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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un 24. 2022

꽃아, 미안해


내가 요즘 좋아하는 시들은 대부분 흙의 냄새가 난다. 자연과 더불어 자란 유년의 체험이 녹아 있거나, 산과 바다와 풀과 꽃들, 그리고 작은 미물들과 동화되는 모습이 많다. 시를 읽다 보면 고개를 들어 보이는 것들을 음미하고 싶어 진다. 내가 쉽사리 지나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문태준 시인의 시나 나희덕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꾸지뽕 열매나 산수유나무나 오엽송이나, 부끄럽게도 나는 그들을 잘 모른다. 그런데 시를 읽으면 왠지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그것은 빨간색일 수도 있고 하얀색일 수도 있는데 그건 그냥 시를 읽으며 상상하기로 한다. 그리고 맛은 …… 입안 가득 시큼하고 쓴, “아이쿠! 이게 무슨 맛이야!”하고 뱉어버릴지도 모르는 그 어떤, 그러나 새들에게는 너무나 달고 귀한 별미 같은 것. 



오늘 산책을 하는데 읽었던 시 한 줄이 떠오르며 나도 바람이 흔들고 있는 나무를 가만히 쳐다보다, 또 길가에 핀 토끼풀 말고는 이름을 모르는 들꽃들을 바라보다 시인이 되고 싶지만 이들의 이름을 모르는 내가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건방진 생각이 순간 들었다. 꽃아! 네 이름도 몰라 미안하다, 그러나 좀 바라보고 예뻐해도 되겠니? 


그러자 이름 모를 그 꽃이 왠지 괜찮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들꽃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는데

이런 내가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민들레 홀씨 후우 부는 어린아이의

오목한 볼이

그대로 시 같고

꽃 앞에서 천진하게 미소하는 할머니가

소녀 같고 시인 같네


시가 별 거고

시인이 별건가 생각하면

나도, 너도 시인 같고

이런 내 마음도 퍽 시 같네



- 2022.6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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