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과거인성과 현제인성
[사람됨의 품질]
어느 날 문득, ‘인성’이란 단어 앞에서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루 끝에 무릎을 꿇은 채 벌을 서며,
바짝 마른 눈물을 안구 뒤로 밀어 넣던
그 시절. 나는 왜 혼이 나야 했는지
몰랐지만,
나를 혼내던 이들은 다만 사람이 사람
답게 살기 위해’ 그리한 것이었음을
지금은 안다.
누나의 치마를 들춰보다가, 어머니의 매질,
아버지의 꾸지람, 형님의 주먹, 누나의
꼬집음을 다 겪고서야, 나는 겨우 알게
되었다.
인간은 호기심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욕망 앞에서 자제하는 법,
부끄러움을 아는 법, 잘못을 인정하고
참는 법을, 그날 나는 온몸으로 배웠다
.
마구간 황소 눈알속에 숨듯이 나는 세상
의 눈을 피했고, 눈물 대신 속에서 부글
대던 애간장을 삼켰다.
누나의 눈물 같은 꾸짖음 조차 지금 돌아
보면, 그것은 사랑의 또 다른 언어였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 ‘사람다움의 언어’
를 배우고 있을까? 세월이 흘렀다. 청년기
엔 군화를 신고 전우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청했고,
장년기엔 누군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루었다. 돈 많고 적음보다,
성실과 신뢰로 꾸린 날들이 소중 했다.
책임이란 말이 삶의 한가운데 서있었고,
그 책임의 무게가 나를 더 깊이 인간으로
빚어 주었다.
노년에 이르러 나는 다시 인성을 묻는다.
사람됨의 품격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얼마 전, 한 대학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학생이 주변 식탁에 떨어진 휴지를 보고도
모른 척 지나가기에 물었다.
“학생, 휴지를 좀 치우고 가면 어떻겠소?”
학생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제가 버린 게 아닙니다.”
그 말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가슴을
찔러 다. 그러고는 다시 말한다.
“다른 사람도 그냥 가던데요.
왜 저만 그러라고 하시죠?”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옛 시절을
떠올렸다. 우리는‘남이 하지 않더라도
내 가 먼저 해야 할 일’을 배웠다
.
손으로 쓸고, 마음으로 닦으며, 한 사람의
품성이 세상의 품격이 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말한다. “물건에도 품질이 있듯,
사람에게도 품질이 있다”라고. 인성은
단지 예절 몇 마디, 도덕 시간의 문장
몇 줄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밥상머리에서, 한마디
나누는 인사 속에서, 아이의 눈을 바라
보며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서
태어난다.
부모가 먼저 감정을 조율하고, 삶의 본질
을 보이며, 존중과 배려가 실천되는 공간
이 곧 인성의 토양이다.
청소년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듯 어른을
본다. 어른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말을
낮추고, 자신의 허물도 이야기할 때,
그들 은 배운다.
‘사람다움’은 그렇게 전해진다.
나는 이제 ‘사람됨의 품질’을 이야기하고
싶다.
오래 묵은 장독에서 우러나듯, 세월에
절여진 인간의 진실한 품성. 말보다 더
강한 본보기로,
가정이라는 첫 학교에서 피워 올려야 할
가장 순수한 인성. 누군가는 말한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아이들은 항상 어른을 따라 배운 다는 것
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말이 아니라,
나의 행동으로 인성을 가르치고 싶다.
어쩌면 인성 교육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흘린 슬픔을 먼저 주워
담는 일, 쓰러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손길, 함께 웃고 울 줄 아는 감정의 나눔.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다음 세대가 조금
더 따뜻한 품성을 지닌 채, 이 세상을 살
아 가기를.
그 시작은, 오늘 아침 내가 먼저 바닥의
휴지를 줍는 손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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