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님의 일과는 새벽 세 시에 시작된다. 정확하게 알람 두 번만에 눈을 뜨시고 양치하고 세수만 하신 뒤 어머님을 깨울세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아직 어둠이 깔린 새벽길을 나선다.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들은 철 바뀌는 풍경을 즐기러 동무들과 산으로 향하는 이 시간, 아버님의 등에 업힌 등산 가방에는 자식들이 입던 해진 옷ㅡ작업복ㅡ과 어느 기업체 로고가 박힌 귀 달린 모자, 낡은 장갑이 들어있다.
우리 아버님은 건설 노동자다. 흔히 사람들에게 막노동이라 불리는 그 일을 사십 년 동안 하셨다. 노동일 사십 년. 나는 그 세월이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지 감히 짐작하지 못한다.
결혼 6년 만에 비로소 귀한 아들을 낳고 당신처럼 키울 수 없다 생각하신 아버님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 와 서울에서 가장 가난했던 동네 홍은동, 그리고 그곳 다섯 평짜리 친척 집 다락방에 무작정 비집고 들어가 타향살이를 시작하셨다. 누군가 고향 사람이 인연을 터 준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하시게 될 줄 아셨을까. 아버님의 이 일은, 그러나 자식 셋을 다 대학을 보냈고 번듯한 곳으로 시집 장가도 보냈고 서울 끝자락, 더 이상 바퀴벌레도 없고 수세식 화장실에 뜨거운 물 콸콸 나오는 임대아파트도 얻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아버님 최고의 자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들을 얻게 되셨다.
아버님의 가장 큰 낙은 손주들이 좋아하는 소고기며 딸기를 사시는 일이다. 아직도 아버님을 부르는 현장을 두 말 없이 달려 나가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십 도를 웃도는 폭염에 노인들은 외출을 조심하라는 안전 문자가 오는 날, 칼바람이 너무 추워 길에 인적도 드문 그런 날, 원망스럽게도 아버님께 연락이 온다. 꼭 그런 날만. 자식들 모두 이제 먹고 살 일 걱정 없으니 그만하시라고걱정하지만 두 말 더 못하게 입을 막으시고 또 몰래한의원에서 한 개 만 원짜리 어른 손가락만 한 기다란 약침을맞으시면서도그래도기어이나가신다.아버님께 일은, 남들이 '막'노동이라 부르는 그 일은, 가진것없고배운것도 없던전라도 깡촌 시골청년에게 다섯 식구 살 비빌 수 있는 방 한칸을내어준 너무나 고마운 것이고, 일한 대로 땀 흘린 대로 정직하게 아버님께 보답을 준 숭고한 것이다.
1983년 만 삼천 원이던 일당은 사십 년이 지나 이제 십 구만 원이 되었다.이 돈이 귀하고 감사한 아버님은 오늘도 나가신다. 당신께서 번 돈으로 내 새끼 내 손주 먹을 고기 라도 사주고 싶은 아버님의 마음을, 자식들 걱정도 외면하고 일을 기어코 나가시는아버님을 저는 그저원망만 할 수는없다.아버님이 직접 사신 고기 봉지를 손잡이에 걸고 한 블록 건너 있는 우리 집으로 오시는자전거소리가너무나밝아서, 일없는 날 아버님의표정은너무나쓸쓸해서. 나는아버님을 길에서 만나면아이스크림사주세요조르는철없는며느리다.
가진것없는신랑ㅡ본인말대로돈도 없고키도작고머리털도없는ㅡ이어찌이리자존감은높은지, 그래서비교적 넉넉한 집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내마음을훔쳐갔는지 그사람의 가난하지만 도도한 여유가 가끔부럽고질투 난다.신랑의 굳센 자존감 켜켜이 사십 년 동안 노동의 고된 시간을 그 흔한 동료 간의 술자리도, 도박도 없이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아버지의자리'를 지켜 낸지독한 사랑이 서려있음을 이제는 알겠다.벽돌 나르다 한창 허기질 때쯤 받았던 빵, 당신께서 드시지 않고 주머니에 소중하게 챙겨 넣어 온 그 빵의 맛을 아는 신랑은 가난과 불행을 함부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시를 쓰다눈물콧물 범벅이 된 나를 이해할 수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한 마디 한다. "이게 그리 슬플 일은 아니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