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실무에 쫓기는 사고뭉치 신입 디자이너
이서의 아침은 매번 다짐으로 시작된다.
“오늘은 실수하지 말자.”
하지만 늘 다짐은 무너졌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켜지는 모니터, 바쁘게 움직이는 동료들, 그리고 늘어가는 작업물들. 하지만 그녀의 작업 체크리스트 옆에는 ‘수정 필요’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서가 맡은 콘텐츠 디자인 업무는 겉보기에 단순해 보였다. 배너, 뉴스레터 섬네일, SNS 카드뉴스 등, 이미 만들어진 템플릿을 바탕으로 유지·보수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실무는 혹독히 휘몰아치는 마감기한에 쫓겨 디자인하는 것이 일상인 데다, 텍스트 하나의 길이, 버튼 위치, 폰트 크기, 이미지와 브랜드 컬러의 조화까지—하나라도 놓치면 바로 수정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엔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다. 작은 오차 정도는 팀원이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괜찮겠지’들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어버렸다.
어느 날, 모바일 화면을 고려하지 않은 배너로 인해 마케터에게 “버튼이 너무 작아요”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다음 날은 뉴스레터 썸네일에서 브랜드 컬러가 아닌 색상을 써서 “가이드 다시 확인해 주세요”라는 메일이 날아왔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실수는 오타였다.
‘신구 가입자 10% 할인’
‘신규 가입자 10% 할인’을 ‘신구 가입자 10% 할인’으로 표기해 버렸다.
디자인은 완벽했지만, 오타 하나로 모든 게 무너졌다. 그것도 마케팅 전체 회의에서 소개된 후였다.
“디자이너에게 오타는 기본적인 신뢰를 깎는 일이에요.” 팀장의 한 마디가 마음을 깊게 찔렀다.
자잘한 실수들이 반복되며 이서는 사내에서 소리 없는 ‘사고뭉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하아…’ 하는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고, 그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서 씨 오전 10시까지 수정해 주세요 :)"
특히 이 대리의 메신저에 붙은 ‘웃음’ 이모지는 응원인지 경고인지 헷갈렸다.
이제는 알림음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했다. 이름이 불리면 “또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집에 돌아가면 그날의 실수를 복기하는 게 하루의 마무리 루틴이 되었다.
‘나는 왜 이럴까?’, ‘이 일이 나랑 안 맞는 건 아닐까?’, ‘팀원들이 나 피하는 거 아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출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며 “오늘은 제발 무탈하게…”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서의 실수는 신입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속되는 실수는 그녀를 점점 더 작게 만들었다. 매일 배우고 있다는 믿음보다 매일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컸다. 피드백은 이제 더 이상 배움의 기회가 아니라 위축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이서에게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다.
어느 날, 팀장님이 이서를 조용히 부르며 말했다.
"이번 여름 프로모션 캠페인으로 마이크로사이트를 새로 오픈하려고 해요. 이서 씨가 한 번 맡아볼래요?"
이서의 머릿속은 정지했다. 팀장님의 말은 분명 무심한 듯 평범했지만, 그 안에는 지금까지의 이서에겐 없던 단어 하나가 있었다.
‘맡아볼래요?’
‘.. 맡아볼래요?’
‘... 맡아볼래요?!’
이 단어가 메아리쳐서 이서에게 다가왔다.
주도적으로 맡는 일이라니. 게다가 마이크로사이트라니.
단순한 배너가 아니라 하나의 웹페이지 전체를 주도하여 디자인하는 일이다.
"네! 하겠습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건 기회일까, 또 다른 구덩이일까.
그날 저녁, 이서는 퇴근 후 노트북 앞에서 마이크로사이트 참고 레퍼런스 자료를 수십 개는 본 듯했다. 최근 연이은 실수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번엔 진짜 잘해야 해.’
불안한 다짐을 반복하며 그녀는 이번 작업에 욕심이 생겼다. 첫 메인 디자인 작업이라는 말에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욕심은 곧 완벽주의라는 이름으로 변해갔다.
다음날 본격적인 마이크로 사이트 디자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미팅을 거쳐 기획서가 전달되고 일정이 정해졌다. 여름 시즌 프로모션 특성상 시원하고 경쾌한 분위기, 명확한 제품 메시지 전달, 사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컨셉이 요구되었다.
이서는 퇴근 후에도 레퍼런스 자료를 수집하였고 회사에선 수십 번 스케치하고 수정하여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어 나갔다. 초안이 완성되었을 즈음, 이 대리가 다가와 슬쩍 물었다.
"어디까지 진행됐어요? 궁금해서."
하지만 이서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다듬는 중이에요. 곧 보여드릴게요!"
사실은, 보여주기 무서웠다. 또 틀릴까 봐. 또 피드백을 받을까 봐. 또 주눅 들까 봐.
그렇게 이서는 누구와도 의견을 나누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회사에서, 집에서, 심지어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도 틈만 나면 디자인을 수집하고 또 수정했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지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업무기한의 하루 전 날이 되었다.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메모:
마이크로사이트란?
마이크로사이트(microsite)는 기존 웹사이트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페이지 또는 소규모 웹사이트로 특정 캠페인, 이벤트, 브랜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한정된 목적과 짧은 운영 기간을 갖는 경우가 많으며, 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단일 목적: 이벤트 홍보, 신제품 소개, 특정 캠페인 집중 홍보 등.
강한 비주얼 중심: 사용자 이목을 끌 수 있도록 감각적인 디자인이 요구됨.
브랜드와 연계된 맞춤형 UI: 브랜드 가이드에 맞춘 독립적이면서도 일관된 디자인 필요.
빠른 제작, 강한 메시지: 타이밍이 중요한 경우가 많아 빠른 기획과 제작이 핵심.
마이크로사이트는 프로모션 목적으로 제작되며 메인 웹사이트와 분리되어 있기에 기획, 디자인, 개발 전반에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