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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Feb 15. 2022

우리아버님자전거는따릉따릉신이나지요


우리아버님지갑에는비밀스런장소가있지요거기에는오만원짜리두장이들어있어요어머님한테빈지갑탈탈털어보이며돈없다시위해서받아낸돈이지요

돈이있으면또참지를못하고길건너사거리정육점으로가요여기서제일좋은고기로주시오우리손주미역국끓일것이오하고묻지도않는손주자랑을실컷하고기어이돈다쓰고한줌밖에안되는고기두근을자전거에달랑달고달같이웃으며신나게우리집으로달려오시지요

내가일나가면일당십오만원이나버는데손주소고기도못사주나큰소리를땅땅치고

나는아버님아이스크림도사주세요애교를부리는철없고영악한며느리지요아버님은막노동에가맣게그을린얼굴을활짝웃고자꾸그러다난중에돈다떨어지면자식들이괄세할까걱정하는어머님한숨은깊지만

오늘도우리아버님자전거는따릉따릉신이나지요



- 2022. 3 <우리아버님자전거는따릉따릉신이나지요>






우리 아버님의 일과는 새벽 세 시에 시작된다. 정확하게 알람 두 번만에 눈을 뜨시고 양치하고 세수만 하신 뒤 어머님을  깨울세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아직 어둠이 깔린 새벽길을 나선다.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은 철 바뀌는 풍경을 즐기러  동무들과 산으로 향하는 이 시간, 아버님의 등에 업힌  등산 가방에는 자식들이 입던 해진 옷ㅡ작업복ㅡ과 어느 기업체  로고가 박힌 귀 달린 모자, 낡은 장갑이 들어있다.


우리 아버님은  건설 노동자다.  흔히 사람들에게 막노동이라 불리는 그 일을 십 년 동안 하셨다. 노동일 십 년.  나는 그 세월이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지 감히 짐작하지 못한다.

결혼 6년 만에 비로소 귀한 아들을 낳고 당신처럼 키울 수 없다 생각하신 아버님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 와 서울에서 가장 가난했던 동네 홍은동, 그리고 그곳  다섯 평짜리 친척 집 다락방에 무작정 비집고 어가 타향살이를 시작하다. 누군가 고향 사람이 인연을 터 준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하시게 될 줄 아셨을까. 아버님의 이 일은,  그러나 자식 셋을 다 대학을 보냈고 번듯한 곳으로 시집 장가도 보냈고 서울 끝자락, 더 이상 바퀴벌레도 없고 수세식 화장실에 뜨거운 물 콸콸 나오는 임대아파트도 얻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아버님  최고의 자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들을 얻게 되셨다.


아버님의 가장 큰 낙은 손주들이 좋아하는 소고기며 딸기를 사시는 일이다. 아직도 아버님을 부르는 현장을 두 말 없이 달려 나가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십 도를 웃도는 폭염에 노인들은 외출을 조심하라는 안전 문자가 오는 날, 칼바람이 너무 추워 길에 인적도 드문 그런 날, 원망스럽게도 아버님께 연락이 온다. 꼭 그런 날만. 자식들 모두 이제 먹고 살 일 걱정 없으니 그만하시라고 걱정하지만 두 말 더 못하게 입을 막으시고 또 몰래 한의원에서 한 개 만 원짜리 어른 손가락만 한 기다란 약침 맞으시면서도 그래도 기어이 나가신다. 버님께 일은, 남들이 '막'노동이라 부르는 그 일은, 가진  없고 배운 없던 전라도 깡촌 시골 청년에 다섯 식구 살 비빌 수 있는 방 한 칸을 내어  너무나 고마운 것이고, 일한 대로 땀 흘린 대로 정직하게 아버님께 보답을 준 숭고한 것이다.


1983년 만 삼천 원이던 일당은 사십 년 지나 이제 십 구만 원이 되었다.  돈이 귀하고 감사한 아버님은 오늘도 나가신다. 당신께서 번 돈으로 내 새끼 내 손주 먹을 고기 라도 사주고 싶은 아버님의 마음을, 자식들 걱정도 외면하고 일을 기어코 나가시는 아버님 저는 그저 원망만 할 수는 없다. 아버님이 직접 사신 고기 봉지손잡이에 걸고 한 블록 건너 있는 우리 집으로 오시는 자전거 소리 너무나 밝아서,  는 날 아버님의 표정은 너무나 쓸쓸해서. 나 버님을 길에서 만나 아이스크림  주세요 조르는 철없는 며느리다.


가진  없는 신랑ㅡ본인 말대로 도 없고 키도 작고 머리털도 없는ㅡ이 어찌 이리 자존감은 높은지, 그래서 비교적 넉넉한 집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마음을 훔쳐 갔는지 그 사람의 가난하지만 도도한 여유가 가끔 부럽고 질투 난다. 신랑의 굳센 자존감 켜켜이 십 년 동안 노동의 고된 시간을 그 흔한 동료 간의 술자리도, 도박도 없이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 낸 지독한 사랑이 서려 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벽돌 나르다 한창 허기질 때쯤 받았던 빵, 당신께서 드시지 않고 주머니에 소중하게 챙겨 넣어 온 그 빵의 맛을 아는 신랑은 가난과 불행을 함부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시를 쓰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한 마디 한다. "이게 그리 슬플 일은 아니지 않냐?"

나는 큭큭 웃고 말았다. 울다 웃어서 이제는 내 똥꼬에 털까지 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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