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들이 흔히 하는 가장 커다란 실수는 자식들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비난하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다시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경계의 뜻으로 더욱 더 강력한 비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식들은 비난을 받을 때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며 자신은 무가치하므로 부모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상처는 평생을 안고 가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조언을 해야 한다. 비난과 비판은 용어상 비슷해 보이는 그 단어가 의미하는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비난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비판은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을 주는 말이다. 조언은 도와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의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던 나는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사소한 실수는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계속 실수했으며 나는 비난받으며 성장했다. 지금도 조급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울고 있는 아이가 생각났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군가 항상 궁금해했지만 결국은 어린 시절의 나라는 것을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잘못은 대물림된다고나 할까? 성인으로 성장한 아들이 항상 부족해 보이고 실수를 많이 하자 나도 모르게 비난을 했고, 다혈질인 아내와 나는 자식을 죽기살기로 비난했다. 그러자 아들이 언젠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를 어렸을 때부터 무시했어요, 사소한 잘못을 해도 비난을 했어요. 저는 부모님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죽이 되는, 밥이 되든지 제 인생을 살겠어요"라는 말을 하며 울부짖었을 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있던 그 어린아이도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까짓 것 인생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들에게 가혹하게 대했을 까? 정말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어렸을 때 상처는 대물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에게 때늦은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그래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이야기했다. 너 역시도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비판에서 시작해서 조언으로 끝내야 한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따져서 깨닫게 하는 일이고 조언은 나아가서 도움이 되는 말이다. 자식들에게 비난을 하는 순간 그 화살들은 바로 독화살로 변하여 내 자식의 심장을 찌르고 당신의 가정을 파괴시킬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는 비난을 비판으로 비판에서 다시 조언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어린시절의 나에게 이야기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