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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활용법

by 김추억
강화도 솔정리 마을에서

지나가다 억새를 마주쳤는데 그냥 지나쳤다?
당신은 억새의 활용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억새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억새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실 수 있죠?
많이 바쁘시다고요?
아, 그럼 이해합니다
한가하실 때 억새 활용법을 읽어 보세요


<억새 활용법 >
밋밋한 하늘이 싫다고요?
당신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하다고요?
그렇다면 억새 앞으로 가세요
억새를 그동안 어떻게 바라봐 주셨나요?
정면에서 보시고 내려다보시고 하셨을 거란 말이죠
억새를 한 번 올려다보세요
어떤가요?
하늘 구름이 되었지요?
당신의 뻥 뚫린 가슴에
뭔가 가득 채워지는 기분 드시죠?
뭉게뭉게 차오르는 느낌이 확실히 있지요?
(그냥 그렇다고 동의해 주세요)


<억새 활용법 >
삶이 무료한 가요?
그럼 억새 앞으로 가세요
강풍기 앞에서 머리칼 휘날리며 노래하는 가수들이 얼마나 멋지던가요
여가수들은 보통 그런 강풍기 효과를 본다고요
뭐랄까요? 드라마틱 하다고나 할까요?
수많은 억새들이
바람에 서로 스치면서 신비한 소리 낼 건데요,
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당신의 노래를 부르세요
홀로 저 꼿꼿한 억새 줄기 좀 보세요
바람에 날리는 건
단지 억새의 머리카락 일뿐이어요
삶이 무료할 때,
억새 앞에서 꼭 노래를 부르세요
당신의 무대, 당신은 주인공, 당신은 고고하되 당신의 머리칼은 결코 무료하지 않아요
당신의 날리는 머리칼은
삶의 무료함 속에서도 빛나는 당신의 유쾌함이어요
(납득할 수 없어도 그냥 긍정해 주세요)


<억새 활용법>
이 세상이 좀 싫다고요?
이 세상이 좀 지친다고요?
그럼 여지없이 억새 앞으로 가세요
억새를 보세요
억새를 가만히 지켜보세요
억새의 빛이 어떠한 가요?
이 세상 빛이 아니죠?
확실히 이 세상 빛은 아니잖아요
억새를 보면서 잠시 이 세상을 탈출하세요
억새로 눈부신 천상의 옷을 지어 입으세요
어때요?
천사의 날개 옷이 되어 주지요?
이 세상이 힘겨울 때 잠시 억새 앞으로 가세요
근심 내려놓고 잠시 자유롭게 날으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그냥 당신 마음 그렇게 해서라도 잠시 쉬세요)

<억새 활용법>
무례한 사람을 만났다고요?
그 사람이 당신께 무례한 말과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요?!
감히... 부들부들...
그 무례한 사람을 잡아다가
억새 앞으로 데리고 가세요
억새한테서 인사하는 법부터 배우게 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런 다음 억새한테서 사과하는 법을 배우게 하세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억새한테서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하세요
고개를 숙여, 허리를 숙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억새한테서 배우게 하세요
사람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다 못해 허리까지 숙인다는 것을요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억새 앞으로
손잡고 가세요
어깨동무도 괜찮아요
팔짱도 괜찮아요
목덜미나 귓불 잡고 가는 건 안되어요
그건 무례하니까

(안 간다고 반항하면 그냥 무례하게 살게 놔두세요 어쩌것어요)


<억새 활용법>
당신, 춤을 언제 추셨나요?
춤추지 않는 인생은 가여워요
당신이 삶의 리듬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억새 앞으로 당장 달려가세요
억새는 당신과 같이 춤을 춰 줄 수 있어요
억새는 당신의 파트너가 되어 줄 수 있다고요
스포츠 댄스는 기대하지 마세요
억새도 힘듭니다
왈츠 정도는 춰 줄 수 있다고요
바람이라는 리듬에 당신을 맡기십시오
햇살의 부서짐을 눈부신 조명으로 삼으세요
억새가 당신을 리드해 줄 거예요
억새 앞에서 수줍어 마세요
억새 앞에서는 쭈뼛할 필요 없어요
그럼 엇박자가 되어 억새로 맞을 뿐이어요
그러니 바람 부는 대로, 순리대로
당신의 마음을 놓으세요
(정신은 놓으시면 안 되어요 마음만)
당신의 삶을 춤추게 하고 싶다면,
당신 삶의 리듬을 되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억새 앞으로 달려가세요


<억새 활용법>
삶이 거친가요?
그럼 억새 앞으로 가세요
억새 앞에서는 누구나 비달사순이 되어요
쓰담쓰담 해보실래요
그럼 억새도 기분 좋아하고
쓰담쓰담한 당신 손도 기분 좋고
그 기분 좋음이 당신의 손을 타고 당신 심장까지
전해질 거예요
당신의 기분 좋은 표정을 보고
세상이 부드러워질 거예요
삶이 거칠 때는 트리트먼트 하지 마세요
억새 앞으로 가세요
거기서 그냥 건강한 부드러움,
비달사순 그 자체가 되세요
(참고로 저는 비달사순 측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임을 밝혀 둡니다)


<억새 활용법>
추운가요?
당신의 계절이 춥습니까?
당신의 계절이 시립니까?
그럼 억새 앞으로 가세요
목화만 따뜻한 꽃입니까?
억새도 솜꽃입니다
억새로 당신을 입혀도 좋지만
어때요? 바라만 봐도 따뜻하죠?
인조 솜을 집어넣은 이불속에
이 억새 솜을 집어넣고 싶은 충동이 드시죠?
따뜻한 손길과 눈빛이 없다고 외로워 마세요
억새 앞으로, 아니 억새 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세요
따뜻하실 거예요
(단, 쯔쯔가무시를 조심하세요)


<억새 활용법>
삶이 무거운 가요?
그래서 한없이 가볍고 싶나요?
그러나 그게 잘 안 되나요?
그렇다면 억새 앞으로 가세요
그거 아세요?
억새의 붙어 있는 솜털 하나하나는 결국 다 날아가게 되어 있어요
덕지덕지 당신에게 들러붙은 그 무거운 짐들도요
시간과 바람 앞에서 언젠가는 분리되어 날아갈 거예요
제발 그걸 믿고 견뎌주세요
그럴 수 있지요?
삶이 무거울 땐
그래서 걸음걸이마저 끌릴 땐
억새 앞으로 가세요
한없는 가벼움으로 방방 뜨려 하는 억새가
당신 맘도 덩달아 조금 가볍게 할지도 모를 일이어요
(힘내세요)


<억새 활용법>
당신은 마음이 새롭고 싶나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이 바윗덩이처럼 꼼짝도 않나요?
마음이 흔들리고 싶다면 억새 앞으로 가세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게 꼭 좋은 건가요?
네, 움직여지면 안 되는 마음이 따로 있고
움직여야 하는 마음이 따로 있어요
새롭게 움직여야 하는 마음은 움직여야 해요
그 마음이 무엇인가요?
나는 몰라요
당신만 알아요
오랫동안 고정된 것들을 흔들리게 하고 싶다면
억새 앞으로 가세요
흔들리는 억새와 같이
그 꼼짝 않는 마음을 이래저래 흔들거려 보세요

*억새 2행시
억: 억수로
새: 새롭다
(... 미안합니다)


<억새 활용법>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하신가요?
감정이 복잡해서 정리하고 싶나요?
마음에 쌓인 먼지들 쓸어내고 싶으시다면
억새 앞으로 가세요
억새 가지 몇 개만 꺾어 모으면
훌륭한 먼지떨이, 우아한 빗자루가 됩니다
집에 있는 먼지떨이는
당신의 마음 깊이 있는 먼지까지 어쩌지 못하지만 억새는요, 당신을 간지럽히면서
당신의 먼지를 털어 줍니다.
억새로 탈탈 털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습니다
집에 있는 빗자루는 당신의 마음은 쓸지 못하지만
억새는 당신 마음도 쓸어줍니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 하고 쓸어내리는
딱 그 느낌입니다
떨쳐내고 싶은 생각과 감정들,
털어내고 싶은 당신의 먼지를 어쩌지 못할 때
억새 앞으로 가세요
(다른 사람도 억새 봐야 하니까 실제로 꺾으시면 안 되어요)


<억새 활용법>
당신 외로운가요?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운가요?
돈이 많아도 외로운가요?
그렇다면 억새 앞으로 가세요
억새들이 특히 뭉쳐서 빽빽한 곳을 응시해 보세요
억새들은 서로 부대끼지만 싸움을 안 하지요
바람 따라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출 줄 알거든요
그래서 억새는 외롭지 않아요
옆에 다른 억새들이 아주 많다는 이유로 외롭지 않은 게 아니어요
자기를 밀쳐서, 자신을 괴롭혀서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그런 억새가 없거든요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을 탄다면
억새와 함께 무리 지어 바람을 타세요
어서 억새 앞으로 가보세요
분명 외롭지 않을 거예요
(자신을 달래주세요 자신을 안아주세요)


<억새 활용법>
당신 삶에 유연함이 필요한가요?
당신이 꼰대 같나요?
저는 꼰대 좋아합니다만...
아무튼 삶이 유연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럼 억새 앞으로 가세요
바람에 자기 몸을 맡기니
억새의 나부낌이 자연스럽지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면서 잘 쉬지도 못하는 게
좀 안타깝긴 하지만
아니, 많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유연한 게 다행이지요
분지러질 일이 없어 보여요
삶의 여유와 일의 융통성을 찾고 싶으시다면
억새 앞으로 가세요
(억새를 따라서 몸과 마음을 스트레칭하세요)


<억새 활용법>
정신이 없나요?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인가요?
수습해야 할 일들이 왕창인가요?
그렇다면 바람 심한 날 억새 앞으로 가세요
모든 억새들이 정신없을 거예요
미친듯한 바람 속에서
미친 듯이 나부끼는 억새들 틈에서
나만 정신없는 거 아니구나... 하면서
이상한 위로를 받을 거예요
사람은 다 그래
사는 건 다 그래
그런 걸 다 뭉뚱거려 인생이라고 하는 거야...
라는 억새의 소리가 들려올 거예요
(진짜 들리면 곤란해요 그런 느낌만 받으시라고요)

사진 더 찍어 올걸... 아숩네요
억새 활용법이 분명 더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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