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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산초'를 하라니요!

<이룰 수 없는 꿈>

by 둔꿈

목이 쉬어버렸다. 어제부터 뮤지컬 돈키호테의 엔딩곡 '이룰 수 없는 꿈'을 너무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고성방가의 시작은 그저께 극단에서 뮤지컬 곡을 혼자서 랩 하듯이 해낸 충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독님, 산초를 하라고요? 이 배역, 노래가 들어 있는데요?"

"괜찮아요. 그냥 대사 하듯이 말하세요."


갑자기 오늘 회사일 때문에 오지 못한 산초 역할을 맡은 누군가가 원망스러워졌다. 직장인 연극모임이라, 나 역시 언젠가는 못 오는 날이 있을 테니 참 쓸데없는 원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최초 도망에 실패하고, 뭔가 억지로라도 맡게 되면 역시 열심히 하는 캐릭터다. 산초도 잘 해내겠다고 잔뜩 긴장했다가 노래 가사를 너무 힘줘서 뱉어 버렸다.


"나는 산초, 어디든 끝까지 따르리~~~ 주인님을 보좌하는 자랑스러운 길동무!"


노래를 하면서도 '내 입에서 쏟아지는 것이 왜 랩이지?'하고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나 때문에 혹시나 돈키호테가 놀라지나 않았을까 걱정돼서 쳐다봤더니, 다행히 그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노래를 계속 이어가신다.


이 민망하고 실패한 듯한 느낌은 상당히 오래갔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옆에 있는 분께 단역도 함께 합창하는 엔딩씬이 있다는 것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당연히 속으로 결심도 했다.

'감독님이 또 '산초'처럼 노래 부르는 역할을 하라고 하면 열심히 도리도리...... 고개를 격렬히 젓겠노라!!'


주말 내내 뮤지컬곡을 연습하면서 주연인 돈키호테와 둘시네아 역할을 맡은 분들이 참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많은 대사를 외우는 것도 대단했지만, 뮤지컬 곡을 부르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요를 따라 부르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귓가에 들리는 리듬에 맞춰 쉽게 가사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가요는 악기로 강약이 표현돼서 딱 '여기야'하며 노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뮤지컬은 목소리 자체가 모든 악기의 역할을 맡은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바닷물에서 부표 찾는 느낌처럼 계속 헤매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음이 높다. 이건 거의 성악 수준이다.


목도 쉬고 마음도 쉰 것 같은 상황에서, 유난히 '이룰 수 없는 꿈' 가사가 눈에 들어온다. 왠지 노래 자체가 나를 위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나 노래 못해도 힘껏 나아가리라~~~!!!

돈키호테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꿨지만,

영원히 저 별을 향해 나아갔듯이!


<이룰 수 없는 꿈>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가네~ 저 별을 향하여

쉽게 닿을 수 없어도

온 맘 다하여 나아가리


영원히

저 별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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