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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바람

콜센터 스토리#9

by 둔꿈

할머니께서는 최근에 구순이 훨씬 넘은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셨다. 임종을 지켜보면서 유난히 아버지가 생각이 나더란다. 6·25 전쟁터, 아무도 임종을 지켜주지 않았을 아버지.

흐느끼시며 계속 말씀하신다.

"흐흑... 저는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고요. 나는 아버지 얼굴조차 모른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는 제가 함께 있었지만...... 제 아버지, 홀로 죽음을 맞이할 때 얼마나 외로왔을까요?"

말을 못 잇고 또 한참을 우시다 이야기하신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 땅이라도 가보고 싶어요.

유해도 못 찾고 있어요. 현충원에 위패로만 모셔져 있는데 꼭 가보고 싶어요."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컴퓨터를 톡톡 두드려 관련 내용을 검색해 갔다. 그리고 차마 전하지 못할 내용을 확인하고는 잠시 말을 잊었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금화원동지구 전투'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확인되었다.

DMZ 너머 북한 땅 그곳......

유해도 찾기 힘들다.

가 볼 수도 없다.


나는 "거기 못 가세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부친께서 어떤 전투를 겪으셨는지, 그리고 사망 장소가 적힌 서류를 보내드리겠다 했다.

서류를 받으시면 조금은 늦지만 '바람'이 '바람'으로만 끝나게 된 다는 것을 알게 되시겠지.

이 시간을 늦추는 것이 비겁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바로 내가 깨고 싶지는 않았다.


진정 비겁한 것이 무엇일까?

역사 뒤편에 숨은 그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허공이나 잠시 노려본다.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꾹꾹 눌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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