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라토너 거북 맘 May 03. 2023

가끔은 게코처럼

쉽게 포기하고 놓아 버리는 당신에게

'어쭈, 감히 내 차에 무임승차 하셨겠다?'

'그렇게는 안되지, 혼 좀 나 봐라 요 녀석.'


아이들 학교에 픽업을 가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차 보닛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게코(Gecko) 한 마리가 보인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게코는

이곳 사이판에서는 풀숲이나 야외는 물론이고 가정집이나 호텔 등 실내에서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녀석이다.

창문이나 현관문의 좁은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기도 하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잠깐 사이에 호로록 집안으로 들어오는 녀석인지라

아파트나 주택 할 것 없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게코를 집안에 들이지 않을 방법이 없다.


'도마뱀붙이'라고도 불리는 이 녀석을, 처음 집 안 화장실에서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란...

특히나 파충류는 치를 떨고 질색하며 혐오하는 수준인 나는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뱀새끼가 집안에 들어온 거냐며 흥분을 넘어 길길이 뛰며 광분했었다.


게코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처음만큼 충격적이거나 공포스럽진 않았지만

설거지나 샤워하는 동안 무심코 쳐다본 벽이나

심지어 자려고 침대에 누워 올려다본 천정에서도

어디든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코 녀석과 항상 마주하게 되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나고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짝짝! 퍽퍽퍽!

"이 녀석이 정말, 죽어라 청소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무 데나 응가를 싸고 다녀?"

안 그래도 거슬리는 녀석인데, 창틀이며 집안 구석구석 심지어 가전제품이나 가구 위에도

작고 까만, 동글동글한 응가를 싸질러 놓고 다니는 게코를

눈에 띄기만 하면 파리채를 들고 쫓아다니며 응징을 했다.

"거 참, 걔들도 살게 놔둬. 해로운 애들도 아니고 오히려 모기나 거미 같은 곤충들을 잡아먹는 녀석들인데..."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파리채를 휘둘러 게코 한 녀석을 처단한 후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는 나를 보며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건 아는데, 집안 곳곳에 저 까맣고 동글동글한 응가를 싸질러 놓질 않나,

게다가 한 밤중에 껙껙 거리며 시끄럽게 울어대기까지... 좌우지간 내 눈에 띄기만 해 봐."

아까 파리채에 맞았을 때 잘려나간 게코 녀석의 꼬리가 여전히 혼자서 꿈틀거리는 걸 보면서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녀석의 꿈틀대는 꼬리를 휴지통에 버리며 씩씩 거린다.


좌우지간 집안에서 게코만 봤다 하면 끝까지 쫓아가서 응징을 하는 나인데

떡하니 내 차위에 널브러져 있는 녀석을 보니 슬슬 심술궂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너 오늘 잘 걸렸다.'


차 시동을 걸고 슬슬 출발하자, 녀석이 긴장했는지 자세를 바로잡고 발바닥에 힘을 잔뜩 주는 듯 보인다.

게코의 발바닥에는 미세한 섬모 같은 게 달려있고 

발은 발가락 끝쪽으로 갈수록 요철이 심해지는데, 여기에 섬모가 있으며

이것이 빨판 역할을 하면서 천정이나 벽에 붙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게코 발바닥의 이러한 특징을 응용한, 벽에서도 이동이 가능한 로봇도 개발되었다고 하니

악착같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건, 녀석들의 최대 장기이자 타고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호,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조금씩 좌우로 거칠게 차를 몰아본다.

그런데 녀석은, 발바닥에 강력 접착제라도 바른 듯 미동도 없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번엔 일부러 움푹 파인 도로가 있는 쪽으로 차를 몰아본다.

제법 큰 충격으로 차가 덜컹거렸음에도

이 녀석은 여유 있게 방향까지 틀어가며 자세를 굳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네가 못 버틸 거다, 잘 가라 이 녀석아.'

이번엔 속도를 확 높여서 한동안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본다.

빠른 속도와 강한 바람에 여지없이 휙 날아가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사력을 다해 보닛 위에서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녀석을 보내버리려는 나와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버티는 녀석과의 대결이 이어졌고

이윽고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You win! 인정한다, 이 녀석아!'

여전히 보닛 위에 악착같이 찰싹 붙어있는 녀석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나의 패배를 인정했다.


"인생 뭐 있냐,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고 그까짓 거 쉽게 쉽게 대충 살면 되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복잡하고 힘든 삶에 이리저리 치이던 사람들이

어차피 한 번 죽으면 끝인 인생인데 굳이 악착같이 살아서 뭐 하겠느냐며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니 적당히 살자고

스스로 합리화할 때 종종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게다.


하지만, 요즘 들어 너무 쉽게 자신의 꿈이나 삶을 놓아버리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꼰대스러운 마인드로 "나 때는 말이야..."를 들먹이며

과거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어렵고 힘들었으며 살기가 팍팍했는지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얼마나 편하고 풍족한 세상이냐며 비교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만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포기해 버리고

스트레스와 갈등 같은 내적 어려움에 부딪치고 시달리게 되면

너무 쉽게 삶을 놓아버리거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게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싶다.


우리도 가끔은, 게코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내는 강인함.

위급한 상황 때문에 몸의 일부인 꼬리까지 자르고 도망갔지만 다시 재생시키는 회복력과 생명력.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위기와 어려움을 견디고 버텨내는 훈련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에게도 게코의 발바닥에 있는 미세하고 끈끈한 섬모들이 하나둘씩 자라지 않을까?


미끌거리는 벽이나 천장에서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자동차 위에서도

결코 발바닥의 힘을 풀고 포기하거나 놓지 않는 게코의 근성을 배우고 싶은 요즘이다.

특히나 마라톤에 푹 빠진 내게

장거리 훈련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레이스 도중

수도 없이 드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생각들..

끈질기게 버티는 게코의 악착같은 발바닥이 필요한 요즘이다.


가끔은 게코처럼,

견뎌내 보자, 버텨보자! Hang in there!

아자아자!

작가의 이전글 엄니의 변신은 무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