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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Oct 03. 2022

닭치는 시 어머니

소 제목   하루 두 번씩 닭을 운동시킨 까닭은?


우리 동네 맛집으로 소문난 닭백숙집을 방문했.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벌써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고 있었다. 녹두, 마늘, 대추 넣은  닭백숙에  놀짱놀짱하게 눌린 찹쌀 누룽지가 덮여 한 상 차려왔다.

누룽지가 죽처럼 퍼져 있어도 득쫀득한 식감이 고소했고, 거기다가 작은 녹두가  입안에 퍼지면서  한층 맛이 더 졌다.




봄만 되면 우리 시어머니는 시장에서 갓 부화한  병아리를 사 오셨다 솜털같이 부드럽던 날개가 어느덧 쭈빗쭈빗 자라나 틈만 나면  부리로 상추밭을 헤쳐 놓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꼭 아침, 점심으로  한 번씩 닭장에 가두었던 닭을  마당에 풀어놓았다.

작은 닭장에서 움직임이 부족한 닭들을 운동시키는 시간이었다.  이웃집에 마실 가셨다가  시간이 좀 늦으면  "아이고 어쩌끄나 닭장이 뜨근뜨근 해서 보타 죽게 생겼다" 하시며 닭장 문을 열어젖혔다.



자유 몸이 된 닭들은 쪼르르 샘가로 달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보고, 땅바닥 긁어대며 모이도 주워 먹고 여기저기 다니며 똥도 퍼질러 놓았. 자기네들끼리 싸우다가  대문 밖으로 멋모르고 나간 닭은 이웃집 개에게 쫓겨서 꼬꼬댁 소리 지르며 적막했던 골목길을 깨우며 퍼드득 거리며 들어왔다.  두어 시간 정도 풀어놓았다가  다시 닭장에 가둘 때는 꾸꾸 꾸구 구구 부르며  모이를 닭장에  살살 뿌려주면 한 놈이 다름 질 치고 달려오면 너도 나도 앞 다투어 달려와서 스스로 닭장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난 후에는  뜰방, 마당에  퍼질러 놓은 닭똥을  치우기 시작했다. 부지런하셔서  하루에 두 번씩 꼭 이 예식을 치르셨다.




늦은 봄, 햇살이 뉘엿뉘엿 지고 어느새  초 여름이 돌아오자 엉덩이에 살이 붙어 뒤뚱뒤뚱 걷는 닭들  보면서, 어머니께서는  자식들 모이는 휴가  날수를 세 계셨다.

 이 안 차시는지  모이를 한 줌 더 여기저기  닭들이 요즘 살이 안 오르고 삐쩍 말라간다고  걱정하셨다.

여름휴가 철이 되면 여기저기 흩어져 살았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엉덩이에 살이 올라 팡파짐해진 닭들을 눈여겨보시다가  마침내 우리들의 밥상에 찹쌀과 마늘을 넣고 푹 고은 뽀얀 백숙이 여름철 휴가 보양식으로  올라왔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한 그릇씩 먹었다.




여름철 소낙비가 쫙 내리는 날이면 기와지붕에서 흘러내린 물받이 함석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받쳐놓은 양동이에 이 하나 가득 차면  그동안 마루 밑에 쌓인 먼지를 몇 번이고 물을 퍼부어 씻어 내렸다. 간지대에 빗자루를 매달고 서까래에 쳐진 거미줄도 치웠다.

집안을 다 치우고 난 후 꼭 통닭을 주문해서 온 식구가 모여서 한 자리에서 먹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며 "니기들이나 배불리 묵어라" 하시며 사양하셨다. 

원래 어머님은 통닭을 잘 드시지 않아서   우리끼리 맛있게  뜯어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이 많아서 남겨놓은 통닭을  너무나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마음이 상하시거나 화가 나실 때도 전이나 튀김을 해드리면,  금방 풀어지셨다고  형님께 미리 사전 정보를 들었건만 역시 나는 눈치 없는 막내며느리였다.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할 때쯤이면 벌써 식용유를 깡통으로 사 오셨다.

그 시절에는 튀김가루가 나오지 않았던 때라 주조장에서 막걸리 한통 가지고 와서 밀가루에  술을 넣고 충 저어서 튀김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햇감자  툼벙 툼벙 썰어서 튀김옷을 입히고 바구니에  하나 가득 튀겨 놓았다. 

튀김 반죽하고 남은 막걸리로  들에 나가시는 분들에게 목 축이고 가시라며 대문간에 상을   놓았다.




아침 열 시부터 시작한 튀김이나 전이 거의 오후 다섯 시 정도 되어야 끝이 났다.

텃밭에서 채취한 솔이 이제 다 소진이 되었다.  런데 옆집에서  애호박, 솔, 한 소쿠리 베어오 또다시 적 감을 반죽하셨다.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하루 종일 전을 부쳐댔다.

바구니 허리춤에 끼고  밭에 가시던 이웃 어르신들이 평상에 앉아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식들 끔찍하게 생각하며 살았는데 영감님 돌아가시고 나니 그래도 자식보다 영감님이 좋았다고 하신다.  며칠 동안 고추 밭에 못 가셨는데 풀이 소복해서  누가 지나가다 게을러빠진 주인이라고 손가락질할 것 같다. 푸념하시고  술 한잔 감자튀김과 전을 찢어서 드시고 일어섰다.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전과 튀김으로 안주 삼아 술 한잔 하시다가  들로  나가셨다.




골목에서 꼬순내를 풍겼는데 안 드신 이웃분들께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고 하시며  몇 장 더 부치라고 하셨다.   

파란색 시장바구니 챙기시더니 전과 튀김을 넣고  나가시는 발걸음이 날렵하시기도 했다.

시어머니 살아생전에는 성질 급하시일도 자주 벌려서  흉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시어머니처럼 일단 부지런하지 못해서   에게 베푸는 삶을 살지 못했다.

일 못한 며느리 흉 잡히지 않게 하시려고 부엌에서  밑반찬이나 김치를 담그실 때 이웃들이 찾아오  뒤문으로 나오셨다. 뒤꼍 텃밭에서 나오신 척 손을 치맛자락에 훌훌 털고 "아이고 어서 오게 어서 오게"  하시며 손을 내밀었다.




철없는 며느리가 버릇없고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많았지만 절대로 아들 앞에 며느리 흉본 적이 없으셨던 분이셨. 크리스마스 행사로 분주하던 그 해 겨울  어머니께서는 이 세상 소풍 끝내시고 천국으로 가셨다.


살아생전에 우리들에게  " 형제들과  우애하며 살아라"라고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서 맴돈다.



* 솔(부추)

*꼬순내(고소한 냄새)

*니기들(너희들)


시어머니 # 닭백숙 # 운동 #막걸리# 튀김

#전 # 소낙비 #기와지붕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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