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야! 이놈아, 치매 왔냐!
늦은 밤이었다.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렸던 몸이 지쳐
TV 앞에 앉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한참 만에 깨어났을 때, 시계는 밤 11시
를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가 간질간질했다.
나는 조용히 세면장으로 내려가
연탄보일러를 돌리고 따뜻한 물을 받아
머리를 감았다.
하루의 피로가 물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고,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어느새 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조용한 밤이 흐르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거실 쪽에서 울리는 아버지(95세)의
다급한 외침이 벽을 뚫고 내 귀에
꽂혔다.
“야, 이놈아! 자냐?
이리 좀 나와봐라!”
놀란 마음에 허둥지둥
옷을 걸쳐 입고 거실로 나가니,
아버지께서 노기 띤 얼굴로 물으셨다.
“어젯밤, 머리 감고 물꼭지 잠갔냐,
안 잠갔냐?”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잊고 있었다
세면장의 물꼭지를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
밤새도록 찬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고,
연탄보일러는 그 물을 데우느라 혼자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 방과 어머니 방은 냉골로
변해 있었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그 방 안까지
스며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야, 이놈아! 벌써 치매 온 거냐?
정신이 이렇게 흐려서야 어찌 사냐!
나는 네 나이 때, 이런 실수 한 번도
한 적 없다, 이놈아!”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 조용히 어머니(90세)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여보,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그걸 가지고 아이를 그렇게 몰아세우지
마세요.
나도 춥긴 했지만, 이불 하나
더 덮고 잤어요.”
그 말에 나는 더 부끄러워졌고,
식탁 앞에 앉았지만 차마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숟가락을 들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식당 벽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십니다.
진주 하 씨 문효공 사직공파 31 세손,
鐘자 鎬자 쓰는 태수(71세)가 치매
증세로 조상님께 보고 드립니다.
벽을 향해 두 번 절을 하고,”
허리를 굽혀 익살맞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재롱을 부렸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등신 같은 놈!,
꼴값 떨고 자빠졌네!.
다음부턴 조심해라!”
예 알겠습니다.
“자, 밥 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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