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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물의 의미는

아빠니까

by 장시무

병문안을 갔다. 요사이 바이러스가 돈다던데 그 집에 좀 오래 머물렀나 보다.

80이 넘은 아버님은 하루정도 치료를 받으신 후 정신이 조금 돌아오셨다. 먹지도 못하고 계속 설사를 하셔서 기운도 없으셨다. 원래는 정말 건강하셨다는데...


거친 손을 잡아 드린다. 생각보다 따뜻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다 못해, 이제 희미해져 간다. 반가우신지, 어색하신지, 아직 몸이 많이 불편하신지, 흔들리는 눈동자와 변하지 않는 표정. 괜히 어머님은 이제야 정신이 좀 드신다며 어색한 기운을 떨치려 하신다. 괜찮은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인사시켜 드렸다. 그때서야 약간 밝아지신다. 역시 아이들의 존재는 빛이다. 같이 오지 않은 사춘기 첫째까지 기억하시면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


그런데,

"우리 아들하고 비슷한 나이인데 애들도 낳고 사는데, 우리 아들은..."

눈물이 주름 가득한 눈가에 맺힌다.

흐른다. 눈을 감으신다.


어머님이 말을 막으신다. '왜 그러나 요즘에' 하시며 눈물을 닦으신다. 그의 약해진 모습이 오늘부터는 아닌 듯, 그리 어색해하진 않으신다. 그래도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남편이 안쓰러우신지, 아니면, 그가 했던 말에 함께 가슴 아파하신 건지 '그 애는 그렇게 살기로 했어요. 건강히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왜 내 가슴이 저려올까? 괜히 우리 애들 때문에...


순간 이전에 어머님께 들은 아버님의 삶이 스쳐 지나갔다.



강원도 시골 출생, 6.25 굶었던 어린 시절, 월남전 참전, 해병대 청룡부대(티비에서나 들어봤던 그 청룡부대) 함께 참전한 동기들 중 다수가 전사했고, 그는 다행히 본국 귀환했다가 원양어선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님. 어느 태평양섬에 있는 어떤 한국해양회사에서 일하며 한국가족들을 다 먹여 살림. 거기서 딸, 아들 낳고 가족들과 10여 년을 산 후, 호주로 넘어와 정착하게 됨.


80년대 후반, 호주 이민자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생. 말도 안 돼, 한국 사람도 많이 없어, 일도 새롭게 해야 해, 인종차별도 있어. 등등등. 그래서 가족을 지키기 참 힘들었다고. 그 와중에 둘째 아들과의 갈등이 너무 심해서(너무 많은 사연들...), 아직도 소원한 관계. 지금은 은퇴하신 후 모든 대외 활동을 중단하고, 집에서만 지내시고 계시던 중 갑자기 찾아온 바이러스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가심.




아 인생이 이러한가!

나라와 가족을 위해 한평생을 몸 바치셨던 삶의 보상이 응급실에 실려간 아버지를 보러 오지 않는,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것이라니(동정은 아니다. 우리의 삶도 내용은 달라도, 별 그리 대단하지 않지 않는가)


그래도 나는 확실히 느꼈다. 본인의 인생에 대한 연민보다, 멀리서 홀로 지낼 아들 생각에 가슴 아파하시는 늙은 아버지의 눈물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다른 아버지 아들은, 그저 멍하니 서 있는다.


공교롭게도 나의 아버지와 연배가 한 두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떠올라 버렸다.


살아계셨다면, 아들 생각하시며 그렇게 눈물 지으실 때가 있으셨을까? 왜 그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하진 않으셨을까? 그 모진 세월 지나오시면서, 그렇게 나라와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셨으면서도, 왜, '나는 이게 필요하다. 나는 지금 니가 보고싶다. 나는 니가 이렇게 살면 좋겠다.' 별 유난스럽지도 않은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말들을 직접 하지 못하셨을까?


기분이 묘하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끼여있는 나는 아버지로서 그를 바라보는가, 아니면 아들로서 그를 바라보는가?


내 안에 아들은 아빠가 보고 싶어 울고, 아버지는 아들 생각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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