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 인부의 기계음에 속절없이 잘려 나가는 건 대부분 쑥이다. 예전엔 민초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던 쑥이었건만 지금은 잡초 취급을 당하는가 하면 대접이 예전만 못하다. 예로부터 굶주리는 백성들에겐 기근이라도 들면 목숨을 부지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백성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근근한 삶을 이어가게 해 준 것은 쑥이었다.
고대로부터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기근의 역사는 끊임없이 백성들을 위협했다. 임진왜란(1592),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7)의 양 난을 겪은 후 경신대기근(1670)은 인구의 4분의 1인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시 채호(釆蒿)에 백성들이 겪는 기근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텅 빈 쌀독에서 나오는 건 한숨뿐, 백성들은 쑥이라도 뜯어 목숨만을 연명해야 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쑥의 씨를 가루로 빻아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몇 해나 먹고살았는데그 맛으로 치면 떫고 구역질 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에 쓰려고 쑥을 캘까 / 눈물 어리네 / 항아리에 기장 한 톨 없고 / 들에도 새싹 하나 없도다 / 오로지 다북쑥만이 나서 / 무성하구나 / 말리고 또 말린 풀을 / 삶아서 소금치고 / 진하고 무른 죽 쑤어 먹지 / 별다른 것 아닐세
*채호: 쑥을 케네
최일남은 그의 단편소설 <쑥이야기>에서 아버지가 노무자로 끌려간 이후 인순이 어머니와 둘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묘사했다. 작품에서 인순은 아이를 밴 어머니 뱃속의 아이가 쑥으로 연명하는 어머니를 닮아 "살결이 쑥빛을 닮아 퍼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와 인순의 살빛도 쑥을 닮아 "차차 퍼런 색깔로 변해가는 듯" 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매 끼니를 쑥으로 때우려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지사 일 것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자주 된장에 쑥이나 시래기를 넣고 국을 끓이시곤 했다. 사실 매일 별다른 반찬은 없었다. 된장과 쑥, 그리고 시래기는 별나게도 궁합이 잘 맞아 쑥과 시래기의 신선하고도 풋풋한 냄새는 된장의 성분과 결합하여 깊은 맛을 우려내는 것이었다.
Ⅰ시경에서는 다양한 소재로Ⅰ
시경이 기원전 9C~7C에 지어진 것이니 중국에서도 3천 년 전부터 이미 쑥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경 305수 가운데 160편은 주나라 통치하의 15개 나라에서 백성들이 즐겨 부른 노래를 모은 것인데 국풍(國風)이라는 것이다. 국풍의 가사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소재가 바로 사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간의 애틋한 이야기는 끊일 날이 없다. 쑥은 시경에서 다양한 소재로 쓰였는데 역시 남녀 간의 사랑이나 연민에 관한 가사가 많고 그밖에 제사나 찬양 그리고 부모님 생각 등 다양하다. 이미 3천 년 전에도 쑥은 온 세상에 퍼져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백성들의 눈에 자주 띄는 쑥은 다양한 소재로 가사에 인용되었다.
<<시경>> <대아> 생민(生民)은 주(周) 왕조 창업의 시조인 후직을 칭송한 시로 오래전부터 쑥이 제사에 이용되었다. 쑥을 태워 혼령을 하늘에서 구하고, 쑥을 기장과 피를 섞어 태워 냄새를 담장과 지붕 위로 올라가게 했다.
기름 바른 쑥을 태워 / 숫양 잡아 길의 신께 제사드리고 / 굽고 지진 고기를 꿰어 / 풍성한 새해를 맞네
*생민:백성을 낳음
<<시경>> <소남> 채번(采蘩)은 공후의 일을 하면서 멋진 공후에 대한 연민을 노래했다.
다북쑥 뜯는다네 연못에서 물가에서 / 어디에 쓸 것인가 공후의 일이로다
*채번:쑥을 뜯다
<<시경>> <소남> 추우(騶虞)는 말을 몰며 짐승들을 관리하는 추우의 기상 엄치는 모습을 찬양하는 노래다.
불쑥불쑥 쑥이 돋아 있네/ 화살 하나에 다섯 돼지를 잡으시니 / 아아 추우로구나
*추우:상상속의 동물, 짐승을 관리하는 사람
<<시경>> <위풍> 백해(伯兮)는 떠나 간 님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했다. 님이 떠난 마당에 내 머리를 손질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의 님이 동쪽으로 간 뒤에 / 내 머리 쑥대같이 되었네
*백해:그리운 님
<<시경>> <빈풍> 칠월(七月)에서 소녀의 공자에게 품은 애틋하고도 간절한 연정을 읽을 수 있다.
다북쑥 수북이 캐어도 소녀의 마음은 슬퍼라 / 멋있는 공자에게 시집가고 싶어라
<<시경>> <소아> 녹명(鹿鳴)은 사슴이 풀을 뜯듯 평화로운 세상을 찬양하는 노래다.
기뻐하며 사슴 울네 들 쑥을 먹고 있네 / 나에게 손님 있어 좋은 말씀 밝으시네
*녹명:사슴이 우네
<<시경>> <소아> 육아(蓼莪:다북쑥)는 그리운 부모님을 생각했다. 나라의 일에 징집된 효자가 쑥을 보며 부모 공양도 제대로 못하는 안타까움을 절규한 노래다.
커다란 저 다북쑥 이제 보니 약쑥이로다 / 슬프구나 우리 부모 나를 낳아 애쓰셨네
*육아:다북쑥
Ⅰ작은 것이 아름답다Ⅰ
쑥도 꽃을 피울까? 쑥은 이래 봬도 지구상에 가장 성공적으로 번식한 국화과의 식물이다. 국화과는 벌과 같은 곤충이 수분을 시키는 충매화지만 쑥은 예외적으로 바람에 의해 씨를 날리는 풍매화로서의 진화를 선택했다. 가지마다 수북이 피어나는 꽃은 수많은 열매를 맺고 씨를 퍼트리는 쑥의 전략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때 쑥꽃은 쑥스러운 듯 길가의 한 모퉁이에 소리 없이 고개 숙여 꽃을 피운다. 쑥꽃은 종모양의 꽃싸개가 가지에 보랏빛 꽃을 잔뜩 달고 작게 피어난다. 쑥꽃의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말미잘의 촉수와도 같은 수술과 꽃의 중심에 자리한 노란 암술은 강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쑥꽃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먼 우주의 깊은 심연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작은 꽃에서 느끼는 호기심은 눈을 크게 뜨게 한다. 호기심은 드넓은 우주의 신비로 다가서는 출입문이다. 국화를 바라보면서 아름다움 자체에 빠져든다면, 쑥꽃에서는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고 밝히는 방아쇠가 당겨질 수 있으리라. 당겨진 방아쇠는 탄환같이 날아 먼 우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작은 꽃이 갖는 힘이고 매력이며 아름다움이다.
작게 피어나는 꽃은 오히려 집중력이 생기고 상상력이 확장된다. 쑥꽃(좌) 과 단풍잎돼지풀 꽃(우)
Ⅰ쑥의 생각Ⅰ
생존전략을 짜다
쑥은 생각해 보았다. 키도 작고, 보잘것없는 잡초인 내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까? 쑥은 일단 울창한 숲 속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숲에는 하늘을 가리는 커다란 참나무를 비롯해서 도저히 햇빛을 받고 숨 쉴 공간이 없을 것 같았다. 산기슭에, 들판에, 강가에, 길가 어느 곳이나 환한 데로 내려왔다. 뿌리를 깊이 박아 기초를 튼튼히 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땅속줄기로 뻗어 번식을 계속했다.
쑥은 자라는 동안 온갖 곤충이 달려와 잎을 갉아먹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몸에 강한 향이 나는 휘발성 기름을 생산하여 해충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쑥은 곤충이 회피할 쓴맛을 내는 타닌을 비롯한 자그마치 몇 가지의 성분을 가지고 있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 쑥은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잎 뒤에 하얀 털로 무장했다. 털은 잎의 기공이 숨을 쉴 때 수분의 손실을 막는다.
세력확장을 구도하다
쑥은 또 생각했다. 어떡하면 나의 자손을 천대만대 퍼뜨릴 수 있을까? 덩치가 작아 이쁜 꽃을 크게 피워 곤충을 유인하여 수정하려면 꽤 비용이 들 것 같았다. 방법은 하나 쑥은 일단 작은 씨를 많이 생산하여 바람에 날려 보내기로 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가는 곳마다 쑥이 쑥쑥 자랐고 들판은 아무리 가물어도 쑥대밭으로 변하곤 했다. 멀리서 들리는 소문에 원자탄이 터전 곳에서도 쑥이 제일 먼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쑥은 흐뭇했다.
쑥꽃과 국화잎혹파리 충영(화살표)
쑥은 패밀리도 한번 크게 거느려 볼까 생각했다. 쑥은 다행히 사교성이 아주 좋은 식물이었다. 쑥은 유사식물과 교배가 가능하여 새로운 종을 많이 만들어낸다. 온 세상의 다른 환경에 따라 새로운 쑥도 쑥쑥 만들어 내었다. 쑥의 종류는 자그마치 우리나라에만 200여 종이 넘는다고 하니 쑥의 계획은 또 적중했다.
홍익인간 정신을 실천하다
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쑥은 바람결에 들려오는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듣기에 좋았다. 나도 이제 이만큼 해놓았으니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 좀 할 수 없을까? 쑥은 배고픈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죽으로, 미음으로, 국으로 그리고 떡으로 몸을 내 주기로 했다. 또 아픈 사람을 위해서는 약이 되어 주기로 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쑥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몸을 튼튼히 하기도 한다. 단군신화의 곰도 쑥을 먹고 몸을 튼튼히 하여 우리 조상을 낳았다. 쑥은 흐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