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 여인의 장가 이슈.
백단은 헛기침을 몇 번 뱉어내고는 지우의 눈치를 살폈다. 흡사 도인의 고결함이 담긴 것 같은 하얗게 센 머리와는 다르게 개구진 표정을 지었다.
“아들과 대화하려는 아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셈이냐?”
“제가 아버지께 하루 이틀 당했습니까? 작년 겨울에도 저에게 ‘우리 지우 춥지?’ 하시더니,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손에 쥘 수 있는 주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제가 고추씨와 숯가루, 철가루를 섞어 면포에 감싼 뒤 흔들면 열이 오르는 주머니를 만들었더니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손난로’이라 이름 붙여 시장에 가져가 파셨지요? 그 뒤로 백 개를 더 만들었고요.”
“네가 그걸 만들어 팔아 우리 가족이 겨울에 굶어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지 않으냐. 결국, 네게도 좋은 일 아니었더냐?”
“숯가루를 하도 들이마셔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코가 간지럽습니다.”
지우는 코 평수를 벌름거리며 손으로 코를 문댔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입니까?”
“내일 몸이 좀 괜찮거든 청계천 옆에 사는 정씨를 찾아가라.”
“정씨면 화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다.”
“무슨 일로요?”
“네 초상화를 그리려 한다.”
“네? 벌써 제 영정을 그려놓으시게요? 저 어디 팔려가나요?”
지우는 백단의 꿍꿍이가 궁금해 되물었다.
“너를 팔다니. 우리 집 기둥을.”
지우는 문을 열고 밥상을 들여오는 끝명의 밥상을 제가 받아들면서 말했다.
“어디에 쓰시게요?”
끝명은 국에 밥을 만 그릇을 안고 들어와 지우의 뒤에 앉아 백단이 수저를 들기만 기다렸다.
“끝명아. 같이 상에 올리서 먹어도 된대도.”
“아니어요. 어디. 이렇게 방에서 같이 먹자 하신 것만도 감사해요.”
지우는 도현에게 받은 옷을 끝명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명이가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뭐든 다 해주고 싶은 지우다. 백단은 국그릇을 들어 후루룩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너도 장가를 가야지.”
"풋."
지우는 씹던 쌀을 후두둑 밥상 위에 뿌리고 말았다.
“네가 이럴 줄 알고 내가 국 먼저 다 마신 게다.”
백단은 깨끗이 비운 국그릇을 밥상 위에 놓으며 뿌듯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장... 가요?”
끝명이도 놀라서 뜨던 수저를 멈추었다.
“그럼 시집이더냐? 도현에게 시집이라도 갈 요량이야?”
“도현이도, 시집도 가당치 않지만. 장가라뇨?"
“곧 죽을 처자가 있는데 죽고 나서도 너를 내치지 않고 보살펴주기로 그 집안 사람들하고 약조를 하였다. 일종의 액막이인 셈이지. 그리고 네 형도 관직을 받을 수 있도록 천거해 주신다고 했고 말이다. 처자가 죽을 때까지만 안 들키고 버티면 될 것이야. 남편의 도리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니 걱정말거라.”
“저 말고 형님을 보내지 그러세요. 어차피 형님을 위한 자리라면 형을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평생 놀고 먹을 생각밖에 없는 형님에게 딱이네요.”
지우의 눈에 눈물이 일렁였다.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다. 섭섭함 따위 때문에 울고 싶지 않았다. 더 큰 일들도 울지 않고 버텼다.
어찌 저와 의논하나 없이 혼사를 결정했단 말인가. 혼인은 부모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미 뒤틀려버린 인생을 어찌 더 꼬아버린단 말인가.
“형님이 성균관에 있은 지가 몇 해입니까? 벌써 사계절을 여섯 번이나 거기서 보내고 있는데도 아직 과거를 볼 생각도 안 하고 시답잖은 대장 놀이나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학비며.”
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네 살 위인 성우가 성균관 앞 단골 주막에서 지금 청나라 돈을 사놓으면 나중에 그 가치가 몇 배나 오를 거라는 말을 듣고 돈을 백냥이나 빌려서 청나라 돈을 샀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후에 그 돈은 청나라 돈이 아니라 비슷하게 만든 가짜 돈이었음이 밝혀져 관아에서 성우를 빼내 오느라 지우가 애를 먹었음도 말하지 않았다.
성우를 꼬드긴 자는 돈을 빌려준 차용증만 내밀고 성우가 가진 청나라 돈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잡아뗐었다.
조금이나마 모아두었던 돈을 그때 다 써버렸다. 그것이 반년 전이고 반년 전부터 효원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끝명이에게 작은 떡집이라도 차려주려 모은 돈이었다. 성격이 야무지고 음식 솜씨가 좋으니 충분히 잘 꾸려나가리라 믿었다. 장사하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 살림을 차려 가정을 꾸렸으면 싶었다. 그렇게라도 끝명이에게 갚아주고 싶었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받쳐주고 싶었다.
“지난번에 와서는 인왕산 밑에 있는 서원에 넣어달라고 떼까지 쓰고 말입니다.”
“우리 집안에 우환이 있었지 않니.”
“우환이 있으면 그렇게 정신 못 차리는 게 당연한 겁니까? 저도 방황하고 싶습니다.”
지우는 안 그래도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욱 아파왔다. 자리를 박차며 나가자 백단은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아비 죽고 나서도 배 곪지 말라고 그리 한 것을. 저리 차가워서야 어떤 마누라가 좋아하겠누.”
끝명은 백단을 보며 과거에 어찌 세자의 스승까지 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자주 그랬다. 특히 지우에게는 야속한 주인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백단은 어제 만들어 놓은 마방진과 편지를 남겨 놓고 덕유산으로 떠났다. 서양 홍시를 심어 놓은 밭을 수시로 살피고, 화공을 찾아가 초상화를 그리면 그 뒤의 일은 화공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
지우는 화공 앞에 앉아 입가를 파르르 떨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공의 작은 작업실 안에는 물감 냄새가 가득 차 있었는데 이게 어느 꽃잎에서 나온 것인지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소문에 정씨는 궁궐의 도화서에서 제법 이름난 화원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화서에서 쫓겨나 청계천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궁녀들의 알몸을 상상해 그려놓은 화첩이 발견되어 그렇다고도 하고 화격(畵格)도 모르는 궁인들 밑에서 일하는 게 자존심이 상해 때려치웠다고도 한다.
시장의 소문은 당사자의 진짜 인생이 어떻든 상관없이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화공은 얇은 붓을 들어 찢어진 눈으로 지우를 세밀하게 살피더니 덥수룩한 제 수업을 몇 번 쓰다듬고는 거침없이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도련님. 용모가 수려하십니다. 받아 보시는 아씨께서 바로 낙점하시겠는데요?”
정씨는 입술이 잔뜩 삐죽 나온 지우를 보더니 더는 농을 걸지 말아야겠구나 싶었다.
“본만 그리면 칠은 하루면 됩니다.”
“아버님이 초상화를 그리러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으니 더는 오지 않아도 되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보셔야지요. 내일 진시(아침 7:30-9:30)에 오셔서 보셔요. 시간 괜찮으십니까?”
“시간은 괜찮네. 나의 아름다운 용모를 본 뒤에 어둠 속을 철컹철컹 걸어갈 걸 생각하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구먼.”
지우는 내일 유진의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닐세.”
지우는 본을 다 그렸다는 화공의 말에 기지개를 켜며 화방을 나왔다. 화공은 지우가 일어난 자리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답게 아까와는 달리 바람이 꽤 세차고 하늘에서는 곧 비가 올 것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어서 책방에 가야겠어. 산학원본(算學原本) 하권이(박율 저, 조선시대 수학책) 오늘 들어온다고 한 거 같은데. 이렇게 기분이 꿀꿀할 때는 책방 치료가 딱이지. 몇 문제 풀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장가며 유진인지 유과인지 하는 양반도 다 잊힐 거야.’
기와집들이 모여 있는 북촌 거리의 한쪽에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책방 ‘소란당’으로 들어가면서 지우는 책방 주인의 아들인 동식에게 인사를 건넸다.
“똥식이. 아버지 어디 가셨니?”
동식은 지우에게 곁눈질만 하고 보던 야설 서적을 계속 보며 말했다. 음란한 웃음이 말끝에 새어 나왔다.
“목민심서 필사본을 가지러 가셨습니다.”
지우는 그런 동식이 익숙한 듯 별말 없이 책방 앞 기와집들을 훑어보았다.
“그래? 앞집에 누가 이사를 오나 보다?”
맞은편 집 중의 하나에 짐들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거리에서도 몇 안되는 청기와를 얹은 집이었다.
“평양 부윤이 평양에서 이사를 왔는뎁쇼! 어제부터 짐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평양 부윤이 왜 한양에?”
“딸이 단오쯤에 혼인하고 부윤도 곧 한양으로 부임할 예정이랍니다. 평양에서 한량으로 지내던 양반이 사돈 덕을 본답니다.”
“어느 댁과 혼인하길래?”
“대제학 대감댁으로 시집간다고 합니다. 그 있잖습니까? 좌승지 영감.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사주함만 들어가면 신부가 아프거나 죽으니 말입니다. 처음 정혼했던 공주도 숙원 마마의 기도 덕에 겨우 연명하고 있잖습니까.”
‘신랑 심보가 그렇게 고약하니 신부가 시집도 오기 전에 탈이 나는 것이지. 흐음.’
지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동식의 말대로 이틀이나 짐이 들어갈 정도면 평양 부윤의 재산이 어마어마하겠다 여겼다. 북방 백성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군 하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찼다.
“오늘 산학원본 들어오는 날이지?”
“인기 있는 책도 아닌데 오늘 그 책을 찾으시는 이가 두 분이나 계시네요. 딱 한 권 남았는데.”
동식은 책에 그려진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얇은 속곳만 입고 요염하게 앉아있는 여인의 자태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버선을 신지 않은 뽀얀 발이 고왔다.
“딱 한 권이라니?”
“딱 한 권이 들어왔으니 딱 한 권이지요. 방금 어떤 선비님이 책을 찾으러 들어가셨어요.”
“뭐?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그리고 똥식이. 아침부터 ‘마님의 버선이 그리워.’는 좀 그렇지 않아?”
동식은 머리를 긁적이며 헤헤거렸다.
“선비님이 추천하신 일곱 번째 책이지 않습니까? 추천해주신 책이 어찌 이리 다 재미있습니까?”
지우는 동식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책방의 제일 안쪽을 향해 달음질했다. 책방 주인과 저의 관계로 볼 때 따로 책을 챙겨 놔뒀을 만도 한데 싶었다. 집에서의 일까지 겹쳐 그런지 괜히 서운함이 더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책방 안까지 흙먼지 냄새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