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새해 첫날 늦은 오후, 남편과 딸 그리고 저는 팔공산으로 드라이브를 떠났어요.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라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겨울 산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어요. 양옆으로 나무들이 잎사귀 하나 없이 서 있었지만,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비치는 겨울 햇살이 참 따뜻해 보이더라고요.
차 안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흘렀고, 남편은 평소 좋아하던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읊조렸어요. 그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져 어딘가 따뜻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죠 그러던 중 저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어요.
"아, 삶이 참 아름답다.”
그 말을 듣고 남편과 딸이 깔깔 웃으며 놀렸어요. “엄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감성 충만이야? 무슨 시인이 된 줄 알았어!” 저도 웃었지만, 그 말이 제 입에서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답니다.
불과 몇 년 전, 딸아이가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많이 아팠어요. 갑작스러운 흉통과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몇 번이나 다녀야 했고요. 병실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가까스로 경북대병원에 입원했지만, 여러 차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들었어요. 이후 추가적인 검사 끝에 내린 진단은 자가면역 질환. 딸의 면역 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며 몸 안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었어요.
스물셋, 찬란한 시절을 살아가야 할 딸아이가 하루아침에 학교를 휴학하고 병실에 머물러야만 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어요. 병세에 따라 증상이 심해지면 입원하고, 조금 나아지면 통원 치료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어요.
저희는 딸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기 위해 서울 삼성병원에도 갔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법은 없었어요.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임상실험을 거친 다양한 약을 투약해 보며 딸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것이 전부였죠. 병원에서 권유하는 대로 약을 바꾸고 또 바꾸며, 딸아이와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었어요.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수많은 약물 치료와 몇 차례의 입퇴원을 반복한 끝에, 드디어 혈액 내 염증 수치가 정상이라는 기적 같은 소식을 들었어요. 딸아이가 잘 견뎌준 덕분에 얻은 결과였죠. 힘든 시간을 버텨준 딸아이가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몰라요.
입원 중 딸아이의 얼굴에는 항상 걱정이 가득했어요. 어느 날, 침대에 앉아 멍하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중얼거렸어요. "엄마, 만약 이 병이 안 나으면 나 어떡해?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딸아이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저는 창밖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어요.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겨낼 거야. 봐, 창밖 나무들도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잖아. 우리도 곧 봄을 맞이할 거야."
딸아이의 회복은 저희 가족에게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선물해 주었어요.
그날 팔공산을 오르며 바라본 나무들은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이 겨울이 지나면 그 나무들에 새싹이 돋아날 거라는 걸요. 그리고 여름이 오면 푸른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겠죠.
딸아이는 제게 그런 나무 같아요.
고된 겨울을 지나 마침내 봄을 맞이한 아이.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자리 잡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뜨겁게 벅차오릅니다.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제가 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 보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겨울은 반드시 끝이 나고, 봄은 꼭 찾아옵니다. 그 봄은 잔잔하고 따뜻한 햇살처럼 당신의 삶을 비추게 될 거예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 보세요. 그리고 그 봄이 왔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이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