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소리에

마음의 산책: 시

by 하태수 시 수필

늙어가는 소리에



억새가 제멋대로 흔들릴 때마다

가로수 사이를 걷는다.

처음 가보는 길,

마치 생의 끝자락 같다.


시간의 잘린 끝에서

핏기 어린 내가

풀풀 바람에 묻어온다.


뒷덜미를 훑고 지나간 바람,

연약한 울음소리에

귀를 막는다.


썩어가는 잔해,

왜소한 버러지 하나

누구도 알지 못한

비명의 잔향은

그리움의 강을 건넌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익어가는 것이다.

낭창한 팔다리에도

왠지 모르게 자꾸

눈길이 머문다.


얼마 남지 않은 자리,

그 생의 섭리마저도

맹목으로 거부하는 삶.


허공만 쑤시며

몸속을 맴도는 감각.

성치 못한 신경 모세포는

충격의 틈새로

‘몸치’처럼

훅, 뚫릴까 두렵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나는 노을처럼

말없이, 마지막을 물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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