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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Oct 28. 2022

보통의 아이, 보통의 엄마, 보통의 시간

 


태어난 지 오십일 남짓, 한 줌밖에 안되던 그 밀가루 같이 하얀 아기. 그 아기를 안고, 나는 서울대학 병원의 응급실에 있었다. 바로 옆 병상에는 스무 살은 되어 보이는 턱이 거뭇한 청년이 아기의 표정을 하고 누워 있었고, 호스를 꽂은 입에서는 힘 없이 거품이 흘렀다. 청년의 어머니도, 그리고 그 청년도 그 청년을 대하는 의사들도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보였다.


응급실은 만원이었지만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건 우리 아이, 시우뿐이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의와 레지던트들이 쉴 새 없이 호출을 받고 드나들었다. 열 때문에 팔과 다리가 축 처진 아기를 안고, 위안인지 불안 일지 모르는 멍한 감정으로 앉아 있었다.


40도를 웃돌던 열이 결국 잡히지 않자, 동네 소아과에서는 큰 병원에서 검사받기를 권했다. 첫째가 신생아일 때부터 우리 아이들을 봐주셨던 의사 선생님. 불안해하는 부모들 앞에서도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시우의 상태를 보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큰 병원에 가 봐야겠어요, 백일 이전에 이렇게 열이 계속 나는 건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병원으로 가자, 결정했다.


시우는 몸도 아프고 병실이 익숙하지 않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열 때문에 되도록이면 안아주지 말라고 했지만, 자지러지는 시우를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낮 동안 링거 바늘을 꽂았다 뺏다 하느라, 제 무게에는 버거운 양의 피를 뽑느라 지칠 대로 지친 아기였다.


시우를 안고 병원 복도를 밤새 걸었다. 나중에 다른 대학 병원들을 드나들며 비교하게 된 것이지만, 서울 대학 병원 소아과 병동은 밤에도 불이 거의 꺼지지 않는다. 코드 블루1)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의사들이 어딘가를 향해 전력으로 뛰어가는 상황이 하룻밤 사이에도 여러 번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소란함 속에 잠이 들지 못하는 아기를 안고 밤새 복도를 서성이는 엄마들이 나 말고도 많다. 눈 밑에 지친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채, 헝클어진 머리로, 여자보다는 오직 엄마로 이 순간 내 품에 안긴 아기만을 향한 그들의 표정을 보며 서로 말 없는 위로를 받는다.


시우는 첫날은 정말 밤새 울었다. 아기가 괴롭다고 큰 소리로 울어재껴도 그곳, 서울 대학 병원 간호사들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는다. 그 순간은 그게 참 야속하기도 했다. "아기가 많이 아픈가 봐요."라고 해주면 "우리 아기가 여기가 낯설어서 이렇게 우나 봐요. 너무 시끄럽지요, 미안합니다."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그 민망하고 미안한 시간을 견디고 싶었지만, 그 말할 '자리'를 쉽사리 내어주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만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며

우는 아기에게 '아프게 해서 미안해, 미안해……'를 되뇌며 그 새벽, 계속 복도를 돌고 돌았다.


나를 위로해 준 건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근육병 환아, 건희2)의 어머니였다. 다섯 살 딸, 그리고 이제 돌이 갓 지난 아들을 데리고 병원 살이를 하고 있던 곱디고왔던 엄마. 건희 엄마는 참 젊고 예뻤다. 이제 갓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내 행색에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태어나자마자 근육병 진단을 받고 지역 대학 병원에서 서울 대학 병원으로 전원을 온 것이 지난달이라고 했다. 건희는 돌이 지났지만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건희의 몸에 주렁주렁 연결된 각종 검사 기구들만 삑삑 건조한 소리를 내며 건희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 주었다. 병원 생활 2년, 그게 어떤 시간일지 머리로 잘 가늠이 가지 않았다.


건희 엄마는 참 씩씩했다. 건희의 누나, 그래 봤자 이제 다섯 살이던 딸 은수는 병원을 제 집으로 알았다. 아들의 병상 옆에 간이 텐트를 치고 병상 밑바닥에서 지냈다. 병원 측의 배려였다. 병원이 집이 된 건희네의 병상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각종 소꿉놀이 장난감도, 간이 의자와 간이 공부상도 있었고, 손쉽게 탁 펼쳐지는 노트북 거치대도 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은수에게 건네는 간호사들의 다정한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픈 아이들을 대하는 때로 무심한 태도가 무관심이 아니라, 그곳에서의 시간들을 견디기 위한 그들만의 방어벽이었음을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은수는 본인과 동생에게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한 듯했다. 동생에게 엄마를 뺏기고, 인형과 간호사들과, 이웃 병상의 가족들과 살갑게 지내는 법을 알았다. 다섯 살 같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모습이 왠지 정말 마음 아팠다.


병실에서 시우같이 가벼운 병을 앓는 아이는 우리 아이뿐이었다. 모두 장기 입원 환자였다. 그렇지만 병실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적어도 그곳은 응급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우리 아이는 살아 있었고 건강했고 엄마가 먹여 주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병실 사람들은 아이의 검사 결과나 무거운 검사 일정 등 다소 어두운 이야기를 하다가도 금세 소소한 걱정거리들을 나누며 웃었다. 말 안 듣는 아이의 오늘은 그들에게는 행복이었다. 병원 밥이 지겨워 아기같이 투정하는 열두 살 딸을 업고, 안고 달래며 빡빡 깎은 머리에, 입에 뽀뽀를 퍼붓던 엄마. 아직 많이 업어주고 싶은데 허리가 아프다며, 내게 요즘 어떤 아기띠가 좋은지 물었던 기억이 난다.


소아 입원 병동이 처음인 나를 오히려 위로해주는 건 그들이었다.


열이 잡히지 않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시우의 입원은 길어졌다. 회진 나온 의사가 생전 처음 들어 본 낯선 검사를 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총총 사라지고 나면 초조해하는 나에게 그 검사가 어떤 것인지, 걱정할 것 없다고 괜찮다고 설명해 주는 것도 건희 엄마, 그리고 열두 살 백혈병 환아의 엄마였다.


시우는 보름 정도가 지나 의사의 퇴원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모레쯤 검사 결과 보고 이제는 퇴원해도 되겠어요." 그 순간 기쁜 마음 한 편 먹먹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내가 왜 그때 옆 병상 식구들의 표정을 슬쩍 살폈을까. 잠깐의 정적. 그것은 그저 부러움이었을 것이다. 긴긴 시간을 이곳에서 아이와 견뎌야 하는 엄마들의 희망. 나에게도 저 시간이 올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과 기대. 시우처럼 가벼운 입원을 하고 퇴원하는 사람들을 보낼 때마다 느껴야 하는 부러움.


그다음엔 우리 아이일 수 있을까.


"우리 이제는 보지 말자?"

퇴원하던 날 건희 엄마는 시우 건강하라고,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말라고 하면서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나는 바보같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웃었던 것 같다. 이별이 익숙한 은수를 보니 더욱 그랬다. 건희와 은수를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너무 난다. 지금 다시 만나면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막막하던 나를 위로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밤새 안 자던 시우를 안고 복도를 걷던 밤, 건희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이 나에게 다른 세상을 만나게 했다. 보통 엄마, 보통의 아이, 보통의 시간……. 평범해 보이는 나의 엄마로서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눈물 나게 간절한 날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기적이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뛰어나서, 내가 잘해서 건강한 아이가 내게 오고 평범한 일상이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는 지독하게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는 온 마음으로 감사해야 하고 다시 돌려주며 살아야 하겠구나……. 이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나는 그 새벽, 시우가 입원해 있던 병원의 복도에서 배웠다.


환하게 웃던 남매의 젊은 엄마가 아직 보이는 듯 생생하다. 안녕, 손을 흔들던 귀여운 은수도. 건희는 누나의 작은 손을 잡고 다른 여느 아이처럼, 걸음마도 하고 말도 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1) 코드 블루_병원 내 긴급 방송 시 사용되는 용어로,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환자가 생긴 경우.

2) 은수와 건희는 실제 이름이 아닌 가명임을 밝힙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모두 하얀 옷만 입는다 하얀 옷을 입고 낯빛도 하얀 아이들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목이 쉬게 운다 엄마들이 우는 아이를 업고 내내 복도를 서성거린다 새로 들어온 어린아이는 손등에 바늘을 꽂는다 엄마는 못 보게 하고 간호사 두 명과 커튼 뒤로 사라진다 운다 운다 처절하게 운다 바늘을 쥐어뜯지 못하게 기저귀로 통통하게 손을 감싼다 기저귀 뭉치를 손등에 매달고 하루 종일 갇혀 있으면서도 열이 내리면 아이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종알댄다 숨을 새액새액 쉰다 그래도 울지 않고 노는 아이를 엄마는 웃으며 바라본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놀다가도 오늘 자리를 털고 나가는 옆 동무를 바라보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눈이 쓸쓸하다 그 눈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하였다 아이들과 지친 엄마들과 무표정한 의사들과 소독약 냄새와 건조한 기계음이 오늘도 내일도 그곳에서 삐익 삐익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 202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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