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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Oct 21. 2022

세 번의 육아휴직 (3)

그 사이, 하룻밤은 지난 것 같다


아이 건강 문제로 회유하는 것이 통하지 않으면, 셋째도 아들일 거라고 협박을 했다. 나는 누가 봐도 아들 엄마라고, 지인들 의견까지 끌어 모아 100% 장담을 했다. 나도 물론 딸을 못 가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었다. 특히 목욕탕만 가면 벗은 속살처럼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서로 등 밀어주는 모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책 없이 자꾸 욕심이 나면 그때마다 끊임없이 자문했다. 또 아들이어도 괜찮아? 


그래 괜찮아! 괜찮다고!


천만다행인지 셋째는 딸이다. 그것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오빠들보다도 너무나 건강한 우량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딸 키우는 재미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상상했던 대로다. 아이 셋이 뒹구는 집은 정신없고 시끄러워도, 정말 모든 것이 완전히 꽉 차 버렸다. 


돌아보면 전쟁 같지 않았던 시절이 없었다. 고추 밭 맬래, 애 볼래 하면 고추 밭을 선택한다는 말은 어떤 현인이 하신 말씀인지 백 번 지혜로운 말이었다. 그런데 고추밭 매는 것보다 힘든 이 육아가 나에게 맵지만은 않았으니, 이렇게 공식 다둥이 맘이 될 수 있었다. 아이들 복은 아이들이 가져오는지, 아이들 낳으면 영영 멀어질 줄 알았던 승진도 했고 셋이 함께 뒹굴 수 있는 작은 집도 생겼다. 




힘들지만 아이에게 볼을 부비며 함께 견디어 가는 이 시간들이 지나고 보면 내 삶의 절정이고 내 삶의 봄날이라는 걸, 삶의 이 은밀한 비밀을 나는 진작 알고 있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앉아있던 작은 TV, 이불 펴 놓고 하던 한 밤의 땅따먹기, 병원에서 불렀던 캐럴, 둘째가 잘못될까 서로 부여잡고 울었던 일, 우리 부부에게 허리 디스크를 안겨 준 엘리베이터 없던 5층 빌라, 첫 딸을 확인하고 환호했던 순간….30년 후일지, 40년 후일지 모르겠으나 우리 부부가 후에 눈 감을 때에도 마지막에 떠오를 장면들은 아이들 입으로 엄마, 아빠 소리 숨 넘어가게 듣던 이때의 순간들이 아닐까. 내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내 정신력을 부여잡을 수 있었을까 확신하지 못하겠다. 의지 없고 나약한 내가 이 힘든 업무를 10년 넘게 하고 과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키웠다. 진짜 어른으로. 


부모님은 아이 중 하나는 맡겨 놓고 가라며 만류하시지만, 가끔 나는 굳이 아이 셋을 데리고 외출을 한다. 큰 아이는 둘째 아이 손 잡고, 나는 막둥이 허리에 매달고. 지나던 사람 열에 다섯은 첫째와 둘째를 번갈아 보다가 셋째의 얼굴을 확인하곤 한다. “셋이나 낳았어?”라는 눈길이거나, 아니면 “아이고, 천만다행이네” 괜한 오지랖이거나. 그 눈길의 의미가 무엇이든 나 혼자 자랑스럽다. 유전의 힘은 어쩔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낮은 코와 기다란 눈매를 가진, 이 올망졸망한 내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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