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의 수작거리는 더할 나위 없어 글에 생기를 불어넣고 공감을 사는 묘약이리라. 식물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할진댄 찔레꽃 순도 뜯어먹어 보지도 못하고 박주가리 열매 맛도 모르는 나로서는 언제나 추억의 빈약함에 아쉬워할 때 대추나무만은 예외여서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내가 살던 곳은 강원도 춘천시 효자3동 6통 6반이었다. 주민등록초본을 보지 않고도 내가 주소를 외울 수 있는 건 우리 동네가 유별나게 기름종이로 지붕을 덮은 기름집이며 천막집이요 아니면 오두막 같은 집이 모여 근근이 그럭저럭 사는 동네로 굳어진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대문은 있어도 없는 거나 다름없었고 엉성한 판자 울타리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훤히 엿볼 수 있어 담장을 두른 이유를 알 수없었다. 진흙으로 빚은 벽과 기름종이로 이은 지붕은 비 오면 어김없이 방 한쪽에서 빗물 새기가 일쑤였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섬돌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가느다랗고 휘어진기둥을 자칫 건드리기라도 하면 곧 지붕이 무너질까 조심했야 했다. 쥐들은 주야로 방안까지 드나들며 시끄러워 고양이가 안방까지 들어와 소동이 난 적도 다반사였다. 어느 날 3형제가 아침에 눈을 뜨니 사람들이 거니는 모습이 누운 채로 훤히 보여 괴상하다 했는데 방의 흙벽이 바깥쪽으로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잠을자고 있는 안쪽으로 무너지지 않은건 천만다행이었다. 세 집의 한가운데 엉성한 공동 변소가 있었는데 세 집의 식구를 합하면 정확히 20명이라 수요가 넘치는 아침에 일이라도 보려면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대추는 가을 단풍을 보는 듯하다 (양세훈작가)
사는 곳이 누추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마당 앞의 커다랗고 넓게 퍼진 대추나무 한 그루는 언제나 뿌듯하고 큰 자랑거리였다. 하기는 집집마다 제법 과실수가 있었은데 커다란 살구나무가 뒤뜰에 있던 살구나무집이 있었고 나의 부랄친구인 창한이네는 개복숭아와 개살구가 있어 때가 되면 시리기는 했어도 매해 한입 얻어 먹을거리는 되었다. 가을 깊어 붉게 물든 저녁노을에 뒤질쏘냐 대추알은 벌겋게 익어입맛을 다시곤 했다. 한입 베어 물면 얼얼할 정도로 단내가 입안에 맴도는 대추는 서너 개만 먹고 그만 둘 맛이 아니어서 배부르도록 먹고 나면 입언저리가 노래지니 마치 옛 중국의 진(晉) 나라에 대추가 많아 그곳에 가면 입이 노래진다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마지막 한 알 남은 대추마저 단맛을 다 빼먹고 나면 입속에 남는 건 뾰족하고 단단한 씨앗뿐이라 이것마저 아쉬워 혀로 이리저리 씨앗을 놀리며 아쉬움을 삼킨다. 한동안 씨를 물고 있노라면 입에서 침이 마르지 않는데 조선중기 이창성이 지은 의학서 <수양총서>에 이르기를 침도 몸의 진액 중의 하나라 침을 삼키면 생의(生意 생명력)가 오래도록 지속된다고 했으니 실로 대추씨도 그냥 버릴 일은 아니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섭생(병에 안 걸리고 오래 삶)을 하는 사람은 늘 대추씨를 물고 있는데 대추씨가 침을 삼키게 할 수 있고 침을 삼키기에도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대추가 익는 가을이면 대추나무에 올라가 온몸을 실어 가지를 흔든 연후에 아직 남아있는 대추를 긴 막대기로 후려쳐 수확을 한다. 대추알은 터는 입장에서는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대추를 한 알이라도 놓칠세라 양동이에 주워 담기 바쁘지만 주위에서 몇 알이라도 맛보려고 기웃거리는 동네 아이들이 한 줌씩 주워가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대추 수확의 속성이다.
l 대추가 익는 계절의 풍요로움 l
<<시경>> <빈풍> 칠월(七月)에서는 팔월의 대추나무를 노래했다. 이 시는 일종의 권농가로 조선 후기의 문인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가 떠오른다. 팔월에 대추 털고 벼를 베니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는 농부의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
유월엔 머루랑 아가위 먹고 / 칠월엔 아욱이란 콩을 삶네 / 팔월이면 대추 털고 시월이면 벼 거두네 / 이것으로 봄 술 담가 노인들 장수비네
농가월령가에서도 팔월에 밤과 대추가 여물어 아이들을 즐겁게 하니 풍요로운 농촌의 정겨운 가을을 묘사하고 있다.
팔월이라 중추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 //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세상이라 / 아람도 말리어라 철대어 쓰게 하소.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때를 맞춰 대추는 붉게 익어간다. 제사용으로 밤과 대추는 단골고객이라 '조율이시'라고 해서 대추와 밤, 배, 그리고 감을 상의 첫 줄의 서쪽에 순서대로 진설하였다. 대추와 밤은 조상을 공경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니 조상을 모시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든 농촌의 풍요로움이 그려진다. 우리 집은 다른 건 몰라도 대추만은 자급자족이어서 밤을 사 와 아버지와 껍질을 까는 것은 약간의 고통이 수반되곤 하였는데 대추는 그저 앞마당에서 주워 상에 올리면 그만이었다.
<사기>에 진(秦)ㆍ한(漢) 시대에 안기생이라고 하는 신선이 오이만 한 크기의 대추를 먹었다고 하고, 또 참외만 한 대추가 있는가 하면 대추알이 어린아이 주먹만 하다는 이야기가 있고, 조선후기 문신이며 화가인 김창업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이자 사행록인 <연행일기>에 대추가 우리나라 산품에 비해 갑절이나 크며 살이 두껍고 씨가 작다라고 한 것을 보면 토양에 따라서 꽤 큰 대추도 있었나 보다. 우리 집 대추는 그 정도는 안돼도 대추알이 큰 건 밤알 만한 것도 더러는 있어 가히 제사상에 올려볼 만하였고 몇 개만 입에 넣어도 제법 요기가 되곤 했다.
l 푸른 별 l
열매가 익기전까지 대추나무는 나뭇잎도 꽃도 열매도 온통 푸른빛이 감돈다 (양세훈작가)
추위가 가기도 전에 매화꽃 부지런히 피고 사월이면 벚꽃 피어 오월이면 진달래라, 유월 되어 대추꽃 피어난다. 칠월에 회화나무 꽃 피고 능소화는 쌩쌩하고 구월에 붉나무 꽃 피어나니 대추꽃은 다만 순서를 기다리다 피어나는 것이니 대추꽃 늦다 하여 나무랄 일 아니다. 대추꽃으로 말하자면 꽃받침 5개가 꽃잎 5개를 사뿐히 받치고 수술이 5개요 암술은 하나다. 꽃잎 전체가 너나 할 것 없이 연녹색으로 피어나니 푸르고 빤질빤질한 잎과 섞여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대추나무에 꽃이 달려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별사탕 같이 생긴 꽃은 어두운 밤에 플래시로 대추나무 가지를 비추면 영락없는 하늘에 떠있는 푸른 별이렸다 그 모습이 가히 아름답다. 우리 조상은 일찍이 수목에도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선전기 강휘안의 양화소록이 있고 조선후기에 와서 유박은 화암수록을 저술하여 원예에 관한 깊은 지식과 해박한 경험을 들려준다. 18세기 이래에는 박물학에 관심도 많았는데 이유원은 그의 <임하필기>에서 꽃이 작은 것은 열매가 좋다고 하여 대추와 오얏 종류를 그 예로 들었는데 열매가 좋다고 한 것은 아마도 그 뛰어난 영양가 많고 달달한 맛이 한 몫 했을것이다.
l 대추나무에 걸린 人心 l
또, 가을이다. 나는 가을이면 직장동료와 파주의 한적한 시골길을 걷곤 했다. 시골길의 잘 익은 감나무도 가을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이지만 나는 빨갛게 익은 대추나무를 더 좋아한다. 대추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빨간 대추를 보면 그 단맛이 저절로 혀로 전해져 한 두 알 따서 맛을 보지 않고서야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송나라에 사도(査道)라는 사람이 있어 길가에 먹음직한 대추가 있어 아랫사람이 따서 바치자 사도는 대추값을 나무 위에 걸어 놓고 떠났다고 한다. 나는 시골길에서 대추를 따 먹고 돈을 걸어 놓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대추를 터는 날,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각자 한 움큼씩 주워갈 만큼의 분량은 짐작하고 대추수확을 한 탓도 있겠거니와 대추 한 두 알 따 먹었다고 탓하지 않으리란 믿음도 작용한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