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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Sep 21. 2022

초단편소설_내가 나무였을 때

 


  내가 나무였을 때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직박구리 무리의 맑고 높은 노랫소리, 비가 그친 후 송이풀의 보송한 솜털이 하늘을 향해 나풀거리는 손짓, 구름 조각이 떠가는 조용한 소리, 청설모들이 내 몸을 간지럽히는 곰살맞은 움직임…….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고 살 수 있다면 어떤 곳이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던 나무들 모두가 거의 그랬다. 나와 같은 종류의 값싼 나무들 모두 거리의 의자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간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싶은 나무는 없었다. 공원이나 등산로 중턱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운이 아주 좋은 경우였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는 희박했다. 전기 톱질의 날카로운 소리가 산을 울리고 오랫동안 가지를 나란히 했던 나무들이 하나 둘 베어져 나가면 우리는 그런 희망을 언제 가진 적이나 있었냐는 듯 어느덧 체념하게 된다. 이미 나는 밑둥이 사정없이 잘린 나무이고 내 힘으로 땅의 기운을 빨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도시의 새로 생긴 역에 있었다. 인간과 부대끼고 싶지 않다는 나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고가는 길목의 한 쪽,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위한 휴게 공간에 내 발목이 묻혀 있다. 나는 이제 새나 구름이 움직이는 소리 대신 도로를 지나는 차의 급한 경적 소리, 수화기에 대고 떠드는 일방적이고 무례한 대화, 하나님을 믿으라고 부르짖는 어떤 남자의 영혼 없는 외침, 그런 것들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비슷한 산의 소리는 매일 들어도 지겹지 않았다. 그러나 지친 인간들의 소리는 금세 지겨워졌다. 나는 함부로 내 몸에 닿는 그들의 손길이 싫었다. 담배를 비벼 끄거나 내 다리 주변에서 오줌을 싸거나 침을 뱉거나, 그런 모욕적인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 산을 떠올리곤 했다. 내가 있던 산. 온통 청량함이 가득하던 산. 나는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지만 다리가 없는, 불편한 곳에서 평생을 뿌리박힌 채 살아야 하는 사물의 운명을 인간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되도록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귀를 닫고, 눈을 닫았다.


  “아이 씨팔. 좆나 엿 같네.”


  눈을 번쩍 떴다. 나는 나의 잠을 화끈하게 깨운, 입이 불친절한 그 사람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걸인이었다. 도시의 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걸인. 땟국에 절은, 이제는 원래의 색깔을 알 수 없는 옷을 몇 겹을 겹쳐 입고 있었고 몇 십 년은 안감은 듯 머리에는 온통 하얀 비듬였으며, 짐을 잔뜩 구겨 넣은 커다란 군용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낭에는 또 낡고 헤진 이불이 칭칭 감겨 있었다.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지독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역 관리인이 와서 이 더러운 인간을 쫓아주지 않을까 잠시 기대했지만, 역이 생기고 두어 달 만에 이미 이 공간은 거의 버려진 곳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레기통 주변은 쓰레기가 넘쳐 났고, 길 고양이들이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누구를 나무랄 것 없이 더럽고 냄새 나는 거리의 의자였다.


  걸인은 누군가 버려 놓은 담배꽁초를 뒤적거릴 때도, “아이 씨팔, 좆나 없네.” 그 중 조금 길다란 장초를 발견했을 때도, “아이 씨팔, 좆나 기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일 때도, “아이 씨팔, 좆나 안 붙네.”라며 씨팔, 이 없으면 말을 시작할 수 없는 것처럼 계속 욕을 해댔다. 이상한 건 나였다. 인간의 소리가 지겨워 귀를 닫고 있던 내가 귀를 쫑긋하고 이 더러운 걸인의 욕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 후 걸인은 낮에 담배꽁초를 뒤적거릴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아이, 씨팔.”이라고 시작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상한 긴장감으로 온 몸이 단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역이 제법 고요해진 깊은 밤이었다. 내가 원래 있었던 산이었다면 나는 쏟아지는 별들을 찾아 온 몸을 활짝 열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 곳을 영영 떠나온 이후에도, 인간의 소리가 잠잠해지는 새벽에는 내 머리위의 별들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평화로움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씨팔, 겨우 찾았네.”

  그가 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주워 온 종이상자를 옆에 내려놓고는 더러운 몸을 나에게 찰싹 붙이고 열심히 문질러대는 것이었다. 그 나름의 청소였다. 그의 옷보다 내가 훨씬 더 깨끗해 보이는 데도, 그 냄새나는 옷으로 나를 닦을 수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 몸 위에 종이상자를 깔고는 본인의 몸을 뉘었다.

  조 심 스 럽 게.

  나는 그 순간, 이 걸인을 내가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숨죽이고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나를 찾아오는 인간들은 모두 무언가를 버렸다. 담배꽁초나 가래침, 먹다 남은 음식 등 아무 것이나 함부로 버리고 사라지는 인간들뿐이었다. 그는 다시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내 몸 한쪽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있던 구겨진 햄버거 봉지를 열고는 빵 부스러기만 남은 햄버거를 입에 털어 넣고, 먹다 남은 콜라를 쪽쪽거렸다. 면이 국물을 모두 빨아 들여 면발이 잔뜩 뚱뚱해진 식어빠진 라면도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빈 용기를 하나하나 그의 품에 쓸어 담더니 쓰레기통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미 넘쳐있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맨 손으로 꾹꾹 눌러 담는 동안 물론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씨팔, 씨팔, 씨팔.


   그의 씨팔, 소리가 잠잠해진 것은 잠시 후 그가 다시 나에게 몸을 눕혔을 때였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시의 하늘을. 나는 그의 등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어쩌면 나와 그 사람은 비슷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사람의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눈을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나무였을 때 희망을 품었던 것처럼 이 사람에게도 보통 사람의 희망이 있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그런 희망.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희망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그런 희망.   





  

  나는 이제 쓸모없고, 더럽고, 땅의 기운을 제 힘으로 빨아들일 수도 없는 버려진 나무 의자일 뿐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가 찾아오는 지난 한 달여간, 나는 내 몸뚱이를 귀하게 쓸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나는 특별한 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시민들의 것이었고, 누군가 한 사람의 전유물, 더군다나 그 한 사람이 세금도 내지 않고 정상적인 시민의 생활을 하지 않는 이름 없는 걸인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 걸인이 나를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나는 누군가의 민원으로 ‘철거 조치’ 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나는 이제 더 작게 조각조각 잘리거나 어디엔가 불쏘시개로 던져지겠지.


  잘릴 때 잘릴지언정, 그 순간 나는 그에게 배운 욕을 내질러야겠다. 이런! 좆같은 세상!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산을 바라고 기도하던 그 시간은 내게 아득한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다만 내가 없어지면, 나를 찾아 두리번거릴 그 사람이 걱정될 뿐이다. 씨팔, 씨팔 중얼거리며 그 자리를 맴돌거나 누군가에게 쫓겨날,   

  

  나의 마지막 의미.



<끝>

2022. 9. 19 글수다 9월 모임 발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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