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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사시던 외할머니께

by 김추억

외할머니, 왜 저는 외할머니를 한 번도 찾아 뵐 생각을 못했을까요.

인천의 어느 장례식장으로 외할머니를... 그제야 뵈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젖먹이 어린 딸이자, 당신의 증손녀를 데리고 순천에서 인천까지 한밤중을 달리고 달려서...

왜 살면서 단 한 번도 당신을 만나러 갈 생각을 못 했을까요.

나는... 내 인생이 토막 났고, 토막 난 중간중간이 사라진 채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 생의 중간 기억이 없이 살았습니다.

잊혀진 과거, 그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나는데 나는 정말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답니다.

좋았던 기억이요? 많이 없을 수밖에요.

단지 당신이 잠시 생각났습니다.

강화도에서 멀리 내가 살던 내소사 아랫마을까지 일 년에 두 차례 당신이 찾아와서 당신 딸의 힘겨움을 돕던 당신의 일손이요.

고상한 말투와 단정한 몸가짐, 내가 크면 나도 외할머니처럼 고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싶었던 어른다운 어른이셨어요.

내 주변엔 그런 어른이 없었거든요.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 딸을 증오하고 저주하며 살았습니다.

차라리 나에게 엄마라는 인간이 없었으면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긴 시간 당신의 딸과 인연을 끊고 지냈습니다.

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습니다.

괴물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을 품고 살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습니다.

한 그릇 사랑이 고팠기에 그렇게 사랑을 구걸하다시피 살았습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아니하는 결핍, 어디 가나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티가 줄줄 흘렀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했었어야 내 삶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나는 지금도 겁이 나요 외할머니.

사람이 무서워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요.

상처받을까 무섭다고요.

언제 따뜻한 눈빛이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요.

사랑받지 못한 티가 이렇게 줄줄 흘러요.

그래서 혼자가 편안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한밤중 울면서 시를 쓰다가 문득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외갓집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강화도 솔정리 마을.

도로가 나서 외갓집은 헐리고 없었지만 마을을 정성스레 밟고 다녔어요.

외할머니의 단정한 발자국 찾아, 엄마가 뛰어놀던 신나는 발자국을 찾아서요.

그냥 그 공간에 내가 있는 것 자체만으로 아픈 내 몸이, 아픈 몸보다 더 크게 병들어 버린 마음이 조금은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외할머니, 내일 당신의 딸을 만나러 갑니다. 당신과 너무 닮은 당신의 딸, 그리고 나도 나이가 들수록 당신의 딸을 더욱 많이 닮아갑니다.

이제는 당신의 딸에게 사랑을 받으려 말고 내가 당신의 딸을 사랑해 주렵니다. 당신을 닮은 당신의 딸을 귀하게 여기렵니다. 내가 이런 마음을 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신이 유년시절의 나에게 주었던 잠시잠깐의 고맙고 묵묵했던 사랑을 계속 떠올리고 떠올리다 보니 그런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아, 당신이 살아있을 때 내가 강화도에 한 번이라도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는 왜 하루하루 한숨만을 내뱉느라 그리 바쁘고 바빴을까요.

후회가 너무 많은 삶이 후회 없는 삶을 만들고자 부단히 애쓰는 중입니다.

외할머니, 그립습니다. 나는 다행히 늙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하늘나라에서 이런 나를 지켜보고 계실까요?

강화도 솔정리 마을에 두 시간 머무르면서 이 글들을 남겼습니다.

내가 지금 당신께 드릴 수 있는 건 당신을 추억하는 이 글뿐이네요.

당신의 묘소가 무안에 있다고 들었어요.

그곳에도 한 번 찾아뵐게요.

커갈수록 나를 많이 닮아가는 당신의 증손녀를 데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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