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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Nov 05. 2022

그녀의 웃음소리

일상 이야기

"아, 진짜... 꼭 저렇게까지 웃어야 되나."

"아니,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가 있지?"

"내 평생, 저렇게 웃어 볼 일이 있을까?"


아이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종종 함께 들러서 점심을 해결하곤 하는 단골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식당 중앙에 있는 큰 테이블에는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한 무리의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곳 사이판 원주민들로 이루어진 그 그룹

한눈에 봐도 관공서의 어느 부서에서

단체 모임을 위해 나온 것처럼 보였다.


중요하고 진지한 자리는 아니었는지

다들 웃으며 농담도 주고받는 가벼운 분위기였고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중 한 여자가 계속 아주 희한한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그녀의 웃음소리는

무척이나 이상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했으며

민망하다 못해 꽤 불편함이 느껴지는,

한마디로 아주 거슬리는 소음이었다!


적당히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리였다면 그나마 참을만했겠지만

정말 뭔 약이라도 잘못 먹은 듯 끊임없이,

목젖까지 보여가며 목청껏 미친 듯이 깔깔대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정말이지 참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저 여자는 뭐가 저리 재미날까.'


'나, 당신 웃음소리 듣기 싫고 거슬리거든?

그리고 여기 공공장소니까 좀 적당히 하고 소리 좀 줄이는 게 어때?'라는 의미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틈틈이 쳐다보며 나름의 사인을 보냈지만...


애초에 그런 걸 고려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장소에서 저렇게 웃지는 않았겠지 싶어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핸드폰만 열심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뭐랄까... 저런 기세로 웃고 나면 모르긴 해도,

나중에 오장육부 중 어느 한 곳이 뒤집어져 있거나

제 자리를 벗어나 이탈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족히 3옥타브는 넘고도 남는 날카롭다 못해 간드러진 고음에,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거나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어간 것 마냥

헐떡거리며 깔깔대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못 낼 수준과 경지의 것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내 웃음소리 어때?"


저녁에 퇴근한 신랑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뜬금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한 마디 하는 신랑.

"당신이 소리 내서 웃은 적이 있던가?"

"당신, 잘 안 웃잖아. 그냥 살짝 웃다가 마는 정도 아니었나?'


헐...

나도 내가 그다지 웃음이 많지 않은 스타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종종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이미지를

차갑고 쌀쌀맞으며 (솔직한 표현으로는 '재수 없어 보이는')

쉽게 다가가기 힘든 캐릭터로 본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지만

20년을 같이 산 남편도 내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는 데에는

'이건, 내가 뭔가 잘못된 건가' 싶은 걱정마저 들었다.


박장대소, 파안대소...

'손뼉을 치며 입을 벌리고 소리 내서 즐거운 표정으로 한바탕 크게 웃는다'라는 뜻이란다.

비슷한 표현을 영어로 한다면

laugh, crack up 정도가 떠오르는데

특히, crack up 같은 경우는 요즘 많이 쓰는 '빵 터지다'라는 표현과도 통한다.

"You cracked me up!"이라고 하면 '너 때문에 빵 터졌어!"라고 해석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아니, 얼마나 웃겼으면 몸이 갈라지고 금이 갈 만큼(crack) 웃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웃음들 보다 잔잔하고 조용한

'미소'나 '썩소'가 나에겐 좀 더 익숙하고 편하게 다가온다.

소리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다는 뜻의 '미소'

한쪽 입가만 올려 씁쓸하게 짓는 미소라는 '썩소'

하지만, '미소'와 '썩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아주 큰 차이를 느끼게 한다.


'미소'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잔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에 비해 요즘 아이들이 '썩은 미소'라고도 표현하는 '썩소'는

좋은 의미보다는 약간 부정적이고 비아냥거림이 느껴지는 웃음이다.


어차피, 파안대소나 박장대소 쪽의 웃음과는 거리가 먼 나는

그렇다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여자인가

아니면 주로 재수 없게,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썩소'를 날리는 아줌마인가.

이건, 나 자신이 평가하기보다는 아마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정확하게 판단해 줄 것 같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그녀의 웃음소리' 덕분에

본의 아니게, 존재감 없는 '나의 웃음'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당최 어떤 근거가 바탕이 된 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쩌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내재된 꼰대 마인드나 보수적인 기질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내 기준에서 볼 때 오늘 '그녀의 웃음소리'는

아주 상스럽고 못 배워먹은 천박한 류의 사람들이 하는 질 낮은 행동 중 하나였다.

모름지기, 교양 있고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감정을 팍팍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자제하고 조절해야 하거늘...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안다. 내 나름의 기준이라는 것이 때로는 우리 사회의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는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오만한 생각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해한다. 때로는 주변의 시선이나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온전히 솔직하게 표현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 나를 '꼰대'라고 부른다고 해도 할 말 없고

'유교 걸'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난해도 부정하진 않겠다.


다만, 고작 '웃음소리' 하나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재단하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충고한다면

그 부분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상대방의 말투나 눈빛, 표정, 심지어는 식사를 하는 모습으로도

개인의 성격이나 평소 습관 등을 알 수가 있다고 하는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기쁘거나

참을 수 없을 만큼 우스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을 때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나 웃음소리 등은

제법 근사치에 가깝게 개인의 성향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웃음소리가

각자의 역할이나 캐릭터를 나타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눈처럼 하얀 얼굴의, 천사처럼 착한 백설공주가

마녀의 표독스럽고 앙칼진 목소리로 깔깔 거리며 웃는다고 상상해보라.

'웃음소리'에도 성격이 묻어난다는 말이 아주 틀린 주장은 아닐 것이다.


나의 감정을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공공장소에서는 적당히 자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해야 할 행동인가.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당신의 웃음소리는 어떤가.

오래된 가요의 가사처럼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그런 남자 혹은 여자인가?

아니면,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 마애 삼존불상'처럼

조용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참 내, 별로 웃을 일도 아니구먼... 뭘 그렇게...' 하면서

'미소'도 '박장대소'도 아닌 어중간한 '썩소'를 날리는 쪽인가?



언젠가, 어느 대형병원에서 '웃음 치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울증이나 강박증 같은 심리적인 질환 외에도

환자들의 신체적인 통증을 줄여주고

증상의 완화와 치료, 회복에 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는 현장을 취재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화면 속의 환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정말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깔깔거리면서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내 느낌은, 그 장면이 다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게 사실이다.


'저렇게 억지로 웃는 게, 뭐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저렇게 까지...?"

'하다 하다 이제는 웃는 것도 연습해야 되는 건가?'


그런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대답이라도 하듯

한 환자의 인터뷰 내용이 내 마음에 살짝 와닿았다.


"웬걸요~ 처음엔 저도 무지하게 어색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노력이라도 해보자 싶어서

 억지로 크게 소리 내서 웃으며 손뼉 치고 하다 보니까

신기하게도 안 좋았던 수치들이 많이 호전되는 게 보였고요,

무엇보다 예전에 비해 훨씬 즐겁고 밝아졌어요."

"즐겁고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까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 같아요."


동양 사람, 특히나 한국, 중국 사람들이 유난히 웃음에 인색하다고 한다.

'아니, 이 사람이... 나를 언제 봤다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초면에도 반색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을 날리는 서양 사람들의 눈엔

당최, 화가 난 건지 기분이 나쁜 건지 알 수가 없는,

무표정하고 심각해 보이는 동양 사람들의 얼굴이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함부로 실실 거리며 웃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가볍고 실없는 사람이 된다.


'웃음과 미소' 만큼 사람을 무장해재 시키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아직은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내적인 갈등과 혼선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노력이라도 해보자 싶어

어색한 표정으로 혼자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크게 벌리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용기백배하여  소심하게 하하하~ 소리 내어 웃어본다.


우연히, 웃음 연습 중인 나와 눈이 마주친 큰 녀석이

'우리 엄마가 혼자서 왜 저러나' 싶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집사야, 오늘 뭐 잘못 먹었냥?' 

냥이 녀석들도 빼꼼히 나를 쳐다보며 어이없어하는 듯하다.

그냥 하던 대로 해야지, 안 하던 짓 하려니 힘들어 못해먹겠다.


낮에 들었던 그녀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밤이다.

"쟤 왜 저래? 집사야 뭐 잘못 먹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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