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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Sep 13. 2023

칠(漆)의 장인(匠人) 옻나무

칠의 마법사 옻나무 Ⅰ


漆. 옻칠 혹은 옻나무진으로 읽는다. 桼(옻칠) 자에서 따온 말로 桼자는 나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형상이라고 한다. 옻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목질의 칠액구(漆液構)에서 수액이 나오는데 이것을 생칠이라고 한다. 옻나무의 칠액에 다양한 성분을 섞으면 투명칠, 붉은색 및 녹색등의 색칠, 그리고 흑칠등 다양한 색감을 창출한다.


예로부터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도료 중에 옻나무에서 나오는 칠액만큼 효용성 높은 것도 없을 것이다. 목재라는 것은 세월이 가면 썩어 못쓰게 되는 것이어서 이때 옻나무의 칠액을 이용하면 방수는 물론이요 방염 및 방독 그리고 방충까지 해결될 뿐 만 아니라 생활의 곳곳에 옻나무는 귀중하게 쓰였다. 중국의 고대 분묘에서는 비파가 발견되었는데 옻으로 비파 전체를 칠하여 그 색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에 이미 옻칠을 사용한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고 삼국시대에도 옻칠을 한 여러 기록과 유적이 남아있다.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칠기유물이 발견되었고 공주의 공산성에서는 칠갑옷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신라의 고분에서는 옻칠을 유물이 발견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칠전(漆典)이라는 기구를 두어 칠을 담당하게 했다. 고려 때의 나전칠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술작품이 되었고  전함조성도감 (鈿函造成都監)을 두어 칠기함을 관리하게끔 했다. 또한 고려 성종 때에는 옻에 대한 세금을 거두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3년마다 옻나무를 조사하여 대장에 적도록 하였고 옻의 일반에 대한 사용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옻나무는 귀한 나무였다. 나전칠기는 조선시대에 와서도 다양한 문양과 도안으로 예술성을 표현하였다.


옻나무의 열매는 밀랍으로 쌓여 있어 자연발아가 잘 안된다 (좌). 옻나무 꽃은 암수딴그루로서 암꽃과 수꽃은 각기 다른 나무에서 핀다(중) . 옻나무의 겨울눈(우)


인생행락이(人生行樂耳) 


옻나무의 재배가 중국에서 약 4천 년 전부터 재배되었고 시경이 3천 년 전 경에 쓰이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옻나무가 중국에 많이 분포되었을 것이다. 옻칠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중국에서 옻나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일찍이 대동야승에 전하는 퇴계의 시에 칠원(漆園)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옛 고을에 터만 남았는데 /  옻나무 숲은 관가에서 심은 것 / 베임을 당한다는 깨우치는 말을 하였으니 / 장자도 또한 식견이 높구나 / / 칠이 세상에 쓰임이 되니 / 베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으랴 / 혹시 베임을 면할지라도 / 베임을 당할 도리니라


장자는 한 때 옻나무를 심는 밭 곧 칠원에서 칠원리(漆園吏)에서 벼슬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만 해도 종이가 개발되지 못해 대나무에 글을 썼는데 이때 사용한 것이 옻칠이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자다가 웬 옻나무 밭에서 일을 했나 의아하지만 글 꽤나 쓰고 읽는 장자에 오히려 딱 어울리는 일이라고고 할 수 있겠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 잘리고 옻나무는 쓸모 있어 베인다.


<<시경>> <당풍> 산유우(山有樞)에 옻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을 나타냈다. 귀한 옻나무가 많으면 천하태평일세 하며 즐겼던가 공교롭게 시경의 두 시 모두 죽으면 그만이니 한평생 살아 있을 때 술 마시고 마음껏 즐겨보자라는 인생행락이(人生行樂耳 인생은 짧은 것이니 어찌 즐겁게 살지 아니할 건가)의 달관한 삶을 노래했다.


산에는 옻나무 들에는 밤나무 / 그대는 술과 먹을 것을 두고 어찌 금을 타지 않는 건가 / 기뻐하고 즐겨보세 해는 멀어 중천일세 / 그대가 죽으면 딴 사람 집 되고 마니


<<시경>> <진풍(秦風)> 거린(車鄰)은 주(周) 나라 때 서융토벌에 큰 공을 세운 진중을 찬미하는 시라고도 한다. 산과 들에 옻나무가 풍부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세월이 좋은 것이고 좋아하는 님까지 만났으니 어찌 즐겁게 노닐지 아니할 쏜가.


언덕에는 옻나무 들에는 밤나무 / 우리 님 만났으니 함께 앉아 슬을 타네 / 지금 아니 놀면 세월 가고 늙어지리


먹고 놀자고 하면 한 푼 없는 백수건달도 있을 것이요 집안은 가난하나 도를 지키며 안위하는 안빈낙도가 있고 집안의 많은 재산을 까먹으면서 노니는 파락호가 있을 것이되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인생을 즐기고 보자는 것에는 크게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다.


독(毒)도 잘 쓰면 약  Ⅰ


옻나무 하면 그 무서운 '옻'의 이미지에 왠지 거리감을 느끼는 나무일 것이다. 그러나, 옻나무는 사실 우리들에게 매우 유익한 나무다. 옻나무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성분은 우르시올이라고 하는 성분인데 독성이 있어 피부에 닿으면 극심한 가려움증과 함께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다. 우르시올은 휘발성이 강해 옻나무 근처에서만 있어도  민감한 사람은 공기를 타고 옻이 오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동의보감이나 의방유취등에도 옻나무의 효력이 잘 나타나 있듯이 여러 가지 병에 대한 저항력이 있어 매우 효용성 있는 귀중한 나무다. 옻나무에 함유되어 있는 플라보노이드는 뛰어난 항암치료제로 각광받고 있고 항산화작용 및 여러 가지 질병의 치료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 일일이 열거하자면 글의 주제가 바뀌어 버릴 정도이다. 옻나무는 제 몸에 수많은 상처를 당하면서 사람들에게 수많은 혜택을 주는 고마운 나무다. 옻나무는 봄에는 감칠맛 나는 옻순을 내밀고 여름과 가을에는 귀중한 옻 칠액을 분비한다. 옻나무는 가을의 첨병으로 붉은 단풍을 내고 사람들은 옻닭이며 수많은 옻을 이용한 요리를 즐긴다.


붉은 단풍을 열다 Ⅰ


옻나무는 옻나무과의  대표나무다. 이 옻나무는 가을의 단풍을 알리는 첨병으로서 붉나무등과 같이 들판을 붉게 물들인다.  조선후기의 문신 서형수는  목가적이고 서정성 짙은 붉은 옻나무의 가을 단풍을  노래했다.


물러나 살기에 그만인 몇 칸 오두막 / 울타리 서편 옻나무 줄지어 서 있네 / 첫서리 내린 뒤 노을처럼 짙붉을 제 / 청려장 짚고 나서면 꽃동산 걷는 듯

(한국고전종합DB, 명고팔영,명고전집 1권)


다른 모든 식물과 같이 옻나무도 몇 가지의 종류가 있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옻나무는 개옻나무로 약 7미터까지 자라는 나무로 20미터까지 자라는 참옻나무 곧 옻나무와 구별된다. 옻나무는 그 쓰임새가 넓고 귀하다 보니 남획되어 산에서는 거의 소멸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산검양옻나무 와 덩굴옻나무는 남부지방에 주로 산재한다. 옻나무의 잎도 가을이 오면 엽록소가 제 할 일을 다하면 소멸해 감과 동시에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을 만들어 아름다운 가을의 붉은색을 발한다.

참옻나무(옻나무)의 가지는 파랗고(좌) 산에 서식하는 개옻나무의 가지는 붉은색을 띤다(우)

자연의 심오한 이치를 인간이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만 다만 옻나무도 제 살 구실을 찾아 붉은색을 내는 것이니 해충을 방지하는 타감작용이 있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물질을 제공해 주고 환경을 조절해 주며 여러 가지 문화적인 서비스 등 이른바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든 수목이 그러하려니와 옻나무는 실로 인간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질을 주며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고마운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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