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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원 Oct 08. 2024

13. 땅에 뜨는 별

새벽을 밝히는 별들

한때 일출 산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봄이 싹트기에는 아직 너무 추운 2월,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이었다. 실내에서 히터 바람은 답답하게 느껴졌고, 창문을 열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가 묘하게 상쾌했다. 이런 날엔 해가 더욱 찬란하게 떠오를 것만 같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로 했다. 해 뜨는 장면을 보는 것이 목표였으니, 새벽 4시쯤부터 빠르게 정상에 오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해발 1,915m, 한라산을 제외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단시간에 오르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2월의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눈으로 덮여 있어, 아이젠을 착용해야만 했다.


결국 해가 조금 뜬 뒤에야 정상에 도착했지만, 정작 내게 더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 적막한 새벽,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바라본 깜깜한 하늘의 별들이었다. 평소에는 별에 큰 흥미가 없었지만, 그 고요한 새벽의 별빛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찬바람과 함께 달빛과 환히 비추는 별빛들. 도시는 새벽에도 이런 장면을 보기 힘들었는데. 도시의 불빛 속에서는 보기 힘든, 마치 쏟아질 듯한 그 별빛은 내게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아 있다.




09월 16일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 시간을 피하려 새벽같이 출발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이 도시도 어느덧 여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들며 해 뜨는 시간이 점차 늦춰졌다. 그래서 아주 이른 시간이 아님에도 깜깜한 하늘 아래서 하루를 출발해야 했다. 이런 때 순례자들에게 필수적인 물품이 바로 헤드랜턴이었다.


나는 헤드랜턴 대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걸었다. 보조배터리를 많이 챙겨 왔기에 핸드폰 불빛을 밝히는 데 부담은 없었다. 오늘도 보조가방에 핸드폰을 담아 불빛을 켰다. 어둠을 뚫고 카스트로헤이즈(Castrojeriz)에서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Poblacion de campos)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다른 순례자 친구들보다 한 마을을 더 가야 했기에 더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잠의 여운이 아직 한참 남아있지만, 깜깜한 시골에서 바라보는 별빛은 너무나도 황홀했다.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이 절로 느려졌고, 어디서 본듯한 별자리가 보이니 그 장면을 내 두 눈에 꼭 담고 싶었다. 이름도 모르는 별자리를 보니 평소 별자리 공부를 해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한국에서도 똑같이 떠있는 별일 텐데, 그곳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참 아쉽다고도 느꼈다.


어스름한 새벽이 밝아오려 할 즈음, 조금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를 깜깜한 시야 속에서 걸어야 했기에, 별 보기는 조금 멈추고 내가 가는 발자국에 더 집중하며 걸었다. 첫날을 제외하고는 큰 언덕을 오르는 길이 없어 그 조금 높은 언덕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점점 등에 열이 오르고 땀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쉬면 더 힘들다는 경험을 통해 다시 다리를 내딛으며 올라갔다.


조금의 휴식이 필요할 때, 핸드폰 불빛을 끄고 내가 올라온 길을 내려보았다. 꽤나 열심히 걸은 탓인지 높은 곳에 있었던 나는, 내가 올라온 길 위로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아, 땅에서도 별이 뜨는구나. 나와 같이 헤드랜턴 그리고 핸드폰 불빛에 의존하며 열심히 올라오는 순례자들이 마치 '땅에서 뜨는 별'과 같이 느껴졌다.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땅에서 스스로 빛을 내며 걷고 있었다.


불빛을 밝히고 올라오는 순례자들


별은 우리에게 잊고 있던 낭만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산에서도, 이 시골길에서도 별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황홀해진다. 하지만 오늘 땅에서 뜨는 별들을 보며 깨달았다. 도심 속에서도, 각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 낭만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순례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깜깜한 새벽을 헤치고 올라오는 그들의 불빛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별이었다. 별처럼 빛나고, 별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들. 나는 오늘 그 별들을 보며 스스로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느꼈다. 발자국에 맞추어 너울거리는 땅의 불빛들,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었다.


별은 아무리 바라봐도 변하지 않는다. 절대 손으로 닿을 수 없지만,  그저 그 자리에 머물며 스스로 빛나는 존재. 이 땅에서 뜨는 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빛을 내고 있다. 그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평온해지고, 그 어떤 욕심도 생기지 않았다. 


난 깜깜한 새벽을 헤치고 찬란히 빛나는 별이 좋다. 해가 뜨기 전, 조용히 빛나고 있는 별. 그 별을 바라보면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나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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