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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형 Aug 11. 2023

승마교본 3

   삼 일째 해가 저물기 전 당신에게 밥을 주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부터 당신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사료 포대를 뜯는 법부터. 어느 밥통부터 각각 어느 정도의 양을 부어야 하는지까지. 말들은 사료를 부은 당신이 조금 거리를 둘 때까지 기다린다. 당신은 천천히 멀어진다. 당신이 보고 있는 말은 ‘달그림자’다. 녀석은 당신에게 무관심한 척하지만, 당신의 움직임을 이 자리 누구보다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달그림자는 당신이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밥그릇에 다가간다. 당신은 그 자리에 멈춰 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조용히 바라본다. 당신은 아주 천천히 앞으로 몸을 움직인다. 나는 다음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당신이 다가가는 그 말은 자신을 만지도록 쉽게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다. 붙임성 좋은 다른 녀석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운이 나빴던 것일까.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일까. 당신이 말들을 관찰한 선택의 결과일까.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달그림자가 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달그림자는 화들짝 고개를 들어 당신에게서 물러난다. 당신은 놀라 뒤로 넘어진다. 달그림자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당신을 내려본다. 당신은 일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큰 대형 동물이 자신을 내려보는 경험을 해본 적 있을까. 당신은 가만히 그 자리에 멈춰 있다. 다시 손을 내민다. 허공의 공기라도 잡으려는 듯. 나는 당신의 용기에 놀란다.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땅에 있는 사람을 밟지 않게 훈련된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방어 이상의 행동을 할 리 없다. 그렇게 이미 순치되었으니. 이 자리에서 당신만 그 사실을 몰랐다. 당신이 손을 드는 것과 동시에 달그림자는 ‘새벽안개’에게 달려가 입질을 하며 성질을 부린다. 밥그릇을 뺏긴 새벽안개와 그 자마는 사료통에서 조금 떨어져 달그림자와 당신을 번갈아 바라본다. 새벽안개와 눈이 마주친 당신은 뻗었던 손을 내린다. 새벽안개는 당신 근처의 사료통으로 다가와 머리를 들이민다. 함께 따라온 자마는 어미보다 경계심이 덜하다. 하지만 오히려 더 위험할 것이다. 나는 고민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천천히 손을 뻗어 새벽안개의 목에 손을 댄다. 목을 조금 푸르르 떨었지만, 당신을 위험하다 판단하진 않은 듯했다. 나는 어느덧 당신에게 다가와 있다. 당신의 머리가 바람에 날린다. 난 당신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녀석은 달그림자라고 하는데, 보다시피 좀 예민해요. 사교성이 좀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이 녀석은 새벽안개라고 하는데. 보신 거처럼 저 녀석보다 서열이 낮아요.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건 아닌데, 둘이 움직일 때 항상 뒤에 서죠. 둘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당신이 오늘부터 계속 밥을 준다면, 언젠가는 당신이 사료포대만 들어도 말들은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먹을 것으로 상대를 길들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이제 우리도 저녁을 먹으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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