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혼불, 산자고

뻐꾹새가 날아와 이 산 저 산을 넘나들며 꿈결 속에 잠든 꽃들을 깨운다. 뻐꾹, 뻐꾹 어서 일어나라, 봄이 왔다고 노래한다. 그 노래에 화답하듯, 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양팔을 활짝 벌리고 봄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작은 백합화. 백의민족의 혼처럼 단아한 자태로, 순결한 마음으로, 햇살을 가슴 가득 품는다.

119-산자고.jpg 산자고



봄날의 오름 자락, 바람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겸손히 엎드려 꽃의 세계를 열어가는 산자고. 낮은 자세로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그 작은 꽃잎 속에는 은은한 꿈결 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흔들리며 하늘을 껴안는 순결한 야생화. 겨우내 깊이 참아온 기다림 끝에 마침내 부활하는 생명. 양지바른 풀밭에서 야무지게 뿌리를 내리고 순백의 혼불처럼 타오른다.


가느다란 잎 사이로 꽃대를 세우고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는 듯한 꽃. 바람에 나부끼는 무명옷 한 벌 걸치고 이 땅 위에 다시 태어난 산자고. 그 모습이 마치 눈물겹도록 뜨겁게 외쳤던 대한독립만세의 메아리 같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때로는 어깨를 맞대고 함께 피어나 이 산과 저 산, 우리 강산을 지키듯 서 있다. 그 모습 그대로, 우리는 이 땅을, 우리의 하늘과 바다를 지켜가고 있는 것일까. 겨우내 깊이 참아온 시간, 이제 따스한 햇살 속에 피어나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봄꽃들에게 조용히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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