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가수 최헌의 옛 노래는 해마다 낙엽 떨어지는 선율로 가을을 알린다. 고려말 문신 이곡(李穀, 1298~1351)은 오동나무 잎 하나가 떨어지면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고 했다.
악기를 만드는 장인(匠人)은 오동나무에서 가락을 듣고, 세월을 달관한 선비는 깊어 가는 가을밤 어디서 '툭' 하고 떨어지는 오동잎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 예로부터 가래나무와 오동나무는 다른 수목들보다 잎이 가장 먼저 떨어지는 가을의 상징이었다. 선비들은 잎 떨어지는 오동나무에 가을의 쓸쓸함과 적막함을 노래하고 나이 먹은 백발의 노인은 추색(秋色)이 더할수록 덧없는 세월을 서글퍼했다. 오동나무에 저녁 비가 뿌려지거나 달이라도 걸리면 가을의 근심하는 마음은 점점 깊어만 가는 것이었다.
조선의 명기이자 시인 황진이는 그녀가 연정을 품고 있던 소세양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생략)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네"라고 하며 달빛과 오동 그리고 거문고를 아울러 노래했고, 그녀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거문고와 같은 울림은 소세양의 발길을 결국 돌려놓았다.
깊어가는 가을 밤, 오동나무(화살표)위로 화성과 달이 밝게 떠 있다.
Ⅰ마음으로 울리는 소리Ⅰ
초미금(焦尾琴)은 '꼬리가 그을린 거문고'라는 말로 후한 말의 채옹(蔡邕)이 이웃집에서 밥 지으려고 할 때 오동나무 타는 소리에 그 재목 됨을 알아보고 거문고를 만들어 곡조를 들어보니 과연 무릎을 치는 소리였다고 하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타는 나무에서 가락을 알아보는 선비의 귀도 신통하거니와 오동나무의 나무 됨을 알 만한 이야기다.
오현금(五絃琴)은 순임금이 만들었다고 하는 다섯 줄로 된 고대의 악기로 역시 오동나무를 써서 만든 악기다.
도잠이 연주하곤 했다는 무현금(無絃琴)은 마음속으로 울린다고 하는 줄 없는 거문고로 오동나무를 보고 무현금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초미금이며, 오현금이며 무현금이라, 오호라, 실로 오동나무는 쓰러져도 소리로 환생하여 심금(心琴)을 울리는 것이다.
<<시경>> <용풍> 정지방중(定之方中)의 한 구절에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성이 정남에 올 때 초궁을 만드시고 / 해로써 방향 살펴 초심도 만드셨네
개암과 밤나무 산우자 오동 가래 옻 심어 / 자란 뒤에 잘라다가 금과 슬을 만드시네
*정지방중:정성이라는 별이 하늘의 한가운데 즉 남쪽에 왔을 때를 의미한다.
이 시는 위(衛)나라 문공(文公)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이 기뻐하며 문공을 찬양하는 시다. 금과 슬은 곧 거문고이고 비파이니 나라가 번성하고 백성이 행복하니 거문고도 신이 나서 소리로 함께 즐기는 모습이다.
Ⅰ봉황이 깃들다 Ⅰ
<<시경>> <대아> 권아(卷阿)는 무성한 오동나무 가지에 상상의 새인 봉황이 앉아 울고 있는 모양을 묘사했다. 이 시는 임금이 어진 가신을 많이 등용해야 된다고 하는 경계와 찬양의 의미가 있다. 과연 초미금이요 오현금이며 무현금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오동나무에는 오색 깃털에 다섯 가지 음색을 가진 봉황이 어울리리라.
봉황들이 울어 댄다 저 높은 언덕에서 / 오동나무 자랐구나 아침 해가 솟는 곳에
오동나무 잎새들이 무성하게 우거졌네 / 봉황새 우는소리 조화롭게 들려온다
*권아:굽이진 큰 언덕을 의미한다.
봉황은 대나무열매 만을 먹으며 오직 오동나무에만 앉는다는 상상 속의 새다. 또한, 봉황은 태평성대의 시기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 진귀한 새이니 오동나무는 상서로움이 깃들여진 귀한 나무이기도 한 것이다.
Ⅰ신비한 벽오동Ⅰ
오동나무의 재질은 내부 마찰등으로 소리를 흡수하지 않고 밖으로 방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오동나무의 세포구조상 낮은 음역대에서 그 어느 나무보다도 나지막하고 은은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봉황이 깃든다는 나무는 사실은 오동나무가 아니라 벽오동나무이다. 중국인은 아마도 벽오동나무를 오동나무라고 일컬었을 것이다. 벽오동나무는 봉황이 상상 속의 새인만큼 여러 면에서 매우 특이한데 푸른 나무색이 그렇고, 꽃이 피는 것과 열매를 맺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벽오동(碧梧桐) 나무의 푸른색은 바다를 보는 듯 그 질감이 남다르다. 벽오동의 꽃은 원뿔 모양으로 가지에 꽃이 피는데 꽃잎은 없고 수꽃과 암꽃이 별개로 한 나무에서 피어난다. 수꽃의 수술은 여러 개의 수술이 하나의 기둥과도 같이 뭉쳐 꽃의 중앙에서 솟아 나와 끝에 꽃밥 덩어리를 이룬다. 암술 또한 짧은 수술대 위에 호리병 같은 암술이 올라 않은 우아하고도 특이한 모습이다. 씨앗을 감싸고 있는 꼬투리는 본디 익으면 비로소 벌어지는 것이나 벽오동은 꼬투리가 익기도 전에 벌어져 꼬투리에 매달린 씨앗을 미리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오동나무는 현삼과 식물로서 벽오동나무는 벽오동과의 독립된 식물의 그룹을 가지고 있다. 한편 개오동나무는 능소화과의 식물로서 오동이라는 말을 각기 가지고 있으나 그 성질은 각각 다르다. 벽오동나무는 동덕여자대학교 율동기념관 앞과 신당동의 박정희 생가,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의 경내에 몇 그루씩 심어져 있다. 필자도 나무의 수피가 푸르다는 말에 의심이 가고 신기하여 애써 두루 찾아본 기억이 새롭다.
꼬투리가 익기 전에 벌어진 벽오동과 익은 후 벌어지는 모감주나무 꼬투리 비교(좌), 좌로부터 오동나무, 푸른색의 벽오동, 개오동의 수피(중), 시계방향 오동, 개오동,벽오동(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오동나무는 베어진들 악기가 되어 심금을 울리는 가락으로 환생한다. 맹자는 가래나무와 오동나무를 사람이 가꾸려고 하면 기를 줄 알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것은 모른다고 질책했다.
고요한 밤, 오동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북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 연보라로 피는 꽃은 지나친 아름다움을 감추려는 듯 살며시 고개를 숙인다. 나도 집 앞에 뜰이 있다면 한 그루의 오동나무를 심고 싶다. 맹자의 말씀을 따를 수 없겠으나 혹시나 상서로운 일이라도 생길까 기다려 볼 일이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 오동나무 가지 위에 걸린 달구경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