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쉬는 날, 약속이 없는 날이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다. 우리 동네는 구마다 도서관이 잘 갖춰져 있고 프로그램들도 다양해서 도서관을 순례하듯 다니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고 힐링이기도 하다. 한강이 바로 보이는 멋진 뷰를 뽐내는 한강 도서관부터 진짜 숲 속에 들어와 있는 숲 속 도서관 그리고 동네 한가운데 위치했지만 한쪽 면을 폴딩 도어로 해서 발코니를 카페처럼 꾸며 놓은 영어 도서관까지 맘에 들지 않는 곳이 없다. 그중에서 오늘 방문한 도서관은 어린이 영어 도서관이다. 이곳은 얼마 전에 영어 동화책 녹음 봉사 프로그램이 있어서 알게 된 곳인데 그때 마침 낭독을 배우고 있을 때라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가끔 상호대차 신청한 책을 빌리러 가곤 했는데 오늘은 왠지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 보고 싶어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대출한 책을 보다가 주위를 한 번 휙 둘러봤다. 작은 공간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책이 굉장히 많았다. 영어 도서관이니 당연히 영어책들이 동화책부터 성인물까지 다양하게 있었고 한쪽에는 국내 도서도 있었다. 쭉 둘러보다가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바로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이었다. 그 옆에 다음 시리즈 “뉴문”, “이클립스”, “브레이킹던” 도 나란히 있었다. 이 책은 뱀파이어와 인간 10대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한때 할리우드에 유행했던 영 어덜트 소설(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로맨스 소설)로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로버트 패틴슨의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져 붐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때 내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책들이기도 하다. 두꺼운 벽돌만 한 크기의 책을 그것도 네 권씩 읽기란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때는 책에 빠져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10대 소녀도 아니고 20대 청춘도 아닌데 나는 이 나이에 왜 로맨스에 빠졌었나? 그것도 판타지 로맨스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을 해 보고 싶어서였을까? 책 속에 빠져 있으면 내가 마치 벨라가 된 듯한 착각 속에 있었는데, 그런 기분이 좋아서 계속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회상에 젖어 있다가 보니 그 옆 칸에 스테프니 메이어의 다른 책이 눈에 띄었다. “미드 나잇 썬”이라고 처음 보는 책인데 서문을 읽어 보니 전에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모두 여자 주인공인 인간 벨라의 시선에서 본 이야기이고 이 책은 남자 주인공인 뱀파이어 에드워드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이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가끔 마음에 꼭 드는 책을 발견하면 알 수 없는 흥분감에 뒤싸이 곤 한다. 도파민이라도 나오는 걸까? 기분이 좋아져서 얼른 휴대폰으로 책을 구매했다. 책을 빌리면 모르는 단어를 찾았을 때 메모를 할 수도 없고 좋아하는 문장에 밑줄도 긋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은 구매하는 편이다. 누가 그러지 않았나. 책은 구매해서 꽃아 두는 거라고. 게다가 원서는 책장에 꽂아 놓으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책은 오늘 당일 배송된다고 한다. 한동안 또 밤잠을 설치게 될 거 같다. 하지만 그만큼 또 나는 설레고 행복하겠지. 벌써부터 책 내용이, 에드워드의 마음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