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먹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에는. 최고 간식이 굴속에 저장해놓은 고구마나 무였다.
저녁밥 먹기 전 꺼내서 마루에 두었다가 배가 출출할 때. 야식으로 먹었다
주로 삶아서 먹었지만 때로는 추운 겨울에 살짝 얼어있는 고구마를 깎아 먹으면 시원하고 아삭아삭 하니 달고 맛있었다. 고구마, 무 껍질은 이튿날 쇠죽 끓일 때 넣어서 같이 끓였다. 생고구마도 가끔 쇠죽 끓이고 난 뒤에 부삭에 묻어두면 군고구마로 다른 맛을 볼 수 있었다. 치아가 성치 않으신 할머니께서는 무을 반으로 갈라서 다라진 놋수저로 박박 긁어서 드셨다.
제비새끼처럼 앉자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도 한수저씩 박박 긁어서 입에 넣어주셨다.
입가에 단물이 줄줄 흐르면 손등으로 씩 닦으며 먹었던 무맛이 배보다 더 시원하고 달고 맛났다.
무밥은 어른들이 좋아하셨다.
옛날에는 주로 뒤곁이나 집 가까운곳에 굴을 팠다. 우리 집은 감나무 밭에 굴을 파서 볏단으로 짚을 엮어서 씌워두고 무를 보관했다. 미리 꺼내서 깨끗하게 씻은 무를 도장에서 가져오느라 새벽 찬 공기가 훅 들어왔다. 간밤에 발로 찬 이불을 머리끝까지 끄집어 당기며 찬 바람을 막았다.
이른 새벽에 할머니와 어머니의 칼질 소리가 음을 맞추듯 일정하게 또닥또닥 들렸다. 새파란 무 머리는 한입씩 먹기 좋게 잘라 놓으면 이미 잠이 깬 우리들은 눈 비비고 일어나서 생무를 와작 와작 씹어 먹었다.
동치미 채로 썰고 삭힌 고추 쫑쫑 썰어서 양념장 만들어서 무밥에 넣고 참기름 한 방울치고 비벼서 맛있게들 드셨다. 무밥 누룽지도 물 부어서 솔갱이 몇 개 부삭에 쳐 넣고 들어오면 숭늉이 되었다.
비벼 먹었던 대접에 숭늉을 붓고 훌훌 숟가락으로 저어가며 어~ 시원하다 하시며 잘도 드셨다.
김장김치가 어느 정도 익어갈 때쯤 밥상에 몇 가닥씩 남은 김치를 모아두었다가 식은 밥 넣어서 김치죽도 끓여서 드셨다. 뜨거운데도 시원하다 소리를 연발하시며 숟가락으로 후후 저어가며 맛나게 드셨다.
점심때 쪄서 남은 고구마도 긴긴밤 배가 출출할 때 무 깍둑 깍둑 썰은 동치미 양푼에 숟가락 몇 개 넣어오면 돌아가면서 한 수저 씩 고구마랑 먹었다.
지금은 핸드폰만 연결하면 먹고 싶은 음식이 현관까지 배달되지만 옛날에는 부모님이 수고해야 먹을 수 있었다. 편리한 시대에 무엇이든 빠른 시간에 원하는 것은 다 입맛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편리함과 빠름이 기다릴 줄 모르는 시대가 되었고 조금만 배달이 늦어도 전화로 독촉하기 일쑤다.
티브이에서도 온통 먹방이다. 기름에서 갓 튀겨서 건져 올린 닭다리, 라면도 뽀글뽀글 거린다. 유명 연예인들이 화려하거나 겸손한 식재료로 예술을 담아서 우리 집 거실로 차려내 온다. 요즘 표현으로 티브이를 찢고 나온다. 밤은 깊어가는데 남편이 한마디 한다 앗따! 맛나것네 뭐 먹을 거 없는가?
이때부터 우리는 또 뱃살 들먹이며 토닥토닥 거린다.
오토바이 소리가 가깝게 들리더니 우리 집 앞에서 멈춘다. 아마 이웃집에서 야식을 주문했나 보다.
또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우리도 냉장고에 있는 무라도 꺼내서 단물 줄줄 흐르는 먹방 해볼까? 그런데 닳아진 놋수저 대신 뭘로 긁어서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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