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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Oct 21. 2022

세 번의 육아휴직 (2)

그 사이, 하룻밤은 지난 것 같다


한 번의 유산을 하고 꼬박 두 해를 더 기다려 내게 와 주었던 둘째는, 첫째와 다르게 몸이 많이 약했다. 백일도 지나지 않아 요로감염을 시작으로 이후 3개월이 멀다 하고 입원했다. 첫째는 감기약도 잘 안 먹이고 키웠는데 둘째는 아기 때부터 독한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둘째가 제대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남몰래 자주 눈물을 훔쳤던 적이 있었다. 나가서 바람이 좀 차다 싶으면 바로 기침을 했고, 그 기침이 하루 지나지 않아 가래가 끓었다. 그러면 바로 열이 40 도까지 올랐다. 체온계를 보며 애태우고, 다시 또 절망하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엄마인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아픈 아이에게도, 매번 할머니에게 맡겨지는 큰 아이에게도,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첫째 때 겪었던 전쟁은 아픈 아이 키우면서 보니 아주 애교 수준이었다. 아이가 입원했을 때는 번갈아 휴가 내고, 조퇴하고 밤새고 간병하고 다시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병원으로 갔더니 남편이 간병인 침대에 쪼그리고 자는 모습에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째 면도도 제대로 못해 턱 밑이 거뭇한 채로, 추운데 이불도 덮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운 좋게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 통원 치료할 때도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한 시간씩 체온 재고 해열제 먹이며 보초를 서다 부부 둘 다 새벽녘에 순간 잠에 빠졌을 때 눈 뒤집혀 경기하는 둘째를 발견한 건 첫째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해진다. 


둘째가 거의 네 살이 될 때까지 가족 모두 혹독한 시절을 보냈다. 2017, 2018년은 크리스마스도, 연말 행사도 병원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매일 세 시간도 못 자고 출근해야 했던 우리 부부도, 동생이 아플 때마다 할머니 집에 맡겨져 엄마 아빠 손길 못 받고 지내야 했던 우리 큰 아이도, 가족 모두 하나만 기도했다. 둘째가 건강해지길, 그래서 매일 집에서 같이 저녁 먹고 같이 눈 뜰 수 있기를. 그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이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잘 자라 주었다. 제 집 드나들 듯했던 병원 입원이 3개월에서 6개월로, 1년으로 텀이 길어지나 싶더니 언젠가부터 열 좀 나다, 기침 좀 하다 마는 그야말로 ‘감당할만한’ 감기로 지나갔다. 이제는 그마저도 없어져서 땀이 뻘뻘 흐를 때까지 뛰고 뒹구는 까불이 여섯 살로 자라 주었다. 


나는 첫째 때 못 쓴 육아휴직까지 18개월을 쉬었다. 그나마 아이가 조금은 단단해질 때까지, 형에 비하면 비교적 오래 엄마와 지낸 편이다. 아픈 아이를 키우며 나는 좀 더 겸손해졌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저 “별 탈 없이 평범하게 살아요”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아이가 건강하다는 것은 부모가 평생 갚아야 할 거저 얻은 축복이라는 걸. 말 안 듣는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날 때, 난 그때 쓴 일기를 가끔 들춰 본다. 


신랑은 셋째를 반대했다. 둘째가 그렇게 아팠으니 당연한 두려움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덧 ‘노산’ 소리 들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운동도 열심히 했고, 술도 야식도 끊은 지 오래였다. 영양제도 열심히 먹었다. 어쩌면 셋째를 낳고 싶었던 내 야심을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둘째 다섯 살이 고비였다. 동글동글한 머리통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렇게 예뻤다. 형아가 하는 건 무조건 따라 하는 둘째가 사랑스러웠고, 싫다 하면서도 아팠던 동생을 살뜰히 보살피는 말없는 형이 너무 대견했다. 과장 좀 보태 여섯 살이나 차이나는 녀석들이 투닥거리는 것도 귀여웠다. 애가 다섯 살만 되면 동생 생각을 하니 신랑은 그랬다. 이러다 5년마다 애 낳아서 백 살까지 스무 명 채워보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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