끔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혜진이의 할머니는 다시는 유유마을에 발걸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혜진이의 엄마가 더 이상 남편의 폭행에도 집을 나가지 않은 것이 말이다. 혜진의 엄마는 독기를 품고 혜진의 아빠에게 대들었고 심각하게 맞았다. 술도 마셔대고 취했다. 소리도 커지고 가끔은 혜진의 눈에 혜진의 엄마는 겁을 상실한 미친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혜진의 엄마는 집을 몇 번 나간 경력이 있었다. 혜진의 아빠에겐 의처증이 있었다. 혜진의 엄마가 지나가다 동네 아저씨와 인사라도 나누고 온 날에는 혜진의 엄마는 혜진의 아빠에게 두들겨 맞았다. 장정의 물오른 주먹은 가녀린 여자의 얼굴을 가을 단풍으로 물들였다. 혜진은 엄마의 눈두덩이에 난 멍 자국이 시간이 지나며 색을 달리하는 것을 늘 관찰하며 자랐다. 빨간색 보라색 남색 파란색 노란색 등등 인체의 피부는 본연의 살색을 유지하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싶었다.


혜진은 너무 이른 나이에 아픔을 배워 나갔다. 그리고 혜진의 아빠로부터 저주하는 법을 배웠다.

빨간 볼펜으로 혜진은 아빠의 이름을 수도 없이 끄적이며 저주했고 아빠의 술심부름과 담배 심부름도 기꺼이 감사로 했다. 어서 이 술을 드시고 어디 한 군데 고장 나시고 어서 이 담배를 태우셔서 폐암에 걸려 주세요라는 섬뜩한 저주를 어린 소녀는 분노에 사로잡혀 서슴없이 했다.

혜진의 엄마는 구타에 못 이겨 한 번씩 강화도로 가출을 했다. 자신의 엄마 앞에서 농약을 마시는 해프닝을 벌이기 전까지는 그랬다.

혜진은 강화도에 간 엄마가 다시는 유유마을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지만 혜진의 엄마는 몇 개월 후에 어김없이 돌아왔다.

어린 동생들은 엄마 품에 안겨 엄마를 반겼지만 혜진은 다시 돌아온 엄마를 다그쳤다.

"뭐 하러 다시 돌아왔어! 또 처맞을라고 돌아왔어? 좋은 사람 만나서 잘 먹고 잘 살지 미쳤다고 다시 여기를 돌아왔어? 결혼한 거 숨기고 새끼들 있다는 것도 숨기고 좋은 사람 만나서 살지 뭐 하려고 돌아온 거냔 말이야!"

혜진의 엄마는 늘 말이 없었다. 중매쟁이는 혜진의 엄마에게 혜진의 아빠를 잘 사는 집의 남자라고 속였다고 했다. 혜진의 엄마는 어릴 적 부유한 편이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에 시달리게 되었고 어느 중매쟁이의 속임에 넘어가 버린 것을 나중에 들었다. 혜진의 엄마가 막상 도착한 유유마을, 그녀가 살아갈 집은 거지 같은 집이었고 그녀의 남편에게는 시동생들이 줄줄이 딸려 있었고 그녀의 시어머니는 날 선 모양새여서 아이를 출산하고 바로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던 그런 지옥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말없이 그 힘듦을 소화해 냈다.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혜진이는 가끔 엄마가 누에를 칠 때 필요한 신문지를 가만히 읽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가 혼자서 조용히 가만가만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

그러던 엄마가 악에 받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술에 취해 정신을 놓는 모습을 보는 게 혜진은 괴로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사람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어렵게 변한다는 것을 혜진은 알게 되었다.

혜진의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가장 큰 불효를 한 이후에 완전히 변했고 거기서 더욱 한 번 업그레이드하며 변한 사건이 있었는데 자신의 첫째 딸에게 가장 큰 불효를 당한 일이었다.

혜진의 엄마는 자신의 첫째 딸이 농약을 마시고 죽은 이후에는 날마다 밥 대신 술을 마시며 동네가 떠나갈 듯 곡을 했다. 혜진은 그 소리가 너무나 지겨워서 소리를 꽥 지르곤 했지만 엄마의 귀에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죽은 자식만 자식이야! 산 자식은! 산 자식들도 생각해야 할 거 아냐! 제발 정신 좀 차려!"
혜진은 10여 년 전 엄마를 피해 순천으로 이사를 왔다. 혜진의 엄마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혜진을 괴롭혔다. 직장 생활을 하던 혜진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서 돈을 부치라 했고 그걸 유흥비로 썼다. 혜진의 아빠는 혜진의 스무 살 중반에 직장암으로 돌아가셨다. 혜진은 자신의 저주가 너무 오래 걸렸다는 생각을 했고 병상에서 그녀를 간절히 찾는 아빠에게 끝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의 장례식장에서도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았다.

혜진의 엄마는 남편의 죽음 이후에 재가를 했다. 혜진의 엄마는 혜진을 만날 때면 새로운 남편의 자식들 자랑을 그렇게 했다. 뭘 사주었고 뭘 구경시켜 줬고 뭘 먹여 주었다는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였다. 대놓고 혜진이와 비교를 했다.

혜진은 서서히 그녀의 엄마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고 서러움이 치밀었다. 부모의 사랑이 고팠지만 구걸할 수 없는 처지였다.

혜진은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조건을 남편에게 걸었다. 혜진은 늘 두려웠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자신이 책임지지 못하고 괴롭힐까 봐, 자신이 폭행을 대물림할까 봐 두려워했다.

혜진이 순천에 내려온 결정적인 이유는 엄마의 언어폭력 때문이었다. 혜진의 남편이 갑자기 아팠고 그 사실을 안 혜진의 엄마는 전화로 혜진이를 괴롭게 했다.

"왜 그렇게 사냐? 이혼해라!"

혜진은 그녀의 부모에게 받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남편에게 받은 게 더 많다고 느꼈다. 해준 게 하나도 없으면서 그렇게 당당히 '왜 그렇게 사냐'라는 소리를 듣게 되자 분개했다.

엄마와 인연을 끊기로 결심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순천으로 잠적해 버린 혜진이었다.

혜진이 봄 햇살 속에서 어린 딸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때였다. 순천의 봄은 어느 고장보다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혜진이었다. 사람 마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완연한 봄날이었다.

그녀는 왼팔로 아이를 받치며 젖을 물리고 오른손으로 어린 딸의 실크 같은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다가 문득 상념에 빠졌다.

'어쨌든 내 엄마도 나에게 젖을 물렸겠지. 어쨌든 내 엄마도 나에게 기저귀를 갈아주고 업어도 주었겠지. 그래서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거겠지.'

혜진은 눈물을 훔쳤고 그날 저녁, 남편에게 부탁 한 가지를 했다.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딸을 낳았다는 기별을 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떤 본능에 이끌려 큰 용기를 내지 않고도 그런 부탁을 혜진은 남편에게 했다.

혜진은 처음으로 자신의 엄마를 엄마로 느끼지 않고 한 여자로 느꼈다.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일생이 그렇게 측은할 수 없었다.

혜진은 가끔씩만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가끔씩만 말이다. 너무 가까워지면 자신에게 또 무슨 비수를 꽂을 것만 같았다.

혜진은 아이를 낳고 10여 년 만에 그녀의 친정엄마에게 사과를 받았다.

친정에 가서 아픈 몸을 누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혜진의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이 어색하여 미칠 지경이었는데 혜진의 엄마는 눈을 감고 있는 혜진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미안하다. 엄마가 그때는 우울증이었던 것 같애. 너희들에게 못된 말로 상처 주고 거지처럼 키운 거 미안하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견디고 살아 준 거 고맙다. 알아서 커 준 거 고맙다. 부모 잘 못 만나서 너희들이 고생 많이 했다. 미안하다."


한참을 주절주절 용서를 구하는 혜진의 엄마였다. 혜진은 끝까지 눈을 뜨지 않았고 그녀의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감은 눈으로 눈물을 흘렸다. 꾹 감은 눈에도 눈물은 왈칵 쏟아진다는 것을 혜진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날 흘리는 눈물은 성격이 달랐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음을 동의하면서도 오랜 세월을 거쳐 또다시 원점으로 어렵게 변할 수 있음을 느꼈다.

혜진은 순천에서 강화도까지 가는 경로를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했다. 400km 남짓 걸리는 길 위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녀는 강화도에 왜 가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살펴지지가 않았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물론 외할머니는 돌아가신 후였고, 엄마가 살던 집도 길이 나서 흔적도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강렬하게 그곳이 가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말리지 못했다.

막연한 감정은 뭔가에 묵직하게 눌려있었기에 혜진은 그것을 그냥 들추지 않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어쩐지 알게 될 것만 같았다. 그저 타국으로 입양 간 아이가 나이를 먹고 자신의 핏줄을 찾으려 고국을 방문하는 느낌이지는 않을까 싶었다.

11월 중순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고속도로 길 위는 혜진을 행복하게 했다. 구간 구간 단풍의 변화를 바라보았다. 위쪽으로 가면 갈수록 짙어지는 단풍색에 긴 거리를 실감했다.

드디어 인천광역시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강화로 빠지는 길에 들어섰다. 혜진은 설렜다. 친구들이 외갓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부러워하던 혜진이었다. 못해보고 산 것은 어찌 되었든 어떤 방식으로도 해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은 원래의 혜진의 모습이었다.

강화읍에 들어섰고 혜진의 몸은 그때부터 긴장이 풀렸는지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운전을 멈출 수는 없었다. 혜진이가 앓고 있는 질병은 강직성 척추염, 그녀는 이 장거리의 운전이 처음부터 무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무리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음을 알았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혜진은 하늘이 자신의 아픈 몸과 마음을 생각해 주며 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혜진도 울면서 외할머니를 불렀다.


'외할머니, 이리 먼 길을 노구에도 딸자식 고생을 덜어주려 일 년에 두 차례나 전라도까지 오셨나요. 딸자식이 맞고서 얼룩덜룩이가 되어 당신 집으로 도망 왔을 때 당신 심정이 어떠하셨나요. 사위에게 외면받는 그 설움을 어찌 누르셨나요. 당신 앞에서 약을 먹은 딸자식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이 길을 지나실 때에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때는 길이 이만큼 좋지도 않았겠지요. 이 길고 긴 거리를 목울대에서부터 명치 아래까지 눌러지는 갑갑함으로 어찌 숨을 쉬어가며 강화에 다시 돌아오셨나요. 뜬 눈으로 지새운 그 밤이 무색할 만큼 잠조차 오지 않는 그 괴로움들을 어찌 감당하셨나요. 다시 유유마을에 가지 않으리라는 그 각오를 어떤 비통함 속에서 하셨나요. 유유마을은 당신께 말 그대로 눈물이 가장 많이 나오는 ㅠㅠ 마을이었겠지요'

혜진은 그때 알았다. 자신을 낳아 준 엄마의 고향에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이유를. 그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알았다. 그 비 오는 도로를 운전하는 중에, 온몸이 서서히 강직되려는 신호를 받으며 알게 되었다. 혜진은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다. 한없이 깊은 결핍 속에서 그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혜진은 이번에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긴 이 거리를,

이 길고 긴 거리를,

길고 길고 긴 이 거리를

새끼들 놓고 도망쳐 올 때에,

멍든 얼굴과 몸을 가지고서,

그보다 더 아픈 마음을 가지고서

강화도까지 올 때에 얼마나 당신의 세월이 야속했나요.

내 몸이 지금 아파서 다행이에요. 엄마처럼 아픈 상태로 이 길을 지나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새끼들이 보고파서 몇 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지옥을 각오하면서 유유마을로 돌아오실 때에 이 길고 긴 거리가 얼마나 무서웠나요.

엄마, 끝까지 우리를 버리지 않았군요.

내가 강화도에 왜 이리 가고 싶어 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내면의 결핍을 해결해서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또 외할머니가 그리워서도 아니에요.

외갓집에 못 가본 내면 속 아이의 설움과 징징거림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엄마가 살던 마을에 가기 전부터 나는 알게 되네요.

나는 강화읍에 진입하여 운전하는 길에 알았어요.

내가 왜 그토록 강화도에 가고팠는지를요.

당신을 슬픔을 이해하려고,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는 것을요.

나의 외할머니께 당신은 제일 큰 불효를 했어요. 당신도 당신의 엄마를 몹시도 사랑했다는 것을 알겠어요. 마음이 얼마나 상했으면 홧김에 약을 드셨습니까. 외할머니는 당신 때문에 이 길 위에 한 서림을 뿌리셨을 거예요. 나는 이 길에서 당신의 한 서림도 느껴져요.

당신의 막내딸은 당신과 인연을 끊고 살고,

또 다른 딸은 술만 먹으면 전화로 원망을 당신께 퍼붓고,

당신이 낳은 첫사랑 딸은 스스로 하늘나라에 갔군요.

당신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었을 거예요.

미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그 시절, 당신이 나를 하도 괴롭게 하는 말들에 나도 마음에 얼룩덜룩 멍이 들었어요.

나는 당신과 인연은 끊고 순천에 숨어들었네요.

당신의 손녀를 낳았고 젖을 물리던 어느 날

나는 당신의 품에 안겨 젖을 물던, 기억에도 없는 그런 날들이 그려졌어요.

이 긴 거리가 당신의 사랑보다 길 수 있을까요.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곤 했던 당신의 사랑 하나만으로도 나는 당신의 모든 허물을 덮고 용서할 수 있겠어요.

이 긴 거리를 몸으로 느끼며 당신을 전부 용서합니다.

당신은 당신 하나만을 지키기에도 버겁고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어린 우리가 보고파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곤 했던 이 긴 거리의 고마움 하나가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하네요.

엄마, 미안해요.

나도 나 하나 돌보기에도 벅찬 인생을 살았어요.

우린 그렇게 각자 버틴 거예요.

골병든 엄마의 몸과 마음을 이제라도 살핀다면 이 무심했던 딸도 당신께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요.'

혜진은 운전을 하며 울었다. 흐려지는 시야를 해결하기 위해 안경 밑으로 손가락을 넣어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시야가 선명해지지 않았다. 혜진은 와이퍼를 그제야 작동시켰다. 이 와이퍼가 흐르는 빗물을 닦아주듯이 자신도 엄마의 모진 세월을 닦아주며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혜진은 운전 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또 자신이 조용히 끄덕여 주었다.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급급했던 것들이 마음으로 어설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아 답답한 것들은 몸으로, 피부로 느껴지게 해야 한다. 마음과 몸이 함께 만나 느껴지게 해야 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100%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상황의 그 사람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엄마의 마을로 혜진의 자동차가 더욱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혜진이의 몸도 한계에 다다랐고 그녀는 당장 눈에 보이는 모텔로 핸들을 꺾었다. 혜진에게는 더 이상 마약성 진통제가 없었다. 그녀는 돌아갈 길을 다 차단해 버린 상태였다. 혜진은 피부가 벗겨질 듯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몸의 강직을 풀었다. 난방을 풀가동시키고 침대의 온도를 최대로 맞추고 곧바로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잠은 혜진에게 몸과 마음의 고통을 잊게 하는 마약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 숙소가 그녀의 엄마가 나고 자란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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