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고 가야 할 욕심과 두려움의 무게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헤어에센스를 바른 후 드라이기로 머리를 꼼꼼히 말린다. 머리 스타일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중요하니, 드라이까지 꼭 하고. 피부에도 토너와 로션, 선크림을 꼼꼼히 발라준다. 외출에 따라 화장도 기본은 해야 했고, 입고 나가는 옷에는 주름이 없게 스팀다리미로 다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향이 나도록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린다.
밥 먹기 전에 손은 꼭 비누로 닦고, 옷은 깨끗이 입기. 만약 오늘 입은 옷에 커피라도 조금 튀었다면 얼른 주방세제로 닦아내야 한다. 식후에는 바로 양치질을 하고, 거울에 비친 머리가 흐트러졌다면 다시 머리를 묶은 후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나의 일상 그 자체였고,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생략하지 않는 루틴이었다.
아마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는 누구든지 이와 유사하게 살아갈 것이고, 본인만의 청결 규칙이나 루틴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등산이나 마라톤이 끝난 후, 땀을 흘린 옷을 새옷으로 갈아입고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타인에게 불쾌감은 주지 말아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이 꼭 필요한 일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남의 시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이 습관들이 과연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아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
09월 23일
이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익숙해졌다. 이따금씩 숙소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본인에게 정말 필요 없을 것 같거나 사치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버렸다. 샤워 후 바르는 바디로션이 본인에게 더 이상 사치라고 판단되어 버리는 친구가 있었고, 생각보다 등산 스틱을 쓸 일이 없어 숙소에 기부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또 점점 추워지는 계절이 다가와 얇은 옷은 버리고 보온을 위한 모자를 사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나는 하나를 배웠다.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덜어내는 법.
하지만 덜어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맞지 않는 옷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거나,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며 종이가방을 모아두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순례길에서 물건을 버리라면 가장 먼저 '두려움'을 느낀다. 혹시 필요하게 될까 봐, 아프면 먹어야 할 약과 옷들, 햇빛을 막아주는 선글라스나 모자까지 모두 챙겨야 했다. 그 결과, 내 가방의 무게는 어느새 11kg을 넘어서고 있었다.
보통 가방의 적정 무게는 체중의 10% 정도라고 한다. 이 계산법으로 보면 나는 이미 그 한계를 넘었다. 그러니 당연히 어깨가 아프고 무릎에도 무리가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무게를 덜 수 없었다. 고통이 있어도 버릴 수 없다면 이 무게에는 아마 내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도 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Murias de Rechivaldo)로 향했다. 전날 32km를 걸은 탓인지 21km조차도 버거웠다. 땅에 닿는 발 뒤꿈치에 불편한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만약 가방이 가벼웠다면 이 정도로 힘들지 않았겠지만, 내 욕심이 가득한 가방이 나를 힘들게 했다. 고통이 더욱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발걸음을 뗐다면 결국 도착하기 마련이다. 오늘 도착한 숙소는 이전 어느 곳보다 자유로웠다. 돌과 흙이 드러난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었고, 집 앞을 돌아다니는 큰 강아지와 호스트 그리고 숙소를 관리하는 직원들을 봤을 때는 흔히 히피풍이라고 불리는 분위기가 연상되었다.
그런 숙소에서 어제부터 쌓인 피곤함을 씻어내었다. 샤워와 빨래를 마친 뒤 오늘 같이 걸었던 친구와 함께 집 앞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 간식과 과일 펼쳐두고 저물고 있는 햇빛을 등으로 맞았다. 물론 드라이기도 없었던 나에게 이 햇빛은 자연 드라이기와 같았다. 그리고 강렬하게 쏘는 햇빛은 마치 몸의 아픈 부위를 치료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이때 내 앞으로 고양이와 강아지가 나와 똑같은 자세로 햇빛을 고스란히 받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 동물들도 햇빛의 따스함과 여유를 즐기는 걸까? 욕심으로 가득 찼던 내가 어느새 이 여유로움과 비워내는 분위기에 적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꾸미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마 나와 친한 친구들은 내가 조금 더럽다고도 생각될 것이다. 손에 묻은 것쯤이야 옷에 닦으면 됐고, 땅에 떨어진 배나 사과를 주워 흙을 조금 털어내고 베어 물면 되었다. 아, 가끔은 밥 먹기 전에 손을 닦지 못해 찝찝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여건이 안되니 말이다.
여느 다른 순례자들과 같이 가방을 줄이고 줄여 욕심을 덜어냈느냐라고 묻는다면 완전히 비워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3주간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이 변화하고 있었다. 자연과 가까워졌고, 스스로 이건 안돼!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나씩 깨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정말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자연에 동화되어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빠르게 변화하고 쫓아가야만 했던 일상을 벗어난 지 3주, 나는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저 발걸음을 내딛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한 건 감수하면서 말이다. 저 햇빛을 맞으며 여유를 즐기는 강아지와 고양이랑 내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 순간이 온전히 행복했다. 그리고 더 가벼워진 내 마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