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벗이 필요 없는 사람과 벗이 되려 해요.
길을 살짝만 걸어도 벗이 생기니 나는 벗이 필요가 없어요.
내 발에 치이고 밟힌 돌멩이 하나가 금새 내 친구가 되니까 그렇지요. 철마다 피고 지는 들꽃들도 나의 매력적인 친구가 되어 준답니다. 향긋한 대기, 어딘가에서 풍겨오는 초록의 무성한 내음들도 우아하고 근사한 내 친구고요.
작은 냇가 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다슬기와 나의 두 손바닥에 잡혀 맥없이 떠지는 어린 치어들이 내 귀여운 친구이고 나는 그들을 놀래키는 매우 짓궂은 친구랍니다.
늘상 동네를 절뚝이며 산책하는 꼬죄죄한 누렁이가 내 친구고요, 전투의 흔적이 엿보이는 길냥이들이 내 가슴 아픈 친구예요. 까불기 바쁜 이런 새, 저런 새들은 가끔은 피곤해서 피하고 싶은 나의 수다쟁이 친구지요.
수면 위에서 반짝거리는 은빛 혹은 금빛 윤슬이 내 친구가 되어주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요. 어느 집 담장에 그려진 그림들도 마찬가지예요.
침대가 되어주는 나무 벤치들이 내 친구이고요, 푹신한 들판도 담요 같은 내 친구예요. 거기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과 곤충들도 모두 내 친구가 되어줘요.
흙먼지는 순수한 나를 타락시키려고 안달 난 친구인데 그 타락이라는 것이 정말 깜찍하기 짝이 없어서 나는 혼자 쿡쿡대며 웃어요.
내가 잠시 기대는 나무의 몸통도 내게 듬직한 친구가 되어주어요. 나무와 별개로 나무의 시원한 그림자는 또 다른 친구예요. 한 번은 나무랑 나무 그림자를 같이 취급했더니 나무는 정색하고 나무 그림자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토라져서 한동안 내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땅 속에 숨어 지내는 나무뿌리 녀석도 내게 선생 같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종이와 연필은 당연히 내 단짝이고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벗은 찾아오기에 굳이 나는 벗이 필요 없어요. 벗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저라구요. 열어진 창문과 문틈으로 마음대로 내 방에 드나들며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바람 친구도 있어요. 가만히 따뜻하게 안아주고 가는 햇볕친구도 있어요.
밤에는 대단한 친구들이 찾아와요. 저는 놀아주기 바빠져요.
눈웃음 짓는 달을 외면할 수 있어야죠, 겨우 달빛 내어 달님으로 존재하는 손톱달도 나의 소중한 친구이고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면 나를 압사시킬 듯한 체중의 보름달도 나의 친구예요. 너를 보는 게 숨차다고 구박하면 다음날부터 조금씩 야위어가요.
찌륵찌륵 또롱또롱... 밤의 연주를 마음껏 해대도 민원 한 번 받지 않는 수많은 풀벌레와 청개구리도 내 친구예요.
별들은 굳이 말하여 무엇할까요. 나와 같은 곳에서 자란 소꿉친구랍니다. 아직도 소꿉장난 하며 노는 친구이니 우리는 도통 철이 들지 않는 친구 사이지요. 그치만 눈물을 나누는 둘도 없는 친구라구요.
내 친구들을 대충만 적어봤어요. 나는 무신경한 친구라서 대충대충 친구를 살펴요. 그럼에도 숨만 쉬어도 친구들이 따라붙어서 외롭지가 않아요.
그러니 내가 심심할 일이 있겠어요?
그러니 인두겁을 쓴 벗이 굳이 필요할리가 있겠냐구요.
살가죽을 가진 친구가 나의 성에 찰 리가 있겠냐구요. 그들을 신경 써 줄 여력이 없을 만큼 친구가 이미 차고 넘치는걸요.
굳이 인간 친구를 만들자면요, 나는 나처럼 친구가 필요 없어도 되는 친구와 벗이 되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