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울 엄마의 단식투쟁
얼마 전, 아버님(95세)이 XX군청에
가신다고 하셨다. 말씀을 들어보니 돈
과 관련된 일인 듯했다. 이쯤 되면 큰
아들 노릇을 해야 할 때. 나는 아침 일찍
차에 아버님을 모시고 군청으로 향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70여 년 전, 아버님은 일본에 징용되어
2차 대전에 참전하셨고, 그 당시 싱가
포르며 말레이시아까지 전장을 누비며
살아오셨다. 그에 대한 국가적 보상
으로, 생존자에 한해 소정의 금액을
지급한다는 통보였다.
2014년 기준 생존자 지원금 80만 원에,
미지급분 60만 원까지 총 140만 원.
아버님은 꼿꼿한 자세로 서류를 내셨고,
나는 그 돈을 받아 아버님께 전해
드렸다.
점심을 대접하겠노라 말씀드리니,
아버님은 도리어 큰소리치셨다.
"오늘은 내가 쏜다! 아애미하고
아애비하고 따라오너라!"
근처 불고기집에서 아버님은 생전 처음
보는 포스를 내뿜으셨다
"너희 둘이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라.
고기 먹어라!"
그리고는 은행 봉투 두 개를 꺼내셨다
.
한 봉투는 아내에게, 다른 하나는 내게.
아내에게는 거금 10만 원, 나에게는
무려 50만 원을 주시며,
"생활에 보태 쓰거라!" 하신다.
나는 울컥했다.
오랫동안 부모님 모시고 살아오면서,
아버님 께받은 돈이란 말 한마디조차
없었는데...
봄에 집을 나가시면 가을에 오시고,
가을에 나가시면 봄에 오시던 분.
나는 그게 대한민국 아버지의 일상
이려니 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다 받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 마음만 받을게요."
50만 원 중 30만 원은 도로 드렸고,
20만 원만 억지로 받았다.
아버님은 결국 110만 원을 챙기시고,
어깨 펴고 귀가하셨다.
그런데 다음 날, 사무실로 아버님이
찾아오셨다.
"아비야, 너희 엄마가 다 죽어간다."
"예? 왜요?"
"나도 어제부터 밥을 못 먹고 굶었고,
너희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있다!"
아버님은 똥색 얼굴로 안절부절.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고, 이거 돈 때문에 울 엄마가
단식투쟁에 들어가셨구나!"
역사적 인물 중 단식투쟁 하면 간디가
떠오른다. 그분은 평생 145일 단식을
하셨고, 모세는 80세에도 40일 금식
하며 민족을 구했다.
부처님도 해탈의 고행 중 단식을 하셨
지 않나.
그리고, 우리 엄니.
90세 고령에 가족의 경제권을 걸고,
한판 승부에 들어가셨다.
사실 그날 아버님이 돈을 찾기 전, 시골
집에서 어머님은 이미 여러 번 말씀
하셨다.
"나도 그 돈, 쓸 수 있나 없나..."
두 분 사이에 충분한 협의가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큰아들로서 굳이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 날 저녁, 아내
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그러셨단다.
"아무래도 오늘 죽을 것 같다.
너희 아비하고 다 모인 데서 한마디
하고 죽으련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 돈, 기어코 집안을 뒤집어놓는구나!’
그날 아버님께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여쭈었다.
"아버님, 혹시 어머님께 그 돈 다 드리
는 게 어떨까요?"
그 순간, 아버님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놈아! 내가 일본 끌려가서 목숨 걸고
싸운 대가를 왜 줘!
미친놈아! 면사무소 가서 이혼하련다!"
그리고 전화를 딱 끊으셨다.
사태는 점점 극으로 치달았다.
어머님은 하얀 소복까지 꺼내 입으셨고,
방은 장례식장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반면, 아버님은 얼굴이 반쯤 굳은 채 내
귀를 잡아당기시며 속삭이셨다.
"쉿! 쉿! 아비야... 다 뺏겼다..."
낡은 지갑을 꺼내시며 보여주신 장지갑
안에는 빈 공간만이 남아 있었다.
"조금만 일찍 줬으면
반은 건졌을 텐데...
"
그날 이후, 어머님의 단식투쟁은 마침
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잊지
못할 장면을 마주했다.
거실 한가운데, 어머님은 마치 오래전
전장(戰場)으로 향하던 여장부처럼
정갈하게 하얀 소복을 차려입으시고,
천천히, 그러나 단호한 걸음으로 걸어
나오셨다.
말없이 마주 선 식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분께 쏠렸다.
그 순간, 어머님은 딱 한 번의 눈빛과
손짓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화내지도, 울지도 않으셨다.
다만 그 눈빛 속에 담긴 침묵의 승리는
세상의 어떤 연설보다 강렬했다.
그녀는 차분하게, 하나하나를 정리하듯
마무리 지으셨고, 그 표정에는 전쟁을
치른 장군의 여유와 여왕의 품격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분은 내가 살아오며 만난 전설 속
여걸 계보 중 가장 강렬하고도 눈부신
카리스마(Charisma)를 지닌 존재였다.
그렇게, 어머님의 단식투쟁은 조용히,
그러나 완벽하게 ‘승리’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족의 역사 속에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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