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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Dec 31. 2022

백성들이 사랑한 팥배나무



팥배나무의 하얀 꽃은 배꽃을 닮고 열매는 팥을 닮았다.  5월에 활짝 개화하여  짙은 향기 날리는 흰 꽃은  흥취를 감당치 못하도록 시리고 아름답다. 그리하여 하얀 팥배나무 꽃이 질 때면 봄이 감을 아쉬워하며 서글퍼지는 것이다. 가을에 빨갛게 익는 열매는 새들에겐 왕후의 식탁이요 사람에겐 불이 난 듯 볼거리다. 열매는 가을을 지나 겨우내 새들을 불러 모은다. 꽃 지고 잎 떨어지면 붉은 열매만이 주렁주렁 매달려 새들은 즐겁게 열매를 취한다. 추운 삭풍에도 열매는 싱싱함을 자랑하고 내리는 눈은 열매를 기특히 여기어 포근히 감싼다. 서울 봉산에는 보기 드문 팥배나무 군락지가 있어 계절을 가리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싹을 틀 준비를 하고 있는 팥배나무의 겨울눈(좌), 팥배나무 열매의 개똥지빠귀(중), 흰 눈이 팥배나무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하)


시시비비를 가리다


일본에서는 팥배나무를 저울눈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잎의 가운데를 세로로 지나는 가운데 잎맥인 주맥의 좌우에 옆으로 난 잎맥인 측맥의 간격과 모양이 다름이 없어 붙여진 이름이다. 팥배나무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주나라 초기의 재상 소공은 공정한 판결을 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항상 팥배나무 아래에서 현명한 판결을 하여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백성들은 소공을 공경하여 소공이 즐겨 않았던 팥배나무를 귀중히 여겼다. 감당지애(甘棠之愛)라는 말은 이렇게 생긴 말이니 곧 어진 관리를 백성이 믿고 사랑한다는 말이 되었다. 공정이란 글자로 씌어진 것도 아니요 위정자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말도 아니니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신봉하는 가치는 공정인 듯하다. 


<<시경>> <소남>의 甘棠(감당)은 백성들이 이러한 소백을 예찬한 시다.


우거진 감당나무 자르지도 베지도 마세요 / 소백님이 멈추셨던 곳입니다 / 우거진 감당나무 자르거나 꺽지도 마세요 / 소백님이 쉬셨던 곳이어요/ 우거진 감당나무 자르지도 휘지도 마세요 / 소백님이 머무셨던 곳입니다.

*감당:팥배나무


감당나무는 팥배나무를 뜻하고 소백은 곧 소공이다. 팥배나무의 잎맥은 공정의 의미인가 좌우로 자로 잰 듯 간격과 길이가 차이가 없다.  팥배나무의 수피(나무껍질)에도 공정을 기하려는 듯 매섭게 노려보는 눈동자 모양의 가지가 잘려나간 자국이 뚜렷하다. 우리 사회에 공정이라는 낱말은 허공에 유령과 같이 떠돌고 있다. 상인이 저울을 속이지 않듯 공정한 저울의 추가 작동하는 세상은 언제나 올까? 

팥배나무의 주맥 좌우의 측맥은 폭과 길이가 일정하다(좌), 팥배나무 스피에 난 눈동자 자국 (우)


서울 봉산의 팥배나무


서울 봉산의 팥배나무 군락지는 2007년에 멋진 팥배나무 숲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봉산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봉산에는 군락지 외에도 산 곳곳에 팥배나무가 식재되어 봄이면 만개한 꽃의 흰 산이요 가을이면 팥배나무 열매의 붉은 산으로 변한다. 겨울이면 텃새인 직박구리를 비롯하여 겨울철새인 개똥지빠귀 등이 팥배나무 열매를 즐겨 찾는다. 오색딱따구리를 비롯한 다섯 종류의 딱따구리는 이곳의  단골손님이다. 팥배나무 군락지에서는 데크로 된 길을 따라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팥배나무의 사계절을 느껴 볼 수 있다. 팥배나무 군락지에서 10분 거리 이내에는 드넓은 편백나무 숲에 조성된 무장애숲길이 있어 연계하여 좋은 힐링코스로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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