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살 가까이 된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는 올해 아흔이다.
‘간병’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노쇠한 두 노인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버티듯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이었고,
함께 살아온 세월이 칠십 년을 넘는 인연이었기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밥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지내셨다.
그 헌신을 보며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아, 어머니도 사람이구나.
지치고 힘드실 텐데.
그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 나는 자식으로서 부끄러웠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 대신 내가 아버지를 돌보게 되었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육체도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버님, 엉덩이 조금만 들어보세요.”
한 손으로 아버지를 부축하고,
다른 손으로 젖은 수건으로 궁둥이와 중요 부위를 닦아냈다.
피와 고름이 엉겨 붙은 욕창을 닦을 때에도
아버지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야야, 니 힘들지? 고생 많다.”
“괜찮습니다, 아버님.
조금만 참으세요.”
그때 아버지는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돌리며
스스로 궁둥이를 들어주셨다.
피가 흐르고 고름이 나와도
내가 더 힘들까 봐, 아무렇지 않은 듯 참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을 삼켰다.
왈칵 터질 것 같은 것이
아무 말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방에 가서 좀 쉬어라.”
아버지의 말에는 늘 그랬듯
걱정이 먼저 담겨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며 방으로 향했다.
그 길에 문득 생각났다.
어릴 적, 무릎이 깨져 피가 날 때면
아버지는 “가만있어 봐라” 하시며
아까징키를 발라주시곤 했다.
나는 울고불고 난리였고,
아버지는 말없이 내 무릎을 닦아주셨다.
그랬던 아버지가 지금은
피가 나고 고름이 터져도
아들에게 아픈 기색 하나 보이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는 끝내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한번, 며느리를 한번 바라보시고
내 손을 꼭 쥐셨다.
그 손에
사랑도, 고통도, 미안함도
말없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의 무언은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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