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형 Aug 11. 2023

승마교본 4

   당신이 두 말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신이 말을 조금 안다면 말을 구분하기 위해 어디부터 볼까. 우선 양말을 신고 있는지 볼 것이다. 새벽안개는 발목 아래 털이 하얀색이었다. 얼핏 둘 다 갈색으로 보이지만 새벽안개는 밤색에 가까웠다. 밤그림자는 그야말로 진한 갈색에 꼬리는 흙갈색이었다. 물론 이는 말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런 것이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을 때, 발목부터 보는 초보자는 없을 것이다. 당신은 관찰력이 좋았고, 두 말의 차이를 쉽게 구분했다. 물론 개체의 구분에서 끝나지 않고 얼굴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단지 구분에 멈추지 않고 정면에서 말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말들은 이제 당신이 밥을 줄 때 다가와 장난을 치기도 한다. 물론 밥을 줄 때뿐이지만 말들은 당신이 만지는 걸 허락한다.

   “둘 중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나요?”

   당신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아직 모르겠거든요.”

   나는 당신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 당신과 같은 대답을 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그렇게 깊은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단지 털의 색, 얼굴 모양, 사료를 먹을 때의 습관. 그런 사소한 것들로 생기는 것이 호감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 생명체와 생명체의 관계는 그런 얄팍한 호감들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것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당신은 사료를 뿌리는 시간 이외에는 오두막 앞 나무 그늘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새벽안개가 당신에게 먼저 다가왔다. 당신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당신은 일어나 새벽안개의 목을 쓰다듬어 주고 힘껏 껴안았다. 나는 새벽안개에게 다가가 말솔로 털을 손질해 주기 시작한다. 새벽안개는 기분이 좋은 듯 몸을 조금씩 돌리며 흙이 뭉치거나 가려운 곳을 들이댄다. 당신이 오고 한 번도 손질하지 않았으니 꽤 더러웠다. 그 모습을 보던 달그림자도 다가와 머리를 들이민다. 새벽안개의 자마도 합류하여 우리를 둘러싼다. 당신은 나의 사소한 동작도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당신에게 솔을 넘긴다.

   “오늘부터는 매일 손질해 주도록 하세요.”

   당신은 솔을 받고 달그림자의 털을 손질하기 시작한다. 나는 당신을 지켜본다. 당신은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털을 쓸어내린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약하기도 했다.

   “조금 더 세게 해도 돼요. 이 녀석들 가죽은 우리 생각보다 두꺼워서, 상처가 난 곳만 아니라면 우리 생각에 약간 세다 싶어야 좀 긁어주는구나 싶을 겁니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솔을 힘껏 잡는다. 등과 목을 털어낸 당신은 배와 다리를 보며 조금 망설인다.

   “내가 여기에 있다, 라는 것만 확실하게 알려주면 당신을 밟거나 차지 않을 거예요. 그 이야기는 당신을 일부러 공격할 리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일어나는 사고 대부분은 사람과 말 쌍방실수입니다. 말에게 복수나 증오라는 감정은 없어요.”

   나는 당신이 보는 앞에서 달그림자의 배 아래에 앉아 당신에게 손짓한다. 당신은 내 옆으로 쪼그려 앉아 배를 손질한다. 나는 그런 당신을 보다 일어선다. 당신은 성실한 학생이다. 배 손질이 끝나자 나는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당신은 내 손을 잡고 일어선다. 당신의 손은 너무나 차갑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당신의 냉기에 놀란다. 나는 그 놀람을 숨기고 웃음으로 당신을 칭찬한다. 당신도 웃으며 새벽안개의 자마에게 간다. 나는 당신을 말들 사이에 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말들은 사료뿐 아니라 솔만 들고 있어도 당신에게 모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차차 당신이 솔을 들고 있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굴레를 들고 있더라도 당신을 믿고 따를 것이다. 길들이는 당연한 과정이지만, 항상 새로운 사람이 이 과정을 거칠 때 조금은 슬픈 느낌이 들었다.

이전 03화 승마교본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