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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Sep 11. 2023

문강(文姜)이 닮은 무궁화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무궁화 Ⅰ


Hibiscus syriacus(히비스쿠스 쉬리아카). 무궁화의 학명이다. Hibis는 이집트의 여신 이름이고, cus는 닮았다는 뜻이니 무궁화에는 아름다운 여신을 닮은 꽃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라는 것을 다 알지만 정작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른 봄이면 매화에 취하고 사월이면 벚꽃놀이에 흠뻑 빠지면서 무궁화 피는 여름이면 덤덤한 듯 우리 꽃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2022년 8월 산림청의 무궁화 국민인식도 조사에 의하면 벚나무꽃(18.1%) 장미(11%)  라일락(10%) 수국(9.1%) 매화(7.3%) 개나리(6.9%) 목련(6.3%) 무궁화(5.7%) 진달래(4.6%) 복숭아(3.6%)의 순으로 선정되었다. 무궁화의 선호도가 낮은 이유로는 54%가 흔히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 향동에도 무궁화가 식재되어 있는 곳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산림청에서는 무궁화 진흥계획(제1차 2018~2022, 제2차 2023~2027)을 5년마다 실시하고 있으나 아직도 무궁화를 홍보하고 보급하는 것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형편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국화가 따로 지정된 것은 아니나 벚꽃이 황실에서 상징직으로 사용되고 있고 국민들도 벚꽃을 제일 좋아한다. 미국은 주마다 국화가 다르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꽃 장미이고 국민들도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 영국은 말할 것도 없이 장미가 국화로 지정되어 있고 국민들도 역시 장미를 가장 선호한다.  


나라에서 국민에게 무궁화를 사랑해 달라고 계몽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 개개인 스스로가 무궁화뿐만 아니라 여러 식물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때 비로소 무궁화 고유의 아름다움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본디 식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불현 무궁화를 찾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무궁화 꽃은 아름다운가 Ⅰ


이러고 보면 무궁화는 정말 아름다운가 한 번 의심해 봐야 할 듯하다. 무궁화 꽃은 아욱과의 꽃이다. 꽃의 수술대와 암술대는 한 기둥으로  올라간다. 수술대에는 작은 수술이 촘촘히 기둥에 붙어 있고  기둥의  정상에 암술머리가 5갈래로 나뉘어 올라서 있다. 결국, 기둥 하나에 수술대와 암술대가 같이 붙어 있는 구조로 다른 종류의 꽃들과는 구별되는 특이한 모습이다. 특이성은 곧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무궁화 수술대와 암술대 한몸의 수술대에 많은 수술과 꽃가루가 붙어있다(좌). 무궁화 꽃봉오리에 앉아 꿀을 찾는 호랑나비(우)


무궁화의 엷은 꽃잎은 푸른 하과 숲 그리고 어느 배경에서라도 화사하고 중용적인 색감으로 공간을 채색한다. 중용적인 색감은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음이니 소박하면서도 감히 업신여길 수 없는  풍이다.  무궁화는 단심이라고 하는 꽃의 가운데 부분에서 퍼지듯 발현되는 아름답고 정열적인 붉은색으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 조선초기 안사형은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안과의 서간 대화에서  무궁화가 시경에도 나왔음을 말하면서 무궁화를 고아하고 귀미(貴美)하다고 하였고 무궁화의 흰 꽃을 비유하기를 화판과 빛깔이 백작약과 같다 하며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무궁화 Ⅰ

ㅅ라

시경은 무궁화의 아름다움에 최고 평점을 준 듯하다. 시경에는 아름다운 무궁화 꽃을 한 여인에 비유하여 노래한 매우 흥미 있는 시 몇 수가 전한다. 시경 다섯 편의 서로 다른 시가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흥미 있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시 한 수 한 수의 감상뿐 아니라 각 시가 연결되어 하나의 드라마틱한 재미를 선사하여 마치 시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듯한 묘미를 만끽해 본다.


<<시경>> <정풍> 유녀동거(有女同車)는 무궁화 꽃처럼 지극히 아름다운 여인을 노래한 시다. 아름다운 여인이 수레에 같이 타고 있는 남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함께 수레를 저 여인 / 무궁화 꽃같이 아름답구나 / 아름다운 그 몸매 뒤척이니 / 패옥 소리 딸랑거리네 / 아름다운 강씨 집 맏딸 / 참으로 아름답고 곱도다


함께 여인과 동행을 했네 / 무궁화 꽃같이 아름답구나 / 아름다운 그 몸매 뒤척이니 / 패옥 소리 딸랑거리네 /  아름다운 강씨 집 맏딸 / 정다운 그 소리 잊지 못하리


시경에서는 여러 가지 수목과 화초가 소개되지만 무궁화 꽃만큼 아름답게 표현한 시도 드물다, 이 시는 단순히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같지만 실제인물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풍자시로서 전해진다.


시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은 문강(文姜)으로 중국 춘추시대의 강대국 제나라의 공주였다. 문강은 정나라의 태자와의 사이에서 결혼을 앞두고 혼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실망한 문강을 위로하는 그녀의 이복 오빠와의 사이에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인 제나라 희공(僖公)은 이를 좋지 못하게 여겨 그녀를 노나라의 환공에게 시집보냈고 그녀는 그곳에서 오래 살면서 자식까지 두었다.


<<시경>> <제풍> 남산(南山)은 시집간 문강을 그리워하는 제나라 양공의 서글픈 마음을 노래한 시다. 누이 문강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던 양공은 아직도 그녀를 못 잊어 누이가 시집간 큰길을 바라보는 것을 백성들이 조롱하며 풍자한 시다. 여기서 물론 숫여우는 양공을 지칭한 것으로 제 누이를 사랑한 양공을 사람에 비유하지 않고 짐승에 비유했다. 여우의 울부짖음과 같이 더욱 처량하고 구슬프게 제 짝을 찾고 있는 양공이 애처로운 모습이 선하다.


남산은 높고 높아  / 숫여우는 어슬렁거리네 / 노나라로 가는 넓고 큰길은 / 제나라 공주가 시집간 길 / 한 번 시집가면 그만인데 / 어찌 또다시 그리워할까


그런데 문강역시 그녀의 오빠를 잊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노나라의 환공(桓公)과 문강이 제나를 방문했고 당시 제나라의 왕은 선대 왕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은 그녀의 오빠 양공(襄公)이었으니 두 남녀의 애정이 다시 불붙는 기회가 오고야 말았다. 오매불망 누이를 그리던 양공은 마침 노나라 환공과 문강이 제나라를 방문한 틈에 누이 문강과 사랑을 불태웠을 뿐 만 아니라 양공은 그녀의 남편인 환공을 사람을 시켜 아예 죽여 버렸다. 아아, 사랑에 눈먼 양공이여!


환공이 죽자 노나라에서는 급히 장공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니 곧 문강의 아들이다. 장공의 늠름한 모습도

<<시경>> <제풍> 의차( 猗嗟)에 전한다.


아아 멋지네요 키가 훤칠하시네 / 넓은 이마에 아름다운 눈매 / 날쌔게  다가가 쏘기만 하면 명중이네

*의차:아아 멋지네요


문강은 남편이 그녀의 오빠에 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오빠를 그리워하며 그에게 달려간다. 아아, 사랑에 눈이 멀면 정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보다.  문강의 부도덕한 행실에 백성들은 또다시 조롱의 시를 노래한다.


<<시경>> <제풍> 재구(載軀)는 시집간 문강이 드디어 사랑하는 오빠 양공을 만나러 신나게 달려가는 밀회의 장면을 풍자한 시다.


수레 몰아 신나게  달려오네 / 대로 엮은 발에 붉은 가죽 장식하고 / 노나라 가는 넓고 큰길을 / 제나라 공주는 밤중에 떠나는구나

*재구:수레를 몰아


<<시경>> <제풍> 폐구(敝笱)는 남편이 살해당하고 난 후에도 자유롭게 오가며 염문을 뿌리고 돌아다니는 문강을 풍자한 시다. 해진 통발은 문강을 의미하고 제멋대로 드나드는 고기들은 수많은 남자들일까? 문란한 문강의 행실에 백성들은 노래로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해진 어살에 통발이라 / 고기들이 멋대로 드나드는구나 / 제나라 공주가 시집가네 / 따르는 무리들 강물과도 같아라

*폐구:해진 통발


무궁화같이 아름다운 문강의 이야기와 관련된 시가 시경에 5편이나 실려있어 전체적인 스토리를 파악하고 시를 읽으면 시를 이해하기도 쉽고 훨씬 흥미롭다. 후에 문강은 양강의 노나로 돌아가 옛 일은 잊고 노나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시경에서의 무궁화 Ⅰ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비록 중국의 시경에서 따 온 것이기는 하나 무궁화는 실로 아름다운 우리나라 꽃이며 시경의 여러 식물 중에서도 정말 아름답게 묘사한 꽃이 무궁화다.


요즈음은 무궁화도 교배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무궁화가 개발되어 시선을 끌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우리나라 무궁화에 대한 국민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국가상징으로서 무궁화는 홑꽃이 아름답다는 응답이 90.1%로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절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꽃 색의 경우 일반 꽃은 흰색과(25.4%) 빨간색을(25.1%) 선호하지만, 국가상징으로서 무궁화는 분홍색이(44.9%) 가장 아름답다고 응답했다.


산림청 보급품종 7종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는 흰색 꽃잎에 붉은 단심이 있는 백단심계 ‘원화’(41.0%)와 분홍색 꽃잎에 붉은 단심이 있는 홍단심계 ‘칠보’(21.6%)가 ‘국가상징 나라꽃’으로서의 적합성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적합성을 판단한 기준으로는 단아함, 민족 상징성, 심미성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좌로부터 백단심계 원화, 새아사달, 불새

우리나라는 근역(槿域) 혹은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가 많은 땅이라는 우리나라를 달리하여 불렀고 중국의 신화 및 지리를 다룬 산해경에 "'君子國在其北…有薰(菫)花草 朝生夕死" 라고 하여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고… 훈화초(무궁화)라는 식물이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진 남북조 시대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고금주(古今注)≫에 君子之國地方千里 多木槿花라고 하여 군자국인 한국 천리에 무궁화가 많다 하였다.


멀리 신라와 근화향으로써 무궁화 나라를 자처했고 고려는 예종 때 스스로 근향 槿鄕이라 자칭했다는 기록과 국서를 보낼 때 역시 근화향이라고 했다. 세종 때 강휘안 양회소록에 무궁화를 아홉 품계 중 9품에 올려놓았다.


이렇듯 무궁화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나무로써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자는 무궁화 꽃을 관념적으로는 사랑하나 실물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던가 혹은 무궁화가 예로부터 단 한 번도 시나 시가에 인용되지 않은 것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 아니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릇 아름답지 못한 꽃이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움은 외관에도 크게 작용하겠거니와 그밖에 역사나 이미지 그리고 다양한 정신작용에 의하여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요 또,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요 그 자체로서의 고유의 아름다움은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어서 우리 무궁화는 얼마든지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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